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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B Aug 13. 2019

소년성(少年性)에 대하여

싱어송라이터 하현상

하현상은 누구인가


하현상은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의 OST “바람이 되어”를 부르며 화제가 된, 올해로 22살을 맞이한 싱어송라이터다. JTBC의 밴드 경연 오디션 프로그램인 <슈퍼밴드>에서 “호피폴라(Hoppipolla)”팀의 보컬을 맡아 우승을 차지했다.


슈퍼밴드에서 우승을 차지한 호피폴라. 왼쪽부터 차례로 김영소, 홍진호, 하현상, 아일.


하현상은 슈퍼밴드 출연 전인 2018년부터 혼자 작사 작곡을 도맡아 EP <My Poor Lonely Heart>를 발매했다. 트랙을 따라 한 곡씩 듣던 나는, 내겐 너무도 익숙한 어떤 소년의 전형을 떠올렸다. 불가항력적으로. 내가 10대 때부터 20대까지 내내 동경하던, 그러나 이제는 마음 한 켠에 치워둔- 그 소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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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가사는 문학적 수사로 가득하다. 한없이 흔들리고 머뭇거리며, 서글픈 화자의 태도는, 근래 유행하는 당돌하고 직설적인 사랑노래 속 그들과는 사뭇 다르다.


밤비가 내려서 아직도 우리는 작은 공원을 빙빙 도네요
아마 기억이 나지 않을는지도 모를 말들을 늘어놓으며
아침이 줬던 작은 위로는
I'm still I'm still
하루도 멀리 가지 못한 난
I'm here I'm here
Where are you now

- 하현상 작사 작곡, <Where are you now> (듣기: https://youtu.be/byEIoqzs510)


 

출처: 인스타그램 @phenomstagram_98


소년성과 그 전형들


왜 나는 하현상으로부터 소년성을 떠올렸을까. 그건 내가 개념화한 소년성이 무엇인지를 찾아가야만 뚜렷해진다. 이는 곧 사춘기의 굴곡을 내재한 성향을 의미한다. 상처 입고 지독히 우울한, 엇나갈 듯 위태로우면서도 세상의 허위와 이중성을 경멸하고, 순수하게 이상을 동경하는. 또, 능숙하기보다는 서툴고 미숙한. 종종 예술로 도피하여 자신의 상처를 노래하고 시를 쓰는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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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전형적인 인물은 J.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 홀든 콜필드이다. 고백하건대 홀든은 나의 유년시절 사랑해 마지 않았던 이상향이자, 실존하는 그 어떤 인물보다도 친밀감을 느꼈던 대상이었다. 홀든을 제대로 소개하려면, 내가 백 마디 말을 하는 것보다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


... 다음에는 라디오 시티에서 해마다 하는 크리스마스 쇼가 시작되었다. 천사의 무리가 사방에서 나왔는데, 손에 십자가를 든 사람이 몇천 명이나 나와 무대를 가득 채웠다. 그들은 일제히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미친 듯이 불러댔다. 굉장했다. 이것이 종교적이며 매우 아름답다는 것은 알지만, 십자가를 들고 무대 전체를 채운 것은 결국 배우들이라는 사실에서 어떤 종교적인 것이나 아름다움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다 끝내고 무대에서 퇴장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담배를 피우기 시작할 것이다.
 1년 전에도 샐리 헤이스와 함께 이걸 본 적이 있는데, 샐리는 무대 의상이나 장식이 참으로 아름답기 짝이 없다고 계속 말했다. 나는 예수가 이런 호화찬란한 의상 따위들을 본다면 아마 구토를 참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샐리는 나더러 신을 모독하는 무신론자라고 했다. 어쩌면 그런지도 모른다.
 나는 예수께서 진정으로 좋아할 사람은 그 오케스트라에서 작은북을 치는 단원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그 사람은 내가 여덟 살 때부터 죽 보아왔는데, 부모와 함께 보러 갔을 때 나와 동생 앨리는 이 사람을 더 잘 보려고 자리를 옮기곤 했다. 그렇게 훌륭하게 북치는 사람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한 곡에서 북 치는 기회란 단 두 번밖에 없는데, 손을 쉬고 있을 때에도 그는 절대로 지루한 표정을 짓지 않았다. 그러다가 북 치는 차례가 되면 심각한 표정을 하고 매우 멋지고 아름답게 북을 울려댔다. 언젠가 아버지와 함께 워싱턴에 갔을 때, 앨리는 그 사람에게 그림엽서를 띄운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의 손에 들어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주소가 확실치 않았으니까.

- J.D. 샐린저, 이덕영 옮김, <호밀밭의 파수꾼> 중


<호밀밭의 파수꾼>(좌)과 <내 생애의 아이들>의 책표지. 내게 홀든은 13살에 접한 이 책표지의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다.


홀든 외에도 소년성을 담지한 인물들로 가브리엘 루아의 <내 생애의 아이들>의 메데릭, 영화 <할람 포>의 할람, 영화 <월플라워>의 찰리가 있다. 모두 다 가상의 인물이다.


소년과 베아트리체


소년들에게 중요한 타자로 첫사랑의 상대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여성은 성적 욕망의 대상이기 이전에 동경의 존재다. 어쩐지 모성을 닮기도 한 그들은 지극히 성스럽다. 여성들은 소년들에게 있어 성모(聖母)이자 구원자, 단테의 베아트리체와 같은 경배의 대상이며, 소년들은 여성에게 이성과의 사랑을 넘는 어떤 순수한 사랑을 바친다. 홀든에게는 여동생 피비, 메데릭에게는 18살의 여선생, 할람에게는 어머니를 닮은 케이트, 찰리에게는 샘이 그런 인물이다.

 .

그러나 소년들은 무엇보다도 사무치게 외롭다. 그들이 사랑하는 베아트리체도, 위로할지언정 외로움을 제거해줄 수는 없다. 외로움은 소년들의 태생이자 영원한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여성이라는 구원자를 통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알을 깨고 나와야만 성장할 수 있음을 배운다.

 

영화 <할람 포>의 케이트를 분한 소피아 마일즈(좌)와 주인공 할람 포를 분한 제이미 벨(우)
영화 <월플라워>의 찰리 역의 로건 러먼(좌)과 샘 역의 엠마 왓슨(우)


어린 날의 나는 엄연히 소녀(!) 임에도, 묘하게도 그런 소년들에 나 자신을 일치시켜 바라보고는 했다. 외롭고 슬픈, 그 알 길 없이 위태로운 정서가 좋았다. 그리고 순수를 향한 갈망이 좋았다. 또, 완성태가 아닌, 성장의 길목에 있는 그들의 모습이 미숙한 나를 위안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하현상, 소년성의 현현


하현상의 눈빛과 그가 그려내는 가사와 가락, 가녀린 음색은 내게 그 소년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의 말과 태도에서도 마찬가지다. 우승을 차지해 놓고도, 우승에 정말로 관심 없었다는 듯이 무표정으로 "저는 정말 우승할 줄 몰랐어요"라고 내뱉는 초연함, 또 연이은 패배 이후 가족처럼 따스한 팀을 만나서 여러 번 눈물을 글썽이던 그의 순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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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현상은 그가 고르고 고른 말들 속에서 자기의 세계에서 자아낸 깊이감을 내비친다. 그가 지향하는 지점은 우승으로 집약되는 성공이 아니라, 순수를 향한 갈망일 따름이다. 그는 그저 마카롱을 먹고, Koh Samed에 가고 싶다.


“솔직히 뚜렷한 목표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뭔가 이뤄야겠다는 마음으로 하진 않은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음악이 밴드를 기반으로 하는 음악이다 보니 그런 음악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리고 저를 알리고 싶기도 했고요. 그냥 운이 좋았죠.”

“사람은 단편적이지 않잖아요. 이런 모습 저런 모습이 모여 하나의 사람이 완성되는 건데 방송에는 한 가지 모습만 보이니까. 그냥 저는 다양한 면이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 데이즈드 코리아 8월호 인터뷰 중


어느덧 30대가 된 지금의 나는 더 이상 소년들을 동경하지는 않는다. 소년이 성장하며 겪어내야만 할 아픔들을 알아채버린 탓일까. 혹은, 소년의 순수라 여긴 것이 실은 소년만의 허세라는 것을 깨달은 탓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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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되었던 지금의 나는 이젠 미숙함에서 비롯된 순수보다는, 조금  여유 있고 넉넉한 성숙으로 나아가길 소망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소년은 아련한 과거의 사랑이자, 미래에 동행하게  나의 아가페적 사랑의 대상이며,  끊임없는 예술성과 감수성의 원천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나는, 소년 하현상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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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둘러앉네 이 늦은 밤을 맞이하려고
먼저 말을 거네 이 어색함을 지워보려고
무슨 말이라도 괜찮다고 상관없다고
이제 음악소리가 작아지려나
우리들 목소리가 지워지려나
잠시 마주 보네 숨소리를 감춰보려고
멈춰 소릴 듣네 잠시나마 이해하려고
이제 음악소리가 작아지려나
우리들 목소리가 지워지려나

- 하현상 작사 작곡, <Koh Samed> (듣기: https://youtu.be/hGdwvppHKq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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