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일단 이 시기를 이렇게 이름 붙여주고 싶다. 긴 여름방학 혹은 나의 전성기
그간 열심히 달려왔기에 내가 자발적으로 신청한 쉬는 시간, 아 도저히 안되겠어 싶어서 만들어낸 나의 시간. 다른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시간을 쏟는게 아니라, 나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시간을 쓰고 있다. 문제라기 보다는 과제 ? 숙제 ? 퀘스트 ? 아닌데 삶은 축제처럼 살라고 하셨는데. 아무튼 주파수를 나에게 맞추고 있다. 이게 또 내가 맞출려고 맞춘건 아닌데, 상황이 이렇다보니 나 혹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만 선택적으로 주파수를 맞출수가 있었다. 내가 읽고 싶은 책, 만나고 싶은 사람들, 하고 싶은 행동, 배우고 싶은 무언가. 이렇게 꽉 채워서 지내다보니 내 얼굴도 점점 피나보다. 저번주에 만난 친구는 야 너 왜이렇게 예뻐졌어! 할만큼인가 부끄럽지만 네 뭐 그랬어요.
퇴사 직전에 결제해뒀던 강의가 있었다. 물론 배운 건 많았지만, 크게 느낀 건 나는 아무리 온라인이여도 직업, 성별, 나이도 다른 40명 정도 되는 사람끼리 줌을 키고 얼굴을 보고 얘기하는건 나와 맞지 않는구나 싶었다. 거의 두 달이 끝나갈 무렵에야 좀 적응이 된 것 같지만,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말하지 못하고 어울리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보니 오히려 스트레스로 다가왔었다.
반면 다른 곳에서 신청한 워크샵들은 10명 이하의 소수로 진행되고 게시판을 통해서 진행되다 보니 편하고 뭔가 나에게만 집중해서 글을 풀어내면 되니 오히려 정리가 되고 활력소가 된다. 같이 하시는 분들과의 적당한 유대감도 들고 꾹꾹 눌러써주시는 댓글들이 진심으로 다가와 힘이 된다>< 이런걸로 보면 나는 말보다는 글이 편하고, 여럿보다는 소수가 편하다는걸 여실히 느끼게 된다. 이런 내 성격을 알고 이걸 좀 타파해보자 하고 들어간거였는데, 역시나 쉽지는 않았다.
사실 퇴사하기 전에 이거해야지 저거해야지 구체적으로 적어놓은 나의 퇴킷리스트는 없었다. 그냥 있는 그대로 공백으로 두면 무엇인가는 채워질텐데 싶었다. 회사는 나 없어도 굴러가는데, 내 삶은 내가 없으면 굴러가지 않는다. 너무 당연한 사실이지만 너무 당연해서 잊히기 쉬웠나보다. 김신지님의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에세이를 읽고 있는데, 나의 시간표를 다시 짜고 있다는 말이 와닿았다. 그녀의 책에 쓰여진 부분을 조금 내게 맞게 다시 써본다면 이렇다.
조금은 늦춰진 알람소리에 일어나 커튼을 열면 오늘은 흐린 아침이 도착해있었다. 초복이 지난 다음날이였고 장마가 시작되기 전의 습함이 가득했다. 자연스레 이불을 개고 양치를 하고 유산균을 먹었다. 그러고 에어컨을 키고 렌즈를 끼고 매트를 깔아 빵느님 유투브를 보며 아침 운동을 시작한다. 땀이 많이 나서 꿉꿉하지만 저번주보다는 동작이 잘 나오는 것 같네? 싶어서 뿌듯하다가도 ,거울이 없어 아이패드를 세워놓고 카메라를 키고 하는데 웃으면서 하는 빵느님을 보며 억지로라도 따라 웃는 내 모습에 웃음이 난다. 그렇게 운동이 끝나고 매트를 정리하고 달력에 빵을 그린다. 오늘도 해냇군 싶은 마음에 뿌듯해서 씻으러 간다.
그 후로는 드럼치는거 좋아하는 경제어린이의 모습으로 살아간다. 요즘 나의 시간표다. 드럼 치러가기 귀찮은 날에 문득 생각이 들었다. 변화의 시작은 호기심에 시작할 순 있는데, 이걸 지속하는 힘은 무엇일까? 물론 도중에 클라이막스 시점에 박자에 맞춰 크래쉬,라이드 심벌을 치는 쾌감이 있다. 하지만 집에서는 이게 나한테 의미가 있는 행동인건지 그냥 되게 할 일 없어 보이는 사람 같다는 느낌도 종종 든다. ‘아주작은습관의힘’에서는 지속하기 위해서는 정체성 중심의 습관을 세워야 한다고 한다. 중요한건 결과보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라고 한다. 함부로 나의 정체성을 잡고 싶진 않지만 내가 즐겨하는 것들이 쌓이다 보면 습관이 되고 그게 정체성이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