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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리 Nov 08. 2022

프로덕트 디자이너는 왜 스타트업 PO가 되었을까?

네카라쿠배 디자이너가 되지 않고, 초기 스타트업 PO가 된 이야기

안녕하세요. Product Owner이자 Product Designer로 일하는 이혜리입니다. 저는 디자인을 전공하고, UX/UI 디자이너,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일하다, 올해 6월부터 PO로 직무를 확장했습니다. 제가 디자이너로 스타트업, 컨설턴시, IT 공룡기업을 거쳐, 초기 스타트업의 PO가 된 이야기를 공유하려 합니다. 


1. UX/UI 디자이너가 된 배경
2. UX에 대한 원론적인 고민이 깊었던 UI 디자이너
3. 네카라쿠배 프로덕트 디자이너 인턴이 되다
4. 사용자를 진짜로 이해하고 시장을 발견하는 UX 전문가가 되고 싶다
5. 사용자에게 집착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PO의 일을 하게 되었다




UX/UI 디자이너가 된 배경


대학에서 디지털 미디어 디자인을 전공하고, 3학년 때 UX 디자인을 처음 배웠다.

사람들이 생활하면서 겪는 문제를 발견하고, 문제를 해결할 시스템을 설계하는 UX 디자인이 재밌었다.

내가 공부한 것을 실무에서 활용할 수 있는지 궁금해서, 휴학을 하고 스타트업에서 UX 디자이너 인턴을 했다. 인턴을 한 곳은 가사 청소 O2O(Online to Offline) 서비스를 만드는 스타트업이었고, O2O 서비스 특성상 오프라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클리너분들을 매주 만났다. 그분들을 관찰하고 인터뷰하면서 사용자의 삶을 인터페이스에 반영하는 UX/UI 디자이너의 역할을 생생하게 경험했다.

그때는 스타트업이 뭔지도 잘 몰랐지만, 내가 주도적으로 일을 벌이고 다양한 직군 팀원들과 소통하며 함께 제품을 만드는, 스타트업 환경이 나와 잘 맞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1인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디자인 피드백을 나눌 동료가 없어 아쉬웠고, 다음 커리어는 디자이너 동료가 많은 환경에서 디자인 전문성을 키우고 싶었다.

그렇게, 마지막 학기에 디자인 컨설턴시에 UI 디자이너로 입사했고, 본격적인 경력을 시작했다.




UX에 대한 원론적인 고민이 깊었던 UI 디자이너


디자인 컨설턴시는 기대했던 것처럼 디자이너 동료가 많았다. 커머스, 금융 등 다양한 도메인을 경험하고, 컨설팅, 개선, 제안, 구축 등 다양한 단계의 디자인을 할 수 있었다.

컨설턴시에서는 프로젝트가 확정되면 TF 팀이 결성되고, 내가 속했던 TF 팀은 주로 UX 팀, UI 팀으로 구성됐다. 고객사의 요구사항과 UX 팀의 전략 및 설계도가 UI 팀에 내려오고, UI 디자이너인 나는 리더님의 리딩에 따라 UI 디자인을 했다.

노하우가 많은 디자인 전문회사이고, 경험 많은 리더님 덕분에, 나는 짜인 프로세스에 따라 큰 어려움 없이 디자인에 집중할 수 있었다. 디자인 기본기와 실력이 많이 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UX에 대한 원론적인 고민이 깊어졌다.


컨설턴시는 자사 서비스를 디자인하지 않다 보니, 실제 서비스를 사용하는 고객 데이터를 볼 수 없었다. 실제 사용자의 특성과 행동을 알 수 없어서 ‘내가 누구를 위한’, ‘그 사람들의 어떤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해’ 디자인하는지를 느끼기 어려웠다.

또한, ‘기획 → 디자인 → 개발 → 출시’ 모든 단계를 확실히 매듭짓고 넘어가는 워터풀(waterfall)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디자인 완료와 출시 시기의 간격이 길었다.

디자인을 완성해서 개발 팀으로 업무가 넘어간 후부터는 제품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한 디자인을 실제 사용자들이 어떻게 사용하는지, 어떻게 더 개선해야 하는지, 문제가 해결되었는지, 좋은 변화를 만들었는지 등을 알 수 없었다.

모두가 쉽고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사용성 좋은 디자인을 하는 것도 보람찬 일이지만, 나는 디자인한 제품이 실제로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직접 보고 고객 피드백을 받으며, 점점 좋아지는 방향으로 제품을 디자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자사 제품과 사용자를 지속해서 관찰하고 디자인하는, IT 인하우스로 이직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실제 사용자들이 원하는 것을 찾는 방법’, ‘디자인 결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방법’, ‘비즈니스 임팩트를 만드는 디자인’ 등을 고민하며, 자연스럽게 Data-Driven-UX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 시기에 현재 재직 중인 회사(이하 POOLA)를 만났다.

중학교 동창 친구가 한국 여성 속옷 시장의 문제를 해결할 온라인 서비스를 만들려 하는데, UX/UI 디자인 도움이 필요하다며 연락해왔다.

이직하기 전에, Data-Driven-UX로 제품을 만들어 볼 기회라 생각해, 사이드 프로젝트로 POOLA를 시작했다.

사이드 프로젝트로 함께 하기를 결정하던 날, Poola 대표님과의 카톡

디자인 컨설턴시를 다니며 POOLA를 사이드 프로젝트로 병행하다, 그해 말, LINE 해외 인턴십에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합격했다.



네카라쿠배 프로덕트 디자이너 인턴이 되다


LINE은 디자인 인프라가 너무 좋았고 하이브리드 근무(원격, 출근 중 선택해서 근무)라 워라밸이 최고였다.

디자인 시스템이나 공통 UX 정의도 잘 되어있어서, 내부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며 일할 수 있었다.

사업, 개발, 기획, 디자인팀이 모여서 하는 회의가 상당히 많았는데, 사업이나 개발 주도 미팅에서 나오는 내용들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일단, 직원분들과 나의 배경지식 차이가 너무 컸는데, 그걸 인턴에게 교육해주는 프로그램이나 리소스가 없었다. 나는 눈치껏 알아듣거나, 광활한 위키를 파헤치며 히스토리를 파악했다.

하지만 국제 법률, 결제 구조, 개발 아키텍처, 내부 레거시 등을 6개월 동안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아마 다니다 보면 언젠간 이해했겠지만, 모르는 게 너무 많고 평면적인 디자인을 한다는 느낌이 들어 답답했다.

무엇보다, 사용자에 대한 이해도가 컨설턴시에 있던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인하우스에서 자사 서비스를 디자인하면, 사용자/비즈니스 지표에서 인사이트를 얻고, 사실에 기반한 디자인을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해외 서비스를 디자인했기 때문인지, 인턴이라 데이터를 자유롭게 열람하지 못했기 때문인지… 사실에 근거한 사용자의 니즈를 파악하고 디자인하지는 못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늘 앞단(Why)이 궁금했던 것 같다.

디자인을 하기 전에, 내가 왜 이 기능을 디자인해야 하는지, 어떤 결과를 기대하며 디자인해야 하는지 등 목적과 방향을 더 이해하고 싶었다.

인턴십이 끝나갈 무렵에 리더님으로부터 입사 제의를 받았다. 체험형 인턴십이었기 때문에, 지원 의사가 있으면 면접을 다시 봐야 했고, 면접 준비 기간 동안 진로를 많이 고민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면접을 보지 않았고 지금은 POOLA에서 PO이자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커리어 포트폴리오, 간략하게 표현하느라 막대그래프와 기간의 비율이 동일하지는 않다




사용자를 진짜로 이해하고 시장을 발견하는 UX 전문가가 되고 싶다


POOLA는 Seed 투자를 받은 초기 스타트업이다. 합류 당시 팀원은 CEO, 마케터, 프런트엔드 개발자, 백엔드 개발자, 파트타임 디자이너인 나까지 5명이었다.

POOLA에 정식 팀원으로 합류한다면, 프로덕트 이해도가 높고 서비스 설계를 해온 내가 프로덕트 책임자가 된다. 프로덕트에 관한 주요 의사결정을 내리고 액션플랜을 계획해야 한다.

주니어인 나는 이 역할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내심 하고 싶었던 일이지만, 잘할 수 있을지는 감도 오지 않았다. 결코 자신만만해서 도전적인 선택을 한 것이 아니다.

불안을 느끼면서도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는, 사용자 이해를 기반으로 시장을 만드는 UX 전문가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UX 전문가는 사용자를 이해하는 방법을 알고, 사용자의 니즈를 뾰족하게 파악해서 이를 실행에 옮길 UX 전략을 세울 수 있는 사람이다. 전략도 하나의 가설이기 때문에 실패할 확률이 높겠지만, 실패 경험을 활용해서 개선된 전략을 세우고 이터레이션(iteration)할 수 있는 전문가로 성장하고 싶다.

내가 원하는 모습의 전문가로 성장하기 위한 경험이 필요했다.

POOLA에서 사용자를 깊게 공부하고 니즈를 파악해서 비즈니스와 연결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존경하는 교수님께서 사회로 도약하는 우리에게 마지막 수업에서 가르쳐 주신 '일의 공식'


POOLA 프로덕트가 만들어지기 전부터(초기 MVP만 있을 때부터) POOLA의 구조와 기능을 설계했기 때문에, 도메인 이해도가 높고 애정이 크다.

파트타임 팀원으로 약 1년간 제로 투 원을 만들며, 12만 명의 큐레이션 유저와 1만 명의 회원가입 유저를 모았고, 이들의 행동 데이터가 곳곳에 남아있다. 이 데이터를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고, 팀원들과 함께 데이터를 해석하고 다음 액션플랜을 계획한다. 소수의 타직군 팀원들이 끈끈하게 협업하다 보니, 프로덕트를 넓은 시야로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커뮤니티 마케팅을 통해 쌓인 VOC를 공유받고, 프로모션의 성패 원인을 프로덕트에 적용할 수 있다. 반대로, 프로덕트 개선이 아닌 콘텐츠 마케팅만으로 좋은 성과를 만들 수 있는 일을, 내가 마케팅 팀에 선제안하기도 하며, 시너지를 만들고 있다.

생각이 다른 여러 팀이 하나의 프로덕트를 만들면, 얼라인을 맞추고 가설을 실험하기 어려운데, 작은 규모와 말랑말랑하게 의견을 잘 수용하는 팀원들 덕분에, 모두 같은 방향을 보며 프로덕트를 만들 수 있다.


요즘은 해비 유저 20명의 구매 데이터를 샅샅이 뜯어보며 심층 분석하고 있다. 각각의 데이터를 노가다에 가깝게 파헤치며 보고 있는데, 확실히 사용자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다.

해비 유저 데이터를 일일이 대조해보며 패턴을 찾고 있다

POOLA에서 재구매를 한 사용자들의 인구통계학적 특징부터 구매 시, 구매 후의 행동 패턴 등을 보며, 테스트해보고 싶은 액션 아이템이 가득 생겼다.

이 일을 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지만 시키니깐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일을 해야 하는 이유와 방향을 논리적으로 찾아가는 과정이 어렵지만 재밌다.

사원일 때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게 되고, 가장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기 위해 복합적인 정보를 함께 고려하게 된다.

지금까지 경험한 것, 나의 성장 속도, 시장 반응, 팀원들과의 호흡을 봤을 때, 아직 해볼 수 있는 것과 배울 게 너무 많고, 주니어가 흔히 할 수 없는 이 경험이 나의 단단한 스토리가 될 것이다. 이 스토리가 나를 전문가로 만들어 줄 거라 믿는다.




사용자에게 집착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PO의 일을 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PO로 직군 전환을 하려 했던 건 아니다.

사용자의 행동과 이유, 니즈를 또렷하게 파악하고, 데이터와 실험을 통해 성패를 판단할 수 있는 결과를 만드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다. 사용자를 공부하고 사용자에게 집착하며 문제를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PO의 일을 하고 있다.

Product owner가 하는 일은 무엇일까? 특정 Product를 개발하여 서비스하기 위해선 개발자, 디자이너 외에 Product owner와 같은 비즈니스 담당자가 필요하다.(생략) Product owner는 고객 입장에서 제품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그래서 결국 비즈니스로 연결되는, 방향타 같은 role이라 보면 된다.

출처: 서인용 Sancho, 그래서 Product owner는 뭐하는 사람이에요?


사실은 내가 이렇게 빨리 PO가 될 줄 몰랐다. PO 직군에 관심 있었지만, 경험과 경력을 더 쌓아야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PO는 비즈니스, 기술, 데이터를 모두 잘 아는 사람이니, 나는 아직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업무를 하면서도 불안했다. ‘나는 프로덕트 디자이너인데, 이렇게 디자인에서 벗어난 일만 해도 되나?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내 경력에 쓸모없는 일이면 어떡하지?’ '세상 물정도 모르는 내가 비즈니스를 어떻게 고민하지?' 일에 몰입하다가도 불쑥 불안해졌다.


와디즈 초기 PO 셨던 분께 매주 PO 멘토링을 받고 있다. 멘토님께 나의 불안을 말씀드렸더니, 일반기업과 스타트업의 차이점을 말씀해주셨다. 일반기업은 회사에서 제품을 만들어서 출시하면 고객이 사는 거지만, 스타트업은 고객을 발견하고 그 고객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셨다. 그게 차이이고, 그래서 스타트업의 비즈니스는 고객을 발굴하는 거라고 하셨다. 이 말이 나에게 큰 용기가 되었다.

고객을 발굴하고 고객이 원하는 것을 알아내는 것이 스타트업의 비즈니스라면, 고객이 겪는 문제를 발견하고 고객을 이해하기 위해 집착하는 UX 디자이너 배경을 살려서, 나도 PO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고객 개발 방법론>
1. 해결할 만한, 고객에게 가치 있는 문제를 찾는다
2. 그 문제를 해결하는 비즈니스를 구상한다.
3. 고객이 있음을 증명한다.
4. 고객을 만들어 낸다.
5. 스타트업에서 회사로 성장시킨다.

출처: The customer development model by Steve Blank


확신과 불안을 반복하며, 생각이 계속 바뀌는 초보 PO이다. 하지만, 목표가 분명하다. 사용자를 공부하고, 사용자와 회사의 중간에서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며 프로덕트를 만드는 전문가가 되고 싶다.

앞으로 브런치에서, 초보 PO이자 프로덕트 디자이너인 내가 POOLA의 고객을 이해하고 시장을 발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프로덕트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공유하려 한다. 어설프고 부족할지라도, 글로 써야 배운 경험을 온전히 소화할 수 있고, 사람들에게 공개해야 피드백을 들으며 더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랜선 선생님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 )

피드백이나 질문 있으시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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