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편- 나의 영어 입문기

by 해나쌤

내가 영어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좀 민망하다. 중학교 3학년 즈음으로 기억한다. 다니던 교회에서 해마다 가족 찬양 대회를 했다. 가족들끼리 나와서 노래를 한 곡씩 부르고 들어가는 행사였는데, 초등학교 1학년 외동딸이 있는 한 가족이 나와서 아주 쉬운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1절이 끝나자 같은 노래를 영어로 부르는 게 아닌가. 그것도 보지 않고 외워서! 그 장면이 나에게는 굉장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나는 영어로 부를 수 있는 노래가 하나도 없는데, 초등학교 1학년이 영어로 노래를 부르다니. 사실 그 노래의 가사는 정말 쉽다. Jesus I love you, I bow down before you. Praise and worship to our King이 가사의 전부였다. 그러나 그때는 정말 그게 그렇게 대단해 보일 수 없었다.


chris-liverani-rD2dc_2S3i0-unsplash.jpg 노래는 수학 문제 풀때만 가능한 줄 알았는데 영어노래는 (못 알아 들어서) 국어시간에도 들을 수 있었다 ;;;


나는 그 자리에서 결심했다. ‘나도 영어로 찬양을 외워서 부르겠다. 저 노래보다 훨씬 어려운 걸로, 한 곡이 아니라 여러 곡을!!!’ 며칠 지나지 않아 영어 찬양 테이프를 사서 매일 듣기 시작했다. 음악을 좋아해서 노래를 듣는 걸 늘 즐겼지만, 그 전까지 영어로 된 노래를 듣지는 않았다. 영어 노래를 들으면서 좋았던 건, 한국어 노래는 가사가 신경 쓰여서 수학문제 풀 때 빼고는 공부하면서 듣기 어려웠는데, 영어 노래는 그런 게 없다는 것이었다. 국어 공부를 할 때도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만큼 나는 별로 알아듣는 게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영어 찬양을 국어 문제집을 풀 때 들을 수 없게 되었다. 들리는 게 많아지고 가사가 외워지면서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암기 과목을 공부하면 깜지(종이 여백이 하나도 안 보일만큼 내용을 써가며 공부한 종이)를 만드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나는 영어노래를 암기하겠다고 생각하면서 깜지를 만들지는 않았다. 대신 가사지를 보지 않고 가사가 들릴 때까지 며칠이고 몇 주고 듣다가 정 안 들리면 가사를 한 번씩 보는 정도였다. 모르는 단어도 그때 그때 찾아보는 것이 아니라 지겨울 때까지 듣다가 그 단어가 궁금해지면 그때서야 뜻을 찾아보았다. 영어듣기 공부로 생각하고 하라고 했으면 못했을 건데, 그냥 나는 노래 듣는 게 좋아서 영어로 노래를 듣는다고 생각하니 부담없이 그냥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노래로 영어 공부를 하는 것의 좋은 점이 그거였다.


malte-wingen-PDX_a_82obo-unsplash.jpg 영어노래를 듣는 건 공부가 아닌 즐거운 여가였다. 발음과 듣기는 덤이었을 뿐.


지금도 공부해야겠다고 마음 먹고 노래를 외우면 잘 되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서 더 잘 안 외워지기도 한다. 공부로 접근해서 외우는데 어려움을 겪었던 대표적인 노래가 <반짝반짝 작은 별>의 영어곡인 <Twinkle Twinkle Little Star>다. 어릴 때 영어 좀 한다는 애들이 이 노래부터 부른다는데, 영어 좀 한다는 내가 이 곡을 모른다는 게 좀 그래서 외우려고 몇 번을 듣고 불렀다. 그런데 그렇게도 입에 안 붙는 거다. 이 노래가 안 외워진다는 게 왜 그렇게 창피한지. 그런데 노래가 좋아서 계속 듣다가 가사가 궁금해서 찾게 된 곡들은 한 번 가사를 알게 되면 쉽게 외워진다. 지금 외우고 있는 노래들이 대부분 그렇게 외운 것들인데 15년, 20년이 지나도 외우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외운 표현들을 종종 써 먹는다.


결국 영어라는 것은 학습으로 접근하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것으로 접근해야 하는 거다. 드라마나 영화 보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은 미드나 영화를 보다가 소리와 표현에 노출되는 양이 많아지면서 말하기도 가능해질 가능성이 높다. 활동적인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뮤지컬 같은 걸 하다가 영어와 친해지기도 한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영어도 책을 읽다가 잘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dan-cook-MCauAnBJeig-unsplash.jpg 좋아하는 것과 영어를 연결시켜 보자!


영어 노래로 영어를 배우는 것의 좋은 점은 자연스럽게 발음과 끊어 읽기를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영어는 단어로 공부할 때보다 구(phrase)로 배울 때 훨씬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다. 노래는 그걸 자연스럽게 가르쳐준다. 그리고 영어찬양으로 영어에 노출된 나의 경우는 좀 특이한데, 영어찬양에서 많이 쓰이는 표현들이 여러 노래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다 보니 자연스럽게 알아듣게 되고 학습한 것들이 꽤 많았다. 노래에서 나온 표현들이 설교에서 나오기도 해서 나중에 외국인 설교를 들을 때도 어렵지 않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미드를 보는 것도 비슷한 효과가 있다. 나는 드라마 보는 걸 좋아하는 편이 아니어서 미드를 많이 보진 않았는데, 최근에 캐나다에서 방영한 <Kim’s convenience>라는 시트콤을 추천 받아 보게 되었다. <김씨네 편의점>으로도 알려져 있는 이 시트콤은 한국 이민자 가정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 되어서 영어를 다 이해하지 못해도 공감되는 지점들이 꽤 많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드라마를 이어서 보게 되었고, 몇 편을 시리즈로 계속 보다 보니 주인공들이 자주 쓰는 표현들이 귀에 들어왔다. 아는 지인은 드라마를 보다가 일본어를 배우게 되었다고 했는데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회화는 가능하지만 글은 읽지 못하는 문맹이었다는 슬픈 사실… 나중에 따로 학원을 다녀서 극복하였다.) 내가 드라마 보는 걸 정말 좋아하면 미드만큼 좋은 영어자료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역시나 나는 동영상 보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김씨네 편의점만 보고 영어 드라마를 더 보진 않았다. 역시 영어는 좋아하는 것을 찾아 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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