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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y Feb 06. 2023

나의 몫인지, 사회가 “네거야”라고 던져준 것인지

아픈 엄마와 딸의 평범한 일상


직장 동료와 점심을 먹었다. 사실 아버지가 오후 다섯시면 오시기 때문에 일찍 가서 상을 차리려고 했다. 아마 엄마도 그 때즈음 저녁을 먹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직장 동료와 점심도 먹고 커피도 마시다보니 집에 들어가기 싫었다. 좀 더 바깥의 공기를 느끼고 싶었다. 나의 엄마가 아프다는 것을 동료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근데 어머니가 괜찮아지시거나 그러긴 힘든거야?”

“네 그냥 저희 어머니는 계속 몸이 안 좋아지시는 그런 병이에요” 라고 말을 하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여왔다. 동료에게. 그만 물어보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그러질 못했다. 이미 눈물이 차올랐다. 속으로 “제길 망했다”를 연신 되뇌였다.


“나도 어머니가 이미 다 돌아가셔서 뭐…. 근데 아버지 잘 보살펴드려. 배우자가 먼저 떠나면 결국 남은 사람도 일찍 가버리더라고. 우리 회사에도 그런 사람들 있었어.” 하며 동료는 나의 아버지를 걱정했다. 듣고 싶지 않았다. 뭐하러 안 좋은 이야길 더 들어야겠는가. 왜 저렇게 눈치없게 계속 배우자가 죽고 금방 죽어버린 사람들을 이야기하는지 짜증이 났지만 눈에선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 이야길 들으니 걱정이 되네요.”

“아니 그것보단 잘 보살피란 이야기지 뭐..”


뭐가 아니었다. 나약해진 내 마음에는 참 송곳같고 서늘한 말들이었다. 말이 칼이 되는 것이 아마도 이런 건가보다.

동료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이야길 했다.


“나중에 거동이 불편하시면 요양원에 모셔야겠다. 혼자 다 못봐드려. 대소변 받아내야 하는데 그거 쉽지 않아.”

오지도 않은 미래, 나의 불완전하고 무서운 미래를 이렇게 말로 들어야 한다니.

나보다 열 살 이상 많은 동료이니 충분히 이런 말을 할 수 있는걸까.

옳다 그르다를 떠나서 밥만 먹고 헤어질걸 하는 후회가 밀려올 정도로 동료와의 점심이 불편해졌다.

참 속상한 일이었다. 괜히 이런 사람과 밥을 먹기 위해 집안일을 내팽겨쳐버렸나 싶었다.


나는 자꾸 어떤 과거에 집착하고 있다. 엄마가 건강했고, 집은 나름 밝았고, 나는 집 따위는 신경쓰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에 집중하며 살았던 몇 년전을 그리워하고 집착하고 있다. 남편도 자식도 없는 미혼의 막내딸. 그런 내게 아픈 엄마는 짐처럼 의무처럼, 그리고 사랑처럼 다가온다. 엄마는 자신을 돌봐야 할 의무가 있는 남편보다는 나에게 더 의지하고 있다. 집에 온 날 보자마자


“간식으로 뭐 먹을 거 없어?” 라고 묻는 엄마.

내가 하녀인가 하는 생각에 짜증이 치밀지만 “몰라. 없어” 라고 화내지 않고 담담하게 말한다.

“정말 없어?”

“없어.”

“식탁에 건빵 갖다줘.”

“왜 나만 보면 시켜?”

“다음부턴 안 시킬게.”


엄마가 화를 낼 것도 같은데 엄마는 화를 내질 않는다.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면 화도 나고 서글프고 슬퍼진다. 그 이후로는 밀려오는 자책감.

역시 엄마를 모시는 건 못할 짓인가. 요양병원인 전문가들 손에 맡겨야 하는 걸까. 근데 왜 인간은, 왜 노인은, 변화를 싫어해서 집에 더 머물려고 하는걸까. 모든 가족에게 피해를 주면서도 말이다. 그동안 사회에서 엄마로, 아내로, 어른으로 살아왔던 서글픔과 한탄을 노인이 되어서 마구 응석부리며 풀어내는걸까.


아픈 엄마를 보면서 나는 참 인생을 많이도 배워가고 있다. 평생 내게 오지 않을 것 같은 시간들을 마주하고 있다. 친구들보다 어쩌면 더 먼저 배우고 있다. 왜 나만 이런 거냐고 화를 내고 싶을 때가 있다. 역시 신은 없군 하는 생각도 든다. 근데 뭐 어쩌겠는가. 달리 방법이 없다. 견디는 것 외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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