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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짓는애 Jan 06. 2022

짓는애의 수촌리 이야기

#2_장날이니까 가는 날입니다.

수촌리 근처에는 2번의 장이 선다. ‘5,0’이 들어가는 날짜에 열리는 발안만세시장과 ‘4,9’가 들어가는 날에 열리는 조암 시장이 그것이다. 아무리 바빠도 장날은 꼭 챙겨야 하는 엄마와 함께 살고 있는 덕에 두 장날 중 한 번은 꼭, 어떨 땐 두 장날을 모두 가곤 한다.

(좌) 이 곳에서 하리보를 찾지 마세요.                               (우) 장날만 가면 먹을 게 너무 많아서 신나는 아이


장날에 가는 마음 가짐과 마트에 가는 마음 가짐은 다르다. 마트에 갈 땐 사야할 물건의 리스트를 정리하고 필요한 물건만 딱딱 사오려고 노력하지만, 장날엔 일단 살 게 없어도 현금을 두둑히 챙기고, 지갑과 마음을 애초에 무장해제한 상태로 입장한다.


(좌) 입구에서부터 마주친 송화버섯                             (우) 살짝 데쳐 기름장에 먹으면 소고기가 부럽지 않은 맛!


그렇게 시장 입구에서부터 탐스러운 송화버섯을 만나 1kg, 쪼그려 앉아 직접 캐서 다듬은 나물을 파는 할머니께 나물 몇 천원 어치, 제철 딸기가 빨갛게 스티로폼 박스 속에서 쳐다보는 걸 무시하지 못 하고 한 박스, 생각하지도 않았던 수면바지가 따뜻해보여서 두 장... 그렇게 시나브로 사다보면 다이소에서 천 원짜리로 몇 만원 쓰는 것쯤은 우스울 정도로 준비한 현금을 모두 쓰고 오게 된다.


하지만 진짜 시장의 하이라이트는 이것! 매번 같은 장날인 것을 알면서도 엄마와 내가 장날만 되면 신이나서 현금을 준비하는 이유는 시장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이 간식들 때문일지도 모른다. 입구에서부터 코를 파고드는 고소한 뻥튀기 냄새와, 모락 모락 김이 나는 뉴슈가 맛 찰옥수수, 지글지글 호떡, 기름에 풍덩 빠져 설탕을 뿌린 꽈배기와 팥도나스까지! (중요! 도넛아니고 도너츠아니고 도나스다.)


(좌) 장날은 언제나 붕세권                                                    (우) 파리바게뜨에선 먹을 수 없는 맛


이것 저것 너무 많이 사서 더 물건을 들 손이 없는데도 꾸역 꾸역 “호떡 3개랑, 붕어빵 3개요.” “꽈배기랑 도너츠 3개씩요.” “뻥튀기 한 봉지요!” “찰옥수수 3개 주세요! 검정알 섞인걸로요.” 하게 되는 마성의 시장 간식들. 집에 돌아와서 사온 것을 한 보따리 펼쳐놓고 나면 막상 필요했던 것은 한 개도 없고 온갖 주전부리와 생각지도 못했던 음식과 물건들이 가득하지만 마음만은 든든해지고 어서 정리하고 먹을 생각에 계속 신이 나는 장날.


사계절의 변화에 따른 제철 음식을 가장 실감나게 만날 수 있는 곳. 사람냄새 음식냄새 가득한 곳에서 정겨움을 느낄 수 있는 곳. 가는 길이 설레이고 오는 길이 든든한 곳. 어쩌면 장날의 장은 시장이 아니라 축제의 ‘장’일지도 모른다. 나는 수촌리에 살며 장날이 내게 추억 속의 장소, 기억으로 남지 않을 수 있음에 참 감사하다. 인터넷과 마트에 즐비한 ‘상품’들과는 다른 이야기가 있는 장날의 ‘물건’들. 그것들을 계속 일상적으로 만나며 그들의 이야기를 나의 이야기로 더 하고 싶다.


그래서 앞으로도 나에게 장날은 살 게 없어도 그냥 “장날이니까. 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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