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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ronica Oct 07. 2018

주말엔 '이미 좋은 맛집'에 간다.

절망에서 벗어나는 몇 가지 방법

직업상의 이유로 인생이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주말'의 소중함을 온 몸으로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굳이 일신이 평온할지라도 트렌디한 맛집이라면 꼭 방문해야 하는 성미를 지닌 나 같은 사람에게 시간을 온전히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주말 이틀의 시간은 반드시 계획되어야 하고, 계획대로 풍요로워야 한다. 주말은 보통 '안 가본', '트렌디한' 맛집을 도장깨기 하는 시간이었지만, 평일의 스트레스를 극복하느라 온 에너지를 다 쏟아버린 후의 주말엔 새로운 맛집을 찾을 힘도 없을 뿐더러, 만약 찾았다 하더라도 흐려진 판단력 때문에 실패하기 일쑤다. 그래서 무기력하고, 우울한 인생의 순간엔 절망의 주말을 더 절망스럽게 만들기보다, '이미' 검증된, '이미 좋았던 곳'에 가는 것을 추천한다.


다음은 주말을 그나마 덜 절망스럽게 만들었던 좋은 곳 리스트.


안즈. 이 귀한 맛집이 회사 근처에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온 정신이 다 털리고 터벅터벅 걸어 들어가서 정식 한 그릇에 아사히 맥주 한 잔 마시고 나면, 그렇게 위로가 될 수가 없다. 보통 혼밥할 땐 핸드폰을 보면서 배를 채웠는데, 여기서는 경건하게 식사에만 집중하곤 했다. 이직 후 한달 정도 지났을 때였나, 프로젝트 갈피 못 잡고 선배한테 영혼까지 탈탈 털리고 나서 무기력하게 밥 먹으러 갔던 게 생각나네. 돈가츠로 유명한데, 가츠 나베도 정말 맛있다.

  

김씨네 심야식당. 여긴 이미 유명한 데다가 공간도 비좁아서 대기가 있을 때가 많지만, 보통 밤 11시쯤 가면 10분 내로 앉을 수 있다. 우후죽순 생겨나는 이자까야 홍수 속에서 이 정도 맛의 퀄리티를 보장하는 곳은 찾기 어렵다. 특히 여름 밤에 마실 나가듯 다녀 오면 좋은 곳.

 

Olde knives. 위스키 바인데, 내겐 이태원 스테이크 맛집. 무기력한 와중에 맛있는 고기가 먹고 싶은 밤에 가면 좋다. 보통 둘이 가면 스테이크 400g이 적당한데, 5-6만원에 아주 맛있는 식사가 가능하다. 좁고, 어두워서 아지트 같은 기분이 드는 곳. 사진을 보니 지난 힘들었던 여름밤이 생각나네.


무기력한 주말에도 일을 해야 할 때가 있어서 그럴 때면 주말엔 사람이 적은 오피스가에 간다. 요즘엔 상암동에 자주 가는데, 갈 때면 늘 생각나는 바다 익스프레스. 맛은 대중적이진 않다. 진짜 이탈리안 파스타나 플레이트가 먹고 싶다면 추천.


언젠가는 카페마마스에 가서 영혼을 울리는 감자 치즈 수프도 먹고.


너무 힘든 퇴근 길엔 지은이 불러서 한남동 언더야드에서 맥주 한 잔.


가끔 주말에 망원동에 갈 때가 있는데, 동네 특성 상 보통 식당이 아주 작고, 또 인기가 많아 웨이팅이 길다. 그럴 땐 '진진'처럼 맛이 보증되면서 친절하기까지 한 곳에 가면 기분 나빠질 확률이 아주 적다. 시간을 잘 맞춰 가면 바로 입장도 가능하고. 영혼을 울리는 어향가지가 있는 곳. 직원 분들도 정말 친절하다.


성북동 MOZZA. 성북동은 초가을의 스산함과 정말 잘 어울리는 동네라고 생각한다. 이런 곳의 동네 주민들이 인정하는 맛집에 가면 기분은 더 좋아지지. 맛있는 화덕 피자가 있는 숨은 맛집. 근방에 사는 주민들이 가족 단위로 와서 생일 파티를 하거나, 가족 모임을 하는 걸 지켜보고 있으면 괜히 뿌듯하다.


피로할 땐 대파를 먹는 게 좋다고 한다. 우울한 와중에 몸까지 피로하면 더 우울해지니, 철저히 몸 보신을 해주도록 한다. 파절임 맛집, 광화문 산방 돼지. 가게 곳곳에서 사장님의 고민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우울기에 스타벅스는 또 어찌나 갔는지. 여기는 스타벅스 매장 중 가장 좋아하는 광화문R점, 2층. 언뜻 도쿄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한 장 찍었다. 리저브에서 스트레스를 풀 만한 음료를 딱 하나만 고른다면, 주저 없이 콜드브루 몰트.


이렇게 정리하고 나니, 평소에 취향을 알고, 호불호의 기준을 명확히 세워두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래야 우울기에 기계처럼 바로 찾아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공간이 생길 테니. 요즘 다니는 새로운 맛집들도 언젠가 위로의 공간이 되는 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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