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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즐리 May 22. 2024

공황장애와 두꺼비집의 관계

회사에 입사한 첫해인 2010년 어느 여름이었다. 지방 출장을 다녀와서 사무실에 복귀한 뒤 야근 중이었다. 여름 한낮에 몇 시간 동안 땡볕에 서 있었던 탓에 내 모든 세포는 과열된 상태였다. 


같은 팀 선배인 김 대리에게 전화가 왔다. 팀장과 팀원들 몇 명이서 술자리를 갖고 있으니 일 마무리 하는대로 얼굴이라도 비추고 가라는 것이었다. 


정식으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나는 주말 밤낮을 가리지 않고 무식하게 일하고 있었다. 회사의 사보를 만드는 일을 맡고 있던 나는 낮에 한 직원 인터뷰 기사를 서둘러 정리한 뒤 늦은 시간이었지만 김 대리가 알려준 회사 근처 술집으로 이동했다. 


거기서 술을 몇 잔 마셨고 팀원들끼리 간 떡볶이집의 동그란 플라스틱 의자에 앉으려던 참이었다. 순간 명치 아래쯤에서부터 알록달록한 섬광을 동반한 빠른 두근거림이 시작되더니 눈앞이 하얘지며 온몸 구석구석 찌릿한 무언가가 쫘악 솟구치며 뻗쳤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동그란 플라스틱 의자와 함께 널부러져 있었고 나를 내려다보는 하얗게 질린 팀원들의 놀란 얼굴 몇 개가 보였다. 갑자기 픽, 전원이 나간 것처럼 정신을 잃었던 것이다. 


그날 이후로 자연스러웠던 모든 일상들이 고장 나버렸다. 


지하철을 탈 때면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리며 눈앞이 알록달록해졌다. 숨도 자연스럽게 쉴 수 없었다. 금방이라도 정신을 잃을 것 같은 공포감에 빨리 지하철이 서기만을 기도하다가 도망치듯 다음 역에서 내렸다. 플랫폼 벤치에 겨우 몸을 걸쳤다가 지하철역 화장실을 찾아 기어가다시피 했다. 낯선 인파들 사이에서 정신을 잃는 것만은 피해야 했다. 먹은 것도 없이 몸속에 있는 것을 끊임없이 게워 내고, 화장실 문고리를 잡고 온몸을 벌벌 떨며 핸드폰 연락처를 뒤졌다. 지금 연락하면 달려와 줄 사람이 누가 있을까, 바로 119를 불러야 하나 수십수백 번 고민했다. 얼마인지 모를 시간 동안 혼자 사투를 벌이다 머릿속이 말갛게 비워질 때쯤에서야 지하철역을 빠져나와 택시를 타고 가거나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대중교통을 탈 수 없었다. 택시를 타고 출퇴근해야 했고, 회사에서는 누군가와 마주 앉아서 이야기하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사람이 있는 모든 장소에서 내 심장은 불시에 요동치듯 날뛰었고, 순식간에 정신을 잃을 것 같은 공포감에 휩싸였다. 일을 하다 갑자기 응급실에 가는 날도 있었다. 


원인을 찾기 위해 큰 병원을 돌아다니며 검진을 했다. 심장이나 내과적인 문제일 거라고 추측했지만 검사 결과는 모두 정상이었다. 아무리 검사를 해도 원인을 찾지 못하자 엄마는 용하다는 점집이며 스님을 찾아갔다. 상갓집 음식을 먹고 귀신이 씌인 것이라는 처방이 나오기도 했다. 엄마는 절대로 상갓집에는 가지 말라고 했다. 


외출 자체가 공포가 되면서 퇴사를 고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내 몸 상태가 최우선이 되다 보니 주말 근무와 야근은 어쩔 수 없이 피했다.


지옥 같았던 몇 달의 시간이 흐르고 찬바람이 스며들기 시작하자 다행히도 증상의 빈도는 조금씩 잦아들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 많은 곳이나 고속버스 안처럼 중간에 도망치기 어려운 장소는 피하게 되었고, 방심할 때마다 1년에 한두 번씩은 꼭 증상이 찾아왔다.


내 증상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게 된 것은 개그맨 정형돈 씨가 공황장애로 방송활동을 중단한다는 기사를 읽게 되었을 때였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공황장애나 불안장애에 대해 대중들에게 알려진 바가 거의 없었다. 기사에서는 공황장애의 증상이 무엇인지 간략히 설명하고 있었고 내 일상을 송두리째 쥐고 흔든 녀석의 정체 역시 그놈이라는 것을 활자 하나하나가 분명히 가리키고 있었다. 


내가 다닌 회사는 전력 계통 운영에 필요한 기계, 장비들과 시스템을 만드는 곳이었다. 회사의 가장 핵심 제품 중 하나는 전력 차단기였다.


차단기는 전기 회로에 과부하가 걸리거나 비정상적으로 많은 전류가 갑자기 흐르게 될 때 사고를 막기 위해 자동으로 회로를 정지시키는 장치이다. 흔히 ‘두꺼비집’이라고 부르는 누전 차단기가 그중 하나다. 어느 날 갑자기 두꺼비집이 내려가 집 전체가 정전이 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집안 어딘가에서 누전이 되었거나 또 다른 전기적인 문제가 감지되어 두꺼비집이 전기 공급을 순간적으로 차단한 것이다. 이상 상태로 전기가 계속 흐르면 감전 사고나 화재 등의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전력이 공급되는 모든 계통의 경로 마디마디에는 용량에 맞는 차단기가 필수로 설치되어야만 한다.


공황장애 증상이 찾아올 때가 언제인지 뒤돌아보았다. 내 몸과 마음이 힘들고 지쳐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끊임없이 일로 나를 몰아붙여 과부하가 걸렸을 때였다. 또는 110V짜리 플러그를 220V용 콘센트에 꽂는 일처럼 감당하기 어렵거나 불편한 인간관계 속에 나를 억지로 욱여넣을 때였다. 


어쩌면 공황장애는 필요한 순간에 탁 하고 내려가는 두꺼비집처럼 시그널을 주는 증상이 아닐까? 더 큰 피해로 나를 망가뜨리지 않도록 어서 조치를 취하라고, 나에게 맞지 않는 전압이니 어서 조치를 취하라고, 내 몸과 마음의 상태를 제대로 살피라고 단호하게 말해주는 듯하다. 나 자신의 힘듦을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거나 부정할 때 증상은 불시에 나타난다. 


내 안의 두꺼비집이 내려가 버리는 순간마다 어떻게든 다시 레버를 끌어올려 내 자신을 다시 몰아붙여 왔다. 그것은 임시방편에 불과했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내 인생의 회로 설계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잠시 멈춰 들여다봐야 할 때임을 깨달았다. 


나는 회사라는 계통에 맞지 않는 정격을 지닌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모두가 퇴근한 불 꺼진 사무실에서 인사 시스템에 접속했다. 퇴직원 양식을 띄운 모니터 불빛이 내 얼굴을 환하게 밝혀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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