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엄마와 딸의 평범한 일상
직장 동료와 점심을 먹었다. 사실 아버지가 오후 다섯시면 오시기 때문에 일찍 가서 상을 차리려고 했다. 아마 엄마도 그 때즈음 저녁을 먹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직장 동료와 점심도 먹고 커피도 마시다보니 집에 들어가기 싫었다. 좀 더 바깥의 공기를 느끼고 싶었다. 나의 엄마가 아프다는 것을 동료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근데 어머니가 괜찮아지시거나 그러긴 힘든거야?”
“네 그냥 저희 어머니는 계속 몸이 안 좋아지시는 그런 병이에요” 라고 말을 하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여왔다. 동료에게. 그만 물어보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그러질 못했다. 이미 눈물이 차올랐다. 속으로 “제길 망했다”를 연신 되뇌였다.
“나도 어머니가 이미 다 돌아가셔서 뭐…. 근데 아버지 잘 보살펴드려. 배우자가 먼저 떠나면 결국 남은 사람도 일찍 가버리더라고. 우리 회사에도 그런 사람들 있었어.” 하며 동료는 나의 아버지를 걱정했다. 듣고 싶지 않았다. 뭐하러 안 좋은 이야길 더 들어야겠는가. 왜 저렇게 눈치없게 계속 배우자가 죽고 금방 죽어버린 사람들을 이야기하는지 짜증이 났지만 눈에선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 이야길 들으니 걱정이 되네요.”
“아니 그것보단 잘 보살피란 이야기지 뭐..”
뭐가 아니었다. 나약해진 내 마음에는 참 송곳같고 서늘한 말들이었다. 말이 칼이 되는 것이 아마도 이런 건가보다.
동료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이야길 했다.
“나중에 거동이 불편하시면 요양원에 모셔야겠다. 혼자 다 못봐드려. 대소변 받아내야 하는데 그거 쉽지 않아.”
오지도 않은 미래, 나의 불완전하고 무서운 미래를 이렇게 말로 들어야 한다니.
나보다 열 살 이상 많은 동료이니 충분히 이런 말을 할 수 있는걸까.
옳다 그르다를 떠나서 밥만 먹고 헤어질걸 하는 후회가 밀려올 정도로 동료와의 점심이 불편해졌다.
참 속상한 일이었다. 괜히 이런 사람과 밥을 먹기 위해 집안일을 내팽겨쳐버렸나 싶었다.
나는 자꾸 어떤 과거에 집착하고 있다. 엄마가 건강했고, 집은 나름 밝았고, 나는 집 따위는 신경쓰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에 집중하며 살았던 몇 년전을 그리워하고 집착하고 있다. 남편도 자식도 없는 미혼의 막내딸. 그런 내게 아픈 엄마는 짐처럼 의무처럼, 그리고 사랑처럼 다가온다. 엄마는 자신을 돌봐야 할 의무가 있는 남편보다는 나에게 더 의지하고 있다. 집에 온 날 보자마자
“간식으로 뭐 먹을 거 없어?” 라고 묻는 엄마.
내가 하녀인가 하는 생각에 짜증이 치밀지만 “몰라. 없어” 라고 화내지 않고 담담하게 말한다.
“정말 없어?”
“없어.”
“식탁에 건빵 갖다줘.”
“왜 나만 보면 시켜?”
“다음부턴 안 시킬게.”
엄마가 화를 낼 것도 같은데 엄마는 화를 내질 않는다.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면 화도 나고 서글프고 슬퍼진다. 그 이후로는 밀려오는 자책감.
역시 엄마를 모시는 건 못할 짓인가. 요양병원인 전문가들 손에 맡겨야 하는 걸까. 근데 왜 인간은, 왜 노인은, 변화를 싫어해서 집에 더 머물려고 하는걸까. 모든 가족에게 피해를 주면서도 말이다. 그동안 사회에서 엄마로, 아내로, 어른으로 살아왔던 서글픔과 한탄을 노인이 되어서 마구 응석부리며 풀어내는걸까.
아픈 엄마를 보면서 나는 참 인생을 많이도 배워가고 있다. 평생 내게 오지 않을 것 같은 시간들을 마주하고 있다. 친구들보다 어쩌면 더 먼저 배우고 있다. 왜 나만 이런 거냐고 화를 내고 싶을 때가 있다. 역시 신은 없군 하는 생각도 든다. 근데 뭐 어쩌겠는가. 달리 방법이 없다. 견디는 것 외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