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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y Feb 02. 2023

괜찮아 괜찮아 그래도 괜찮아

일상의 조각을 모아 그림을 완성하다


어제를 생각한다. 엄마는 하루 종일 집에 계셨다. 다행히 반찬을 만들어놓으셨다. 엄마에게 “엄마 오늘은 나가자. 안되겠다.”, “싫어. 나가기 싫어.”, “안돼. 엄마. 걸어야 건강해져.” 하는 말로 엄마를 달래거나 재촉했다. 엄마는 마지못해 옷을 주섬주섬 입었다. 식사를 하고 있는 아빠는 “밖에 추우니 옷 따시게 입고 나가라” 라고 했는데 그 모습이 얄미웠다. 남편인 당신이 엄마의 운동을 챙겨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마음이 울컥 밀려왔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었던 말은


엄마랑 산책하고 올테니 아빠가 뒷정리 해놔” 였다.


소뇌위축증으로 투병 아닌 투병을 하고 있는 엄마는 등산지팡이 두 개를 전실에서 챙겨서 같이 나갔다. 아파트 한 바퀴를 엄마와 함께 돌았다. 엄마의 팔을 잡아주려고 했으나 “놔봐. 나 혼자 걸어볼게” 라고 했다. 한 바퀴 정도 돌았을까. 귀찮았던 엄마의 산책이 엄마와의 데이트로 바뀌어 있엇고 나도 귀찮고 성가셨던 마음이 누그러져서 엄마와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친구들 이야기, 오늘 있었던 이야기, 홍대를 다녀온 이야기 등등을 엄마에게 늘어놓았다.


엄마 한 바퀴 더 돌까?”

아니 추워 집에 갈래.”

“5분도 안됐는데 집에 간다고?”

하고 엄마를 타박하려고 하는 내 자신은 지팡이를 잡은 엄마의 손을 잡자마자 쑥 들어가고 말았다. 장갑을 가지고 오지 않은 엄마의 손이 얼음장 같았다. 아프시고 난 이후 더더욱 손이 차가워지셨다. 엄마의 손은 차갑고 뻐둥거렸다. 엄마의 왼손은 내 점퍼 주머니에, 오른손에 잡혀있는 지팡이는 내가 쥐고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몇 보 안되는 거리임에도 지팡이를 잡은 내 왼손은 꽤나 시려웠다. 엄마를 보호한다고 하지만 이런 디테일이 내겐 여전히 부족했다.


엄마는 소뇌위축증을 3년 전에 진단 받으셨다. 처음 1년은 보통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잘 걸으셨고, 잘 먹으셨고, 기분도 온화하셨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병은 자기 주장을 계속 하고 있는 중이다. 변비가 심해지셨고, 새벽에 두 세번 일어나서 화장실을 가신다. 걸을 때는 어지러워서 지팡이가 있어도 걸음이 쉽지 않다. 자존감도 강하고 이상하게 자존심도 강했던 엄마는 친구들과의 약속을 모두 취소하셨고, 엘레베이터의 이웃들을 만나는 것도 피하셨다. 자신의 어눌한 발음과 걸음걸이가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하지만 집에서, 우리 가족에게 엄마는, 그냥 똑같은, 예전과 같은 엄마이다. 잘 웃고 유쾌하고, 인간관계의 고민이 있으면 언제든 들어주고 해답을 주었던 나의 엄마...


적극적으로 엄마를 돌보고 있진 않다. 그럴려고 하면 두렵기 때문이다. 부모님 집에 내일 모레 마흔인 딸내미가 얹혀사니, 엄마를 돌보는 것은 월세마냥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래도 나는 적극적이지 않다. 부끄럽게도 “일찍 독립할걸. 독립의 때를 놓쳤네.’하는 마음만 가득할 뿐이다. 엄마가 운동을 했는지, 화장실은 잘 다녀왔는지, 이런 것들을 신경쓰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그럼에도 신경쓰고 확인하고나면 또 별 것 아닌 일들이다. 엄마는 어느새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 변해버렸다. 여전히 엄마의 딸이고 싶은 나는, 3년이 지났음에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받아들여야 할 현실일 것이다. 그래서 더욱 정신차리기 위해 노력한다. 직업도 탄탄하게 만들기 위해서 빈 시간들은 공부를 한다. 정규직이 되어야 한다. 직업부터 안정적으로 만들어야 엄마에게 더욱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준비를 하고 있다. 엄마를 보살필 준비, 그리고 언젠간 엄마를 떠나보낼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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