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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B Sep 07. 2019

인내로 소망을 이뤄가기

기도모임 세 번째

벌써 세 번째 기도모임이다. 모이는 자들의 열심이 있고 은혜가 있어 그런지 매주 모임이 기다려진다. 개강 첫 주라 강의실 대관이 불가해 도서관 세미나실을 빌렸다. 그래서 오늘만은 찬송을 포기했다.

오늘은 믿음에 이어 소망을 주제로 본문을 나누었다.


우리는 여러분이 이와 같은 열심으로 희망(=소망)에 대한 확신을 끝까지 간직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게으르지 말고 믿음과 인내로 약속된 것을 받는 사람들을 본받으십시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 자기보다 더 큰 분이 없어서 자기 이름으로 맹세하며 '내가 너에게 한없는 복을 주어 네 후손이 크게 번성하게 하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끈기 있게 참아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보다 큰 분의 이름으로 맹세하며 그 맹세는 말한 것을 확정하여 모든 논쟁을 그치게 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약속된 것을 받을 사람들에게 자신의 계획이 변경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시려고 맹세로 그것을 보증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실 수 없기 때문에 그분이 하신 약속과 맹세는 절대로 변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앞에 있는 희망을 붙들려고 피난처를 향해 가는 우리는 큰 용기를 얻습니다. 우리가 가진 이 희망은 영혼의 닻과 같아서 튼튼하고 안전하여 휘장 안에 있는 지성소에 들어갑니다. (히브리서 6:11-19, 현대인의 성경)


말씀묵상 시간을 잠시 가진 후, 돌아가며 묵상한 바를 나눈다. 몇몇은 인간관계의 어려움, 자신의 부족한 실력과 체력 때문에 크게 좌절해 있다. 지난번과 다르게 다들 표정이 어둡다. 얘기를 털어놓다 눈물짓고 마는 이들이 안쓰러워, 몇 마디 말을 건네보는데 억지웃음을 짓는다. 날씨마저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비 떨어지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린다. 마음이 짠하고 아프다. 그래서 오늘의 본문을 주셨나 보다.


약속한 이의 신실함


아브라함은 최초의 인간 아담 보다도 더 많이 회자되고 칭송받는, 믿음의 효시이다. 심지어 세계 3대 종교인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에서 다 중요한 영적 조상으로 기린다.

아브라함은 소망을 붙잡았다. 그가 소망을 끝까지 붙들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약속은 약속을 한 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효력이 다르다. 약속해준 이가 정말로 평소에 어떻게든 약속을 이행하려는 자라면 누구라도 그가 한 약속이 지켜지리라 믿을 것이다. 아브라함이 받은 약속은 거짓말할 수 없는, 변치 않으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었다.

그런 하나님께 언약을 받고나서도, 아브라함은 지질하기 이를 데 없는 행태를 보인다. 애굽 땅에 내려가 아내를 누이라 속여서 아내를 빼앗길 위험을 자처했고, 언약을 받고도 믿음이 약해져 여종 하갈을 통해 대를 이으려 시도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종국에는 하나님이 이삭을 바치라 했을 때 순종하기에 이른다.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히 11:19)" 믿었기 때문이다. 그는 비록 흔들리고 넘어질 때도 있었지만, 믿음이 점차 자라 갔던 것이다. 삶을 통해 그는 하나님이 얼마나 신실하신지 배웠고, 그 하나님의 약속이 이뤄질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인내는 연단을, 연단을 소망을


또한 본문을 통해, 약속의 소망을 바라보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결국 "인내"임을 배운다. 그러나 뭐든지 빠르고 편리하게 돌아가고, 본능에 따라 살도록 종용하며, 고통을 줄이고 좀 더 요령 있게 편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속삭이는 시대 속에서 인내를 얘기하기란 쉽지 않다. 꼰대의 언어로 들리기 때문이다.

심지어 주님은 약속이 언제 이루어지는지는 도통 말씀하질 않으신다. 예수님 다시 오신다는 약속이 그렇게도 중요하지만, 그 날과 시도 우리는 모르지 않던가. 언제일지도 모른 채 이 고통과 아픔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마냥 기다리라니, 주님 너무하시다 싶고 숨 막힌다 느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보이지 않아 소망이 소망될 수 있고,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니 참음으로 기다려야 한다(롬 8:24-25)고 성경은 말한다. 또한 손 놓고 앉은 자리에서 멍하니 기다리라는 게 아니다. "세월을 아껴(엡 5:16)" 열심을 다하며, 약속하신 이를 신뢰함으로 인내하며 기다려야 한다. 등잔에 기름을 가득 채우고 신랑을 기다렸던 처녀들처럼(마 25:1-13). 그렇기에 소망을 갖고 인내하는 자는 멈춰있는 것 같으나 멈춰있지 않다. 그는 연단받고 자라 가고 있다(롬 5:4).


주님의 때에 이루신다


소망은 더디 이뤄지는 것만 같다(마 25:5; 마 24:48; 잠 13:12). 그러나 주님의 때가 되면, 이제까지의 기다림을 보상이라도 하듯 빠르게 그의 일을 성취하실 것이다. 해가 쨍쨍한데도 주의 명에 따라 밤낮 방주를 만들던 노아는, 대홍수의 때에 건짐을 받았다. 형들의 질투 때문에 노예로 팔려가고, 억울한 누명을 입어 감옥에 갇혀 유소년기와 청년의 때를 허비한 것만 같았던 요셉은, 주님의 때에 급박하게 왕 앞에 부름 받아 나아가 왕의 꿈을 탁월하게 해몽했고, 그 즉시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 모세는 살인자라 손가락질 받아 40년 동안 광야 도피생활을 하다가, 주님이 부르셔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다.

현대사만 봐도 자명하다. 일제시대가 계속될 줄 알았기에 그렇게 많은 변절자들이 나왔던 것이고, 나치시대가 영원할 줄 알았기에 동조자들이 속속들이 생겨났던 것이 아닌가. 그러나 어둔 밤 지나고 동은 트기 마련이며, 범죄자는 재판대 앞을 피할 수 없다. 주님의 약속은 그분이 신실하시기에 반드시 이뤄진다. 그래서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는다(롬 5:5).


비록 약속이 이뤄지는 때를 알려주시진 않았어도, 우리가 할 일은 밝히 보여주셨다. 수고하고 진력하며, 참 소망되신 주님을 바라보는 것. 그렇기에 기다림이 길수록 소망이 깊어갈 수 있다.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진력하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    (딤전 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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