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 설립부터 비자발급까지
싱가포르에서 외국인으로서 법인 설립하는 데는 5일도 채 안 걸린다.
대신 싱가포르 국적 이사가 1명 이상 있어야 설립이 가능한데, 지분 없이 명의만 이사인 조건으로도 가능해서 많은 현지 에이전시들이 이름만 빌리는 이사 서비스를 (local director service)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는 현지 투자자가 local director 역할을 해 주셔서 외부 서비스를 이용할 필요가 없었다.
싱가포르는 특이한 점이 모든 회사가 외부 법인 비서 (Corporate Secretary)를 필수로 임명해야 한다. 수많은 법인 비서 대행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들이 있고, 법인 비서는 회사의 주주총회, 주식 등록 및 교부, 상법 등 준수 여부 모니터링 등의 역할을 한다. 연 단위로 계약을 하며, 보통 기본적인 법인 비서 서비스 외에도 회계, 법인 설립, 비자대행 등의 업무도 같이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법인이라면 의무적으로 담당 정부기관에 연간 재무보고서, 세무보고 등을 해야 해서, 한 회사에서 법인 비서 서비스, 회계 및 세무서비스를 함께 제공받는 게 기업 입장에서는 편하다.
법인 설립
우리는 법인 설립 전에, 소개받은 외부 법인 비서를 먼저 선임해서, 법인 설립 절차부터 대행을 맡겼다. 비서가 안내하는 절차에 따라 법인 정관 등을 만들어서, Acra라는 담당 정부기관에 법인 설립 신청을 하면 끝이다. 싱가포르는 법인 최소 자본금이 없다. 따라서 초기 자본금 10만 원을 넣든 1000만 원을 넣든 회사의 선택이다.
Acra에서 법인 허가가 나오면 관련 서류를 준비해서 DBS 등의 은행에 가서 법인계좌를 만들 수 있다. 계좌를 만드는 일도 여러 번 은행을 방문해야 했고, 절차가 쉽지 않았던 걸로 기억을 하는데, 이 부분 역시 법인 비서가 동행해서 도움을 주었다.
고용비자
법인 설립과 은행계좌 설립이 끝나면, 다음으로 중요한 비자 신청이 있다. 외국인 신분으로 법인을 설립하면, 자동적으로 싱가포르에서 거주하며 일할 수 있는 비자가 나오는 게 아니라, 창업자 자신을 포함한 앞으로 고용할 비거주자 (싱가포르 국민이나 영주권자가 아닌) 직원들의 비자를 발급받아야 한다.
창업자로서 신청할 수 있는 비자는 Entrepreneur Pass와 Employment Pass가 있는데, Entrepreneur Pass는 실질적으로 신청과 발급 자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어렵다는 주변의 조언으로 나는 Employment Pass를 신청했다. 비자 이름과 신청서류, 조건들만 다르고, 실제 비자가 주는 혜택은 둘이 거의 똑같다고 본다.
비자 신청 방법은 본인이 직접 하는 방법 있고, 이 또한 HR 대행업체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는데, 본인이 직접 하면 비용이 많이 절감되는 반면에 서류 준비 및 정보 수집 등에 수고스럽고, 또 실수하거나 방법을 잘 터득하지 못할 경우 거절될 확률도 있다. 우리의 경우는 투자사에서, 내 싱가포르 고용비자가 거절당할 경우, 투자를 취소하겠다는 조건이 있어서 어설프게 비용 아끼느라 내가 직접 하는 것보다, 비자 대행 경험이 많은 HR 전문가의 서비스를 택했다. HR 대행업체를 이용해도 100% 비자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대행업체는 보통 기본보수를 실비 정도만 받고, 성공보수로 업무를 수임한다.
나의 경우는 비자 신청 후 3-4일 안에 2년 유효한 고용비자가 나왔는데, 이 부분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다들 다르다고들 한다. 나랑 같은 MBA 스쿨을 졸업한, 싱가포르에 거주 경험이 똑같이 있는 프랑스 국적 친구는 한번 거절을 당해서 다시 신청했을 때 2개월 걸려서 비자를 발급받았다고 했고, 어떤 중국인 지인은 한 달 정도 걸려서 받았고, 또 어떤 한국인 지인은 신청 3일 만에 5년 유효한 고용비자를 받으신 분도 있다. 아마도 싱가포르도 마찬가지로 자국민 보호를 강화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고용비자를 처음 받았던 2016년 보다 지금은 외국인들이 비자를 받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그렇게 법인 설립, 계좌 설립, 고용비자까지 절차를 마치면, 이제 사업만 하면 된다 ㅎㅎ 그 세 가지 절차를 맨땅에 헤딩하 듯 밟아가는 것도 (물론 법인 비서의 도움이 있었지만) 꽤 우여곡절이 있었고 쉬운 일만은 아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 정도 우여곡절은 그 후의 사업 여정을 되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