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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즐리 Dec 04. 2023

회사가 나에게 주는 것들을 내려놓으며

중요한 것을 희생하지 않는 삶으로  

큰 회사에 다닌다는 것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 안정적인 급여와 복지다. 어떤 일이 있어도 매달 고정적인 수입이 있다는 것은 큰 심리적 안정을 가져다준다. 회사 사람들은 연봉 인상률을 가지고 언제나 옥신각신 볼멘소리를 해댔지만 적당히 먹고 살기에는 적지 않은 액수였다. 사고 싶은 것을 사고, 가고 싶은 곳에 여행을 간다. 양가 부모님들 용돈도 챙겨드리고, 비싼 식당도 모셔가고, 선물도 사드린다. 사람들 말로는 남편과 내 연봉을 합하면 작은 중소기업 정도는 된다고도 말했다. 결혼할 때도 당당했다. 내가 남편보다 1년 정도 먼저 입사한 덕에 얼마 안 되지만 급여도 내가 조금 더 높았다. 


회사의 신용이 곧 나의 신용이었다. 신용평가사에서 평가하는 내 신용도는 상위 5%. 원하면 은행 대출도 막힘없이 받을 수 있다. 


회사의 명함이 곧 내 사회적 위치였다. 업체선정 권한을 가진 나에게 나이가 지긋한 협력사 사장님들은 늘 깍듯하게 고개를 숙였다. 회사에서 부여받은 내 작은 권한이 나를 사회에서 대접받게 했다. 


대기업 근로소득자로서의 삶은 안정적이었지만 한계도 분명했다. 적지 않은 월급이었지만 은퇴까지 악착같이 버티고 모아도 기대수명까지 먹고살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액수는 아니었다. 회사원으로서의 삶을 지속하는 이상 한 달, 또 일 년을 살아내기 위해 회사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현실과 타협하며 매일을 견뎌야 할 것이었다. 일할 때 확실하게 일하고, 필요할 때 쉴 수 있는 주도적인 삶은 은퇴 전까지는 오지 않을 것이다. 은퇴 후에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일 것이고, 일상은 작고 소박해질 것이다.

회사라는 이 간판을 떼고 나면 나라는 사람의 가치는 어떻게 평가될까? 알 수 없는 일이다. 회사를 통해 맺게 된 모든 관계에서 나라는 사람의 가치는 0이 되어버릴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현재의 나를 고민스럽게 하는 것은 타인의 평가가 아닌 나 스스로에 대한 평가였다. 과연 나 스스로 가치 있다고 느끼는 일을 하고 있는지 묻는다면 대답은 ‘아니요’였다.  

회사의 간판을 달고 이대로 살아간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나름대로 인정받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원히 회사의 평가와, 주변 사람들의 평가에 전전긍긍하며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저당 잡힌 채 가슴속에 물음표를 안고 살아갈 것이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건강과 시간을 담보로 내 인생에서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계속 후순위로 미루어야 할 것이다. 나 자신이 나에게 진정으로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귀를 기울일 시점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페미니즘이니 성평등이니 하는 것들에 대해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의식적으로 피해왔다고 해야 할 것이다. 남자와의 갈등요소가 될만한 사상을 나에게 주입하는 것이 오히려 내게 마이너스가 되지 않을까 하는 방어기제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의 한계를 외부적 환경 탓으로 핑계대는 것으로 보여지는 것도 싫었다. 성평등이니 남녀고용평등법이니 하는 것들과 상관없이, 내가 남자인지 여자인지와 상관없이 그냥 한 사람으로서 잘 해내고 인정받고 싶었다. 


남자들에게 그런 얘기를 꺼낸다는 것이 마치 내가 여자로서 당신네들보다 불리하고 열등한 존재라고 인정하는 것 같아 자존심이 상했다. 남자들과 같이 일하면서 그런 얘기를 꺼내면 나와 같이 일하기를 불편해할 것이고, 쿨해보이지 않을 것이었다. 남자가 대세인 조직에서 생존하기 위한 본능으로 나는 오히려 남자들의 입장에 동조해 주는 쪽이기도 했다. 수위조절 되지 않는 남자 동료들의 성적 농담도 웃으며 쿨하게 넘겼고, 여자는 나 혼자인 늦은 밤 술자리에도 마다하지 않고 가서 자리를 지켰다. 남자들끼리 놀고 싶어 하는 기색이 보이면 눈치껏 자리도 피해 줬다. 일에 올인하지 못하는 워킹맘들이 내심 불편할 때도 있었다. 남자 중심의 조직에서 적응해 내려면 꼬투리잡지 않고 남자 입장에서 이해하고 생각하고 행동해야 했다. 그것이 능력 있는 사회생활이라고 생각했다. 그야말로 나는 쿨병 말기 환자였다. 


하지만 언젠가 내가 워킹맘이 되는 순간이 온다면, 나 역시 내가 간혹 불편하게 바라봤던 그 사람들과 같은 입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일도 육아도 100% 완벽하지 않은 상태로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할 것이다. 

내가 엄마가 되는 것을 미루고 미뤄온 이유는 일보다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누구보다 잘 해내고 싶기 때문이다. 일 때문에 아이가 후순위가 되게 하고 싶지 않다. 나의 결정으로 세상에 태어난 아이에게 그 누구보다 최고의 시간과 사랑을 선물하고 싶다. 최고의 엄마가 되고 싶다. 

엄마가 된 것을 핑계로 일에도 소홀해지고 싶지 않다. 일하는 것이 예전 같지 않다는 사람들의 평가는 죽기보다 싫다. 하지만 회사일과 엄마로서의 역할을 모두 완벽하게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결국은 양쪽 모두 적정선에서 타협점을 찾게 되고 말 것이다. 

요즘 세상에 왜 육아의 모든 것을 혼자 짊어지려 하냐, 남편에게 적절히 짐을 넘기면 되지 않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한민국 사회에서 남자와 여자의 전통적인 역할모델이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있는 한, 남편에게 신시대 남성으로서의 역할 변화를 강조하면서 사회적 거세를 당하게 하고 싶지는 않다. 아내로서 남편의 사회적 성공 역시 그 누구보다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내 꿈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만큼 남편의 꿈도 못지않게 소중했다. 

이제는 내 삶에 중요한 것들을 희생하지 않고 평생을 주도적으로 살 수 있는 새로운 계획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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