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소스가 부족한 스타트업에서 꼭 해야 할 일과 하면 좋을 일 구분하기
내가 만들고 있는 POOLA 서비스는 모든 여성이 각자에게 잘 맞는 속옷을 찾을 수 있도록, 여성들의 체형 데이터와 D2C 쇼핑몰의 속옷 데이터를 연결해서 각자에게 개인화된 추천을 해주는 펨테크(Femtech, Female+Technology 합성어로, 여성 건강에 초점을 맞추는 서비스, 기술을 의미) 큐레이션 플랫폼이다.
POOLA의 개인화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가슴 분석 테스트를 해야 한다. 간단한 가슴 분석 테스트를 통해, 체형 데이터를 입력하고 본인에게 맞는 속옷을 추천받을 수 있다. 가슴 분석 결과를 요약해서 보여주는 화면이 '가슴 분석 결과 페이지(이하, 결과페이지)'이다. POOLA의 기본이자 핵심 서비스인 결과페이지를 UT, 프로토타입을 활용한 유저 인터뷰, 어피니티 다이어그램, 우선순위 결정 워크숍 등을 하며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 개선했다.
대폭 개선한 결과페이지를 프로덕트 내/외부에서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싶었다. 서비스를 개선하고 이를 홍보할 방법을 기획했을 때,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하다 보니, 일의 목적이 희미해져서 '꼭 해야 할 일'이 아닌 '하면 좋을 일'을 할 뻔했다. 이 문제를 어떻게 발견했고 어떤 해결 방법을 시도하고 있는지 자세한 내용을 공유해본다.
목차
발단: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 개선한 결과페이지
전개: 프로덕트 내/외부에서 결과페이지 홍보하기
위기: 하마터면 목적과 관련성 낮은, '하면 좋을 일'을 할 뻔했다
절정: 항상 Why를 생각할 수 있는 환경 만들기
결말: 함께 일하는 팀원들과 Why를 편하게 이야기하고 합리적으로 의사 결정할 수 있게 되었다
"고객은 결과페이지를 이해하지 못해서 결과페이지에서 회원 가입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가설 아래, 회원가입 전환율 상승을 목표로 결과페이지를 개선했다.
ASIS 버전으로 UT와 인터뷰를 하고, 사용자가 결과페이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와 개선점을 파악했다. 사용자가 결과페이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를 해결하기 위해선 생각보다 더 큰 개선이 필요했다. 이참에, "여성들은 체형에 잘 맞는 속옷을 추천받는다면 구매할 것이다"라는 POOLA의 전제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가장 기본이자 핵심이 되는, 결과페이지 개선 프로젝트를 따로 빼서 진행했다.
UT와 인터뷰를 통해 발견한 고객 페인 포인트를 반영해서 결과페이지의 프로토타입을 제작했다.
지인과 찐 유저를 합쳐, 14명의 여성을 인터뷰했다. 인터뷰 진행 중, 유저들의 공통된 의견이면서, 우리의 개선방향과 일치하고, 빠르게 프로토타입에 반영할 수 있는 개선 사항은 바로바로 적용해서 프로토타입을 고도화했다.
ASIS 버전으로 진행한 유저 인터뷰에서 가슴 유형 평균 이해도는 약 38% 였고, "유형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고 그래프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았다. 유형 설명과 그래프 등을 개선한 프로토타입 인터뷰에서는 결과페이지 이해도가 약 137% 상승했다. 여기서 끝내지 않고, 프로토타입 인터뷰에서 얻은 인사이트로 우리가 이후 해결해야 할 문제를 도출했다.
인터뷰에서 얻은 인사이트를 유저 스토리 형태로 가공해 개별 카드로 만들었다. 팀원들과 함께, 유저 스토리 카드로 어피니티 다이어그램을 만들어서 우선순위 액션 아이템을 뽑는 우선순위 결정 워크숍을 진행했다.
Must to have / Good to have / Not my business로 카드 그룹을 나눠서 Must to have 그룹에 속한 유저 스토리를 개선 및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워크숍 목적(Why)
사용자의 페인 포인트와 니즈를 모두 반영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사용자가 원하더라도 우리가 해결하려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거나, 리소스 대비 임팩트가 크지 않다면, 반영하지 않아야 합니다. 제한된 자원 안에서 우선순위에 맞게 실행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모든 팀원이 함께 결과페이지에서의 개선 우선순위를 정하고, 실행계획을 세우기 위해 워크숍을 진행합니다.
우선순위 결정 방법(How)
1. 유저 인터뷰에서 나온 부정/제안 의견이 반영된 유저 스토리 카드로 어피니티 다이어그램 진행합니다.
2. 각 유저 스토리 카드에 Must to have / Good to have 스티커를 붙여서 투표합니다.
<우선순위 결정 규칙>
1. Must to have: Must to have 스티커 과반수 이상
2. Good to have: Must to have 스티커 과반수 이하, Good to have 스티커 있음
3. Action Plan X: 스티커 없음
팀원들에게 워크숍의 목적(Why)과 규칙(How)을 설명했다. 워크숍을 통해 우리가 실행해야 할, Must to have 액션 아이템(What)이 결정되었다.
결과페이지 이해도와 유용성을 개선하는 프로젝트는 무려 3개월 동안 진행한 꽤 큰 프로젝트였다.
우리는 모든 여성이 자신의 체형을 이해하고 잘 맞는 속옷을 잘 골라 입을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많은 여성들이 내 체형이 이상해서 브래지어가 불편하다고 생각한다. 내 체형에 맞는 편안한 브래지어가 있다는 생각으로 '찰떡궁합 브라'를 찾으려 하지 않고, '내 체형이 이상해서' 또는 '브래지어는 원래 불편해'라고 생각하며 불편함을 참는다.
브래지어는 신체와 가장 밀접하게 접촉된 속옷이기 때문에, 브래지어만 잘 입어도 삶이 달라지는데...
꽉 끼는 브래지어를 입은 날, 소화가 안돼서 속이 답답했던 경험은, 브래지어를 입어본 여성이라면 다들 해봤을 것이다.
모든 여성이 각자에게 잘 맞는 속옷을 찾을 수 있도록 POOLA는 여성들의 체형 데이터와 D2C 쇼핑몰의 속옷 데이터를 연결해서 각자에게 개인화된 추천을 해준다. POOLA의 개인화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가슴 분석 테스트를 해야 한다.
결과페이지가 중요한 이유이고, POOLA를 사용하는 모든 사용자가 가슴 분석 결과 페이지를 봐야 한다. 그래서, 대폭 개선한 결과페이지를 프로덕트 내/외부에서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싶었다.
프로덕트는 사용자에게 좋은 경험을 주고 꾸준한 접속을 만들 수는 있지만, 서비스 밖에 있는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적극적인 서비스 홍보를 위해 마케팅 팀에 도움을 요청했다.
Why(프로젝트 목적)
가슴 분석 기능과 결과페이지를 콘텐츠로 홍보하고, 결과페이지 유입자 수를 상승시킵니다.
How(홍보 방법 및 채널)
<프로덕트 내부>
1. 가슴 분석 테스트 배너
2. 시스터 사이즈 설명 배너
3. 풀라 이용방법 배너와 상세페이지
<프로덕트 외부>
1. 인스타 콘텐츠 - 결과페이지 업데이트 소개
2. 인스타 광고 - 가슴 유형 분석 / 브라 유형 추천 / 브라 추천 콘텐츠
What(홍보물)
1. 홈 배너, 랜딩페이지
2. 인스타 콘텐츠, 광고
나름 체계적으로 Why, How, What을 꼭꼭 챙겨가며 일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진행하다 보니, 업무 하나하나의 목적을 생각하지 않고, 관련성 낮은 업무도 엮어서 후루룩 처리하려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슴 분석 테스트'와 '시스터 사이즈 설명' 배너를 홈 상단 배너 영역에 상시 노출하는 것은 핵심 기능을,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 트래픽이 높은 곳에, 눈에 띄게 노출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 두 배너는 결과페이지와 직접 연관된 콘텐츠이기 때문에, 진행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풀라 이용방법' 배너는 이 둘과 다르다. 사용자들에게 가슴 분석 서비스의 가치를 더 잘 설명하고 싶어서 추가한 기능인데, 새로운 콘텐츠이기 때문에 작업 공수 대비 효율이 좋을지는 알 수 없다.
인력과 시간이 부족한 스타트업에서 명확한 고객 페인 포인트도 없고, 공수 대비 효율을 추측할 수도 없고, 목적과 연관성도 낮은 일은 과감하게 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풀라 이용방법' 콘텐츠를 기획하려다 과감하게 그만뒀다.
사용자들은 '풀라 이용방법'을 몰라도 가슴 분석 테스트를 활발하게 이용했다.
'가슴 분석 테스트', '시스터 사이즈 설명' 배너 업로드 후, 가슴 분석 테스트 PV는 약 6배 증가했다.
이번 일을 통해, '하면 좋지'라는 이유로 일을 늘리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하면 좋을 일은 정말 많다. 하지만, 작은 일이라도 뚜렷한 목적 없이 하게 되면 시간 낭비가 될 수 있다.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일을 하기 위해, 항상 내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결정해야 한다. PO는 시간 대비 임팩트가 큰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결단이 꼭 필요하다.
'하면 좋을 일을 하지 않고, 해야 할 일만 하게 하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풀라 이용방법'을 '분석 결과 페이지 홍보'와 엮은 문제의 원인은 이 일의 목적(Why)을 꼼꼼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업무로 하려면, 시작하기 전 적어도 Why(목적)를 생각해야 한다"는 규칙을 만들었다.
이 규칙을 프로덕트 팀 Notion에는 템플릿으로, Slack 뒷간(프로덕트 개선 아이디어가 있을 때, 자유롭고 러프하게 아이디어를 던져놓는 곳) 채널에는 공지로 적어두었다.
사람의 의지는 약하지만, 환경을 통해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Why를 생각하는 환경을 조성하고 팀원들에게도 이 미션을 전파하니, 더 목적을 생각하며 일을 계획하게 되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분배하게 되었다.
인원이 적은 팀이다 보니, 프로덕트 외적인 일도 해야 할 때가 있다. 최근에는 협력 업체의 상품 택을 디자인해달라는 요구사항을 받았다. 요청을 한 대표님에게 이 일을 해야 하는 목적을 설명해달라고 했다. 요즘 나의 업무는, 앞으로 프로덕트 팀이 개발해야 할 액션 아이템을 설계하고, 새로 오신 개발자님들의 온보딩을 도우는 일을 하고 있다. 내 시간이 굉장히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에, 프로덕트나 우리 팀을 위한 일이 아닌, 외부 업체의 상품 택을 디자인해야 하는 이유/목적을 알아야 내 시간을 할당할지를 선택할 수 있었다. 대표님은 첫째, 이 업체와 지속적인 협력 관계를 이어기 위해, 둘째, 앞으로 이 업체와 공동 제작한 POOLA PB 상품에도 이 상품 택이 붙을 것이기 때문에, 장기적 관점에서 택 디자인을 해주면 좋겠다고 하셨다.
지금의 상품 택은 노후한 느낌이기 때문에 2시간 정도만 시간을 들여서 개선해도 훨씬 나아질 것이다. 딱 2시간만 시간을 들여 택 디자인을 하기로 결정했다.
팀원들에게 Why가 중요한 이유를 충분히 공유했기 때문에, 부담 없이 대표님에게 Why를 질문했고, 원활한 의사결정이 가능했다.
브런치에 쓰고 싶은 소재가 정말 많이 쌓여있다. 매일 새로운 일이 생기고, 새롭게 깨닫는다. 특히 최근 2주 동안 프로덕트 팀에 개발자님 두 분이 새로 합류하셨다. 개발자님들의 온보딩을 돕기 위해 프로덕트 팀의 업무 방식을 정리하고, 간단한 배포 과제를 준비하고, 백로그를 파악해서 업무 우선순위를 정했다. 기업에서 늘 막내로 있으면서 디자이너 온보딩도 준비해본 적 없는 내가, 개발자 온보딩을 도울 줄이야...
한 동안 개발자 공석으로 혼자 외롭게 프로덕트를 책임졌는데, 팀원이 두 분이나 생겨서 너무 든든하고 재밌다. 개발자님들이 코드를 뜯어보고 서비스 구조를 파악하시면서 질문을 많이 주시는데, 새로 알게 되는 것들이 많다. 지금은 프로모션 기간이라 급하게 결제 오류를 해결하며 바쁜 상황이지만, 개발자님께서 최선을 다해 주시고, 내가 발견하지 못한 문제들도 먼저 제안해서 해결해주시니 너무 감사하다. 오랜만에 생동감 있게 일하는 기분이라 즐겁기까지 하다.
바쁘지만 글도 열심히 써서, 이 재밌는 경험들을 따끈따끈하게 공유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