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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의 이방인 Mar 20. 2022

독일에서의 취업

다시 새로운 시작

한국에 있을 때 내 인생이 너무 깝깝해서 한동안 점쟁이며 사주쟁이를 찾아다닌 적이 있었다. 하루는 세 군데를 돈 적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때는 참 내 안에 답이 없었나 보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친구의 추천으로 사주를 잘 분석해 준다는 분을 찾아갔는데, 같이 갔던 친구에게는 요리조리 나름 상세하게 분석해서 얘기를 해 주더니, 나한테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란다. 자세히 물어봐도 그냥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란다. 공부 더 해도 되고, 외국 나가도 되고, 다른 일 해도 되고. 그래서 나는 내가 단명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곧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걸 다 해보라는 줄 알았다.
그분의 말에 밑도 끝도 없는 과 용기를 얻어서인지 지금 나는 이곳에 와 있는 것 같다 생각이 든다.


살다 보뭘 해도 안 되는 시기가 있다. 졸업을 하고 코로나가 터지고 취업이 어렵기도 했지만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되는 일이 없었다. 어디에 있어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는, 매일매일 파르르 떨리며 갈팡질팡하던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 남편은 한없이 다정다감했고 내 마음을 살펴주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이곳에서 내 존재가 점점 사라져 가는 기분이 들었다. 프리랜서로 일을 하긴 했지만 수입이 일정하지 않아서 돈을 모으기도 힘들었고 일이 없을 때면 마음이 너무 불안했다. 다 접고 한국으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과 이미 먹을 대로 먹은 부담스러운 나이를 가지고 한국으로 돌아간들 답이 있을까 하는 생각의 대립이 계속되던 중에 갑자기 한국에 있는 회사에서 연락이 와서 면접을 보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았다. 그래서 몇 차례에 걸쳐 면접을 본 후 최종 합격 소식을 받았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막상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는 게 확실해지자 또다시 마음이 답답해졌다. 한국을 떠날 때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왔기에 집은 당연히 없고 한국어를 못하는 외국인 남편이 한국에서 일을 찾기는 어려울 테니 외벌이로 비싼 물가를 버텨내야 할 텐데.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국에서 행복하지 않아서 나름 굳은 결심을 하고 한국을 떠났는데 다시 돌아가는 게 맞는 것일까. 사실 맞고 틀리고의 문제는 아니고 내 선택의 문제지만 머릿속이 다시 복잡해졌다. 그렇게 머릿속이 복잡한 채로 여러 날을 보내면서 이런저런 고을 하다가 여러 가지 이유로 결국은 한국에 돌아가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그렇게 결정을 내리니 신기하게도 복잡했던 마음이 좀 정리가 되는 듯했다.


그런 와중에 비슷한 시기에 지원했던 뮌헨에 있는 지금의 회사에서 연락을 받았다. 면접을 보고 싶다고.

잘은 몰랐지만 뭔가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왠지 잘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두컴컴했던 터널을 걷다가 빛이 보이는 터널 끝에 다다른 느낌이었다. 이곳에서도 몇 차례에 걸쳐 면접과 테스트가 진행되었지만  순조롭게 흘러갔고 이곳에서도 최종 합격 소식을 들었다. 그러고 나서 또 다른 회사에서도 제의를 받았지만 이곳에 가기로 결정을 내렸기에 정중하게 거절을 했다. 신기했다. 이제는 너무 늦었다고 생각해 포기하고 싶었던 찰나에 마치 막혔던 변기가 뚫린 것처럼 갑자기 이런 일들이 연달아 생기니 참 인생은 살아보기 전에는 모르는 것 같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인생은 생각보다 타이밍과 운빨의 힘이 강한 것 같다 생각도 든다.


살기 싫다고 생각했던 독일이었지만 싫다고 계속 불만만 늘어놓기보다는 한 번 제대로 도전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뮌헨으로 옮긴 나는 요즘 정신없지만 행복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뮌헨은 독일 남부 바이에른 주에 있는 대표적인 도시로 독일에서 부자 도시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그렇기에 월세도 살인적으로 비싸다. 그런데 그만큼 뮌헨의 월급은 독일의 다른 주보다 높다고 한다. 난 일단 도시를 옮겨야 했기에 6개월 단기로 에이전시를 통해서 집을 구했는데 구하기 쉬웠던 만큼 월세가 후덜덜하게 비싸다. 역시 부지런히 발품을 파는 만큼 싸고 좋은 집을 구할 수 있는 듯하다.

비싸지만 너무 멋진 전망을 가지고 있어서 선택한 집

뮌헨은 꽤나 인터내셔널한 도시라서 길을 가다 보면 스페인어, 프랑스어, 영어 등 다양한 언어가 많이 들린다. 물론 종종 한국어도. 전에 살던 곳보다 도시가 크고 영어가 많이 통해서 지내기에 어렵지 않은 것 같고(그래도 독일어를 하면 훨씬 좋고 편하다) 가볼 곳이 많아서 뮌헨이라는 도시가 나는 마음에 든다. 그리고 가장 좋은 점은 시내에 공원이 많다는 점. 이곳에는 엄청나게 크고 길쭉한 영국 정원이 있는데, 집근처라서 주말이면 이곳에 가서 자전거를 타거나 앉아서 햇빛을 쬔다. 날이 점점 따뜻해져서 이곳은 주말이면 사람들로 가득하다.

올림픽 공원도 내가 좋아하는 곳이다. 한국에 있을 때 올림픽 공원 근처에 살아서 정말 자주 갔었는데, 이곳에서도 앞으로 자주 갈듯하다. 올림픽 공원은 다들 비슷하게 만드는지 이곳을 걸을 때면 한국의 올림픽 공원이 자꾸 겹쳐진다.

뮌헨 서쪽에 있는 님펜부르크 궁전도 산책하기 참 좋은 곳이다. 이 회사에서 면접을 본 후 비행기를 타기까지 시간이 좀 남아서 님펜부르크 궁전에 가서 걸었는데 겨울이었는데도 너무 예뻐서 뮌헨에 살게 되면 정말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다행히 일을 시작하고 뮌헨으로 옮기돼서 요즘은 정말 만족스럽고 행복하다. 앞으로 따뜻한 봄날이 계속되길.

탁 트인 넓은 영국 정원
해질녘이라 더 아름다웠던 님펜부르크 궁전
언덕을 올라가는 맛이 있는 올림픽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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