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을 결정하는 도시의 골격

by 문지훈 Jihun Mun

어떤 도시의 거리는 특별한 목적 없이도 걷는 것만으로 즐거운 반면, 어떤 거리는 차량 없이는 이동하기 힘들고 빨리 지나치고 싶다고 느낀 적이 있으신가요? 혹은 어떤 동네에서는 이웃과 자연스럽게 마주치는 일이 잦은데, 어떤 동네에서는 수년이 지나도 바로 옆집에 누가 사는지조차 알기 어렵지 않으신가요?


​도시에서 겪는 이러한 일상의 차이는 대부분 도시의 가장 단단하고 쉽게 변하지 않는 측면에서 비롯됩니다. 이 글에서는 다차원적 도시 밀도의 한 축으로서, 이 개념을 ‘정적 밀도(Static Density)’라 이름 붙이고자 합니다. 이는 단순히 눈에 보이는 건물이나 도로의 많고 적음을 넘어, 땅의 쓰임새를 결정하는 보이지 않는 규칙부터 수백 년간 유지되어 온 길의 형태, 그리고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건물의 모습까지 모두 아우르는 개념입니다. 비유하자면 사람들의 활동이 끊임없이 변하는 강물이고, 정적 밀도는 그 물길의 방향을 결정하는 단단한 강바닥과 같습니다. 이 견고한 구조는 도시 생활의 배경에 그치지 않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행동과 관계 맺는 방식에 강력한 영향을 미칩니다.


정적 밀도의 가장 깊은 층에는 도시의 형태를 미리 결정하는 보이지 않는 규칙이 있습니다. 건물이 한 채도 들어서기 전에, 도시는 이미 추상적인 선과 규칙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토지의 소유권과 경계를 증명하는 지적(Cadastre) 제도와 그 결과물인 지적도(Cadastal Map)입니다. 지적도 위의 선들은 수십 년, 혹은 백 년 이상 전에 그어졌지만 쉽게 바꿀 수 없는 보이지 않는 벽처럼 작용하며 건물과 도시의 형태를 근본적으로 결정합니다. 이 소유권의 경계선 위에는, 토지마다 주거, 상업, 녹지 등 정해진 용도를 부여하여 개발을 관리하는 용도지역제(Zoning)와 같은 또 다른 규칙이 더해집니다. 이는 마치 집 안에서 침실과 부엌의 용도를 나누는 것처럼, 도시 공간에서 일어나는 활동의 종류를 미리 분리합니다. 이러한 규칙들은 도시의 밑그림을 그리는 가장 근본적인 설계도 역할을 합니다.


설계도 위에 그려지는 도시의 실제 뼈대는 길과 땅의 구획입니다. 이 수평적 구조는 도시의 혈관처럼 사람과 물자의 흐름을 책임지며 전체의 활력을 결정합니다. 오래된 도심의 촘촘한 길과 작은 땅들은 우리 몸의 실핏줄처럼 도시 곳곳으로 사람들의 발걸음을 이끕니다. 작은 블록과 많은 교차로는 보행자에게 다양한 경로 선택권을 주어 걷는 재미를 더하고, 우연한 발견의 기회를 높입니다. 반면, 넓은 도로와 거대한 블록으로 계획된 지역은 차량의 빠른 이동에 최적화된 대동맥과 같습니다. 이런 곳에서는 보행자의 선택권이 제한되고, 길고 단조로운 길을 따라 걷는 경험은 지루함을 유발하기 쉽습니다. 특히 한번 만들어진 길은 옛 성곽이나 하천의 흔적을 따라 수백 년간 이어지기도 하는 등 강력한 경로 의존성을 갖습니다. 따라서 도시의 뼈대가 어떻게 짜여 있느냐는 단순히 이동의 효율성을 넘어, 도시의 활력과 보행 경험의 질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가 됩니다.


길과 땅이라는 뼈대 위에 건물이 들어서면서 도시는 비로소 입체적인 공간이 됩니다. 건물의 높이, 모양, 그리고 건물이 도로와 마주하는 방식은 거리의 분위기, 즉 도시의 표정을 만듭니다. 1층에 상점이나 카페가 있어 투명한 창 너머로 내부 활동이 들여다보이는 건물들은 거리와 적극적으로 소통합니다. 이러한 건물들이 늘어선 거리는 흥미로운 구경거리를 제공하고, 건물 안팎의 시선이 교차하며 발생되는 거리의 눈(Eyes on the Street)이 자연스러운 안전망을 형성합니다. 건물의 높이가 사람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을 때 우리는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며, 보통 우리는 이를 휴먼스케일(Human Scale)이라 부릅니다. 반면, 거대한 아파트의 높은 담벼락이나 주차장 입구처럼 폐쇄적인 구조물은 거리와의 소통을 차단하는 벽이 됩니다. 건물이 그저 사적인 공간을 담는 그릇으로만 기능할 때, 거리는 활기 넘치는 공공의 거실이 아닌 삭막하고 재미없는 복도가 되어버립니다.


그렇다면 이 정적인 차원에서의 밀도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이는 단순히 단위 면적당 건물의 수가 많다는 의미를 넘어섭니다. 정적 밀도는 이 글에서 살펴본 세 가지 차원 즉, 보이지 않는 규칙, 길과 필지의 얽힘, 건물의 형태와 배치가 얼마나 복합적이고 다층적으로 응축되어 있는가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정적 밀도가 높은 곳은 촘촘한 가로망과 작고 다양한 필지 위에, 여러 시대에 걸쳐 지어진 각기 다른 형태의 건물들이 밀집해 있습니다. 또한 역사 보존 규제나 상업 활동에 대한 규칙들이 복잡하게 얽혀, 예측 불가능하고 풍부한 공간감을 만들어냅니다. 반면, 정적 밀도가 낮은 곳은 거대하고 획일적인 블록과 단순한 도로망 위에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유사한 형태의 건물들이 들어서 있습니다. 용도지역제와 같은 단일한 규칙이 공간 전체를 지배하여, 효율적이지만 단조로운 공간감을 형성합니다.


보이지 않는 규칙에서부터 도시의 뼈대를 이루는 길, 그리고 공간을 채우는 건물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요소가 합쳐져 형성된 견고한 구조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수많은 사회적, 경제적 결정이 쌓인 결과물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도시 공간의 질이 어떻게 결정되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어떤 도시에서 살고 싶은지에 대한 사회적 대화를 시작하고 더 나은 도시를 만들어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정적 밀도를 바라보는 가치 판단의 기준 자체를 재고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더 단단하고 높은 정적 밀도를 쌓아 올리는 것을 도시 발전과 동일시해 왔습니다. 견고한 기반 시설과 빽빽한 건물은 분명 풍요와 성공의 상징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견고함은 때로 도시의 유연한 변화를 가로막는 족쇄가 되기도 합니다. 과거 성장의 정점에서 최적화된 도로망과 대규모 아파트 단지는, 인구가 줄어드는 도시에서는 유지관리가 어려운 부담으로 전락할 수 있고, 오프라인 활동을 전제로 설계된 상업 공간은 디지털 경제의 흐름을 담아내지 못한 채 활력을 잃어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미래 도시의 지혜는 단순히 새로운 것을 더하고 쌓아 올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정적 밀도를 어떻게 재해석하고 유연하게 전환시킬 것인가에 대한 상상력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가장 견고한 도시의 토대가, 역설적으로 가장 부드러운 변화의 가능성을 품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이 글은 도시관측 챌린지 활동을 통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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