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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의 이방인 Mar 04. 2023

독일을 떠나 다시 핀란드로

결국 마음의 고향 핀란드로 다시 돌아오다

얼마 전 독일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핀란드로 완전히 이사를 마쳤다. 이게 뜬금없이 또 무슨 소리냐고? 가끔 연락하는 친구들도 매번 "그래서 넌 지금 독일에 있는 거야, 아님 핀란드에 있는 거야?"라고 물어본다. 몸은 독일에 있었지만 마음은 늘 핀란드에 있었던 나는 핀란드에 도착하자마자 드디어 몸과 마음이 한 곳에 있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과 평온함이 느껴졌다.


사실 작년에 뮌헨으로 이사하기 전부터 남편과 핀란드행을 준비했었다. 독일에 있으면서 약을 먹어야 하는 우울증까지는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우울감과 무기력감이 너무 심해 면역력도 약해져 피부에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나와 잘 안 맞는 사람이 있듯이 나와 잘 안 맞는 나라도 있구나 하는 것을 몸소 느꼈다. 누구에게는 그렇게 오고 싶은 독일일 텐데 나에게는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은 나라였다. 다행히 남편도 독일을 크게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고 이런 나의 마음과 상태를 이해해 주어서 같이 다른 길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래서 만들어본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았다.




1. 내가 핀란드에서 구직에 성공한다 - 거의 가능성이 없는 얘기다. 지금 핀란드 거주 허가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독일에 사는 핀란드어도 잘 못하는 비 EU인에게 굳이 일자리를 줄 리가 없다. 정말 모셔갈 정도로 특별한 능력이 없는 한. 그리고 핀란드 영주권 혹은 시민권을 가지고도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외국인들이 이미 너무나 많다. 이걸 계속 진행하면 독일을 계속 벗어나지 못한다.


2. 남편이 핀란드에서 구직에 성공한다 - 역시 마찬가지로 쉽지 않다. EU 시민권자라도 확실한 이유(취업 혹은 공부)가 없는 한 핀란드에 90일 이상 체류할 수 없다. 무작정 가서 구직을 하기에는 시간도 없고 리스크도 너무 크다.

 

3. 내가 다시 핀란드 대학에 지원한다 - 핀란드도 이제 EU 사람들에게는 학비를 받기 시작했다. 물론 장학금 제도가 있지만 만약 장학금을 받지 못할 경우 일 년에 몇천 유로 혹은 만 유로가 넘는 학비를 내야 한다. 재정적으로도 문제이고 거주허가증도 주기적으로 갱신을 해야 해서 불안정하다.


4. 남편이 핀란드 대학에 지원한다 -  가장 안정적인 시나리오다. 남편은 EU 사람이니 거주허가증은 따로 필요가 없고 무료로 공부를 할 수 있다. 나 또한 EU 배우자 비자로 좀 더 안정적으로 체류하면서 살 길을 찾아볼 수 있다. 남편도 지금 일하고 있는 분야가 아닌 다른 쪽으로 공부를 해보고 싶은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한 번 시도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하여 작년 이맘때쯤 남편은 일을 하면서 핀란드 대학에 지원을 하고 입학시험을 보고, 인터뷰를 보는 사이에 나는 뮌헨에 있는 회사에 인터뷰를 보고 합격을 했. 남편도 대학에 합격할지 아직 모르는 일이고, 나도 뮌헨이라는 도시와 일이 마음에 들지 모르는 일이며, 또 1년 계약이었기 때문에 일단 각자의 계획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그렇게 나 혼자 으로 이사를 해 일을 시작했고 우리는 독일 내에서 또다시 롱를 시작했다. 그리고 몇 달 지나지 않아 남편의 대학 합격 소식을 들었고 남편이 핀란드로 떠난 후 우리는 또 다른 롱디를 시작해야만 했다.




사실 나는 뮌헨이라는 도시가 꽤나 마음에 들었다. 좀 더 큰 도시로 옮겨서 숨통이 트이는 것도 있었지만 독일 북부에 비해 남부의 좀 더 밝은 분위기가 나의 기운을 좀 끌어올렸다. 남편도 뮌헨에 몇 번 와 보더니 마음에 들어 했고 일단은 일자리가 많고 도시가 더 안전하고 안정적이라고 생각해 우리의 거주지를 뮌헨으로 옮기려는 으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남편이 지원했던 핀란드 대학 중 한 곳에서 합격 소식을 받았다. 합격 소식을 받은 후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또다시 고민에 빠졌다. 우리가 브레멘에 있었으면 뒤도 안 돌아보고 둘 다 핀란드로 바로 떠났을 텐데 뮌헨에 사는 지금이 또 나쁘지 않았다. 뮌헨에 살게 되면 남편만 다시 직장을 새로 찾으면 되 다만 당장 분야를 바꾸기는 어려울 뿐 독일어를 할 수 있는 남편에게 구직은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어찌 됐건 남편은 일단 브레멘 생활을 접고 뮌헨으로 옮기기로 했다.

내가 뮌헨에서 제일 좋아했던 English garden. 그리고 집에서 저 멀리  알프스를 볼 수 있었던 환상적인 뷰.

부랴부랴 남편이 뮌헨으로 옮기고 난 후에도 우리에게 결정할 시간은 충분하지 않았고, 얼마 남지 않은 데드라인까지 입학 여부를 결정해야 했다. 롱디를 청산했다는 기쁨보다 또 다른 결정을 해야 하는 고민에 하루하루를 보냈다. 핀란드와 독일의 장단점과 단기적, 장기적으로 봤을 때의 실행 가능성과 전망에 대해 계속 찾아보고 생각하고 얘기했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안주보다는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다. 개고생을 하더라도 가보지 않고 후회하느니 가보고 후회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 우리는 계획했던 대로 핀란드 대학에서 공부를 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뮌헨이라는 도시는 정말 마음에 들었지만 무언가 고구마같이 답답하고 효율성과 융통성을 찾아보기 힘든 독일에서의 생활을 끝내고 싶기도 했다. 그리고 핀란드에 대한 미련과 집착을 어떻게든 끝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다시 돌아가서 현타를 세게 맞거나 혹은 다시 만족스러워하거나.

다만 남편 혼자 먼저 가서 공부는 어떤지, 핀란드라는 나라가 남편에게는 잘 맞는지 어떤지 살펴보기로 하고 나는 일단 뮌헨에서 계속 일을 하기로 했다. 그래서 남편은 뮌헨에 오자마자 다시 핀란드행을 준비해야 했고, 그렇게 우리는 또다시 기러기 부부가 되었다.




'나 혼자 산다'에 배우 온주완이 나와서 이런 얘기를 했었다. 30살이 되었을 때는 '내 인생이 어떻게 달라질까. 세상아 덤벼라'라는 호기 같은 게 있었는데 40살이 되니 '세상이 덤비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든다고.

같이 나이를 들어가는 같은 시대의 사람으로서 참 공감이 가는 말이었다. 이제 앞자리가 4로 바뀌니 제발 세상아 나에게 더 이상 덤비지 말아 달라는 마음이 들었다. 살아오면서 그렇게 큰 굴곡은 없이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언제부터 인생이 쉽지 않다고 느끼게 된 걸까. 작은 굴곡들이 계속 쌓여서 그렇게 된 걸까.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땐 일을 찾게 된 것 자체가 너무 감사했고, 월급이 대단히 많진 않더라도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에 감사했고, 어떤 일이라도 괜찮을 것 같았고 더 이상의 변화는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이런 마음속에서도 저 너머 어디엔가 다른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내 특유의 쓸데없는 긍정심과 대책 없는 모험심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세상이 나에게 덤비는 것이 아닌, 내가 아직도 무모하게 계속 세상에게 덤비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다행히 남편 새로 시작한 공부가 잘 맞았는지 계속 공부를 해보고 싶다고도 했고, 롱디를 계속하는 건 정신적, 재정적으로도 너무 소모적일 것 같아 나도 결국은 핀란드로 옮기기로 했다.

1년 계약이 끝나갈 무렵 너무나 감사하게도 팀장님이 새로운 계약서를 주시면서 계속 일하자고 했지만 내가 장기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일하고 싶은 분야와 직무가 아니라고 판단해 고심 끝에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내 인생 최고의 상사를 이곳에서 만났고, 팀원들도 다들 너무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회사 생활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인간관계에 대한 스트레스 없이 일할 수 있었으며 소중한 인연들을 얻을 수 있었다.  

나의 최애 장소였던 회사 1층 라운지. 그리고 마지막날 퇴근 전 찍은 텅 빈 내 자리.

어찌 보면 가장 확실하지 않고 가장 안전하지 않은 길을 선택한 나와 남편. 그렇게 우리는 핀란드로 왔다.

핀란드에 돌아오자마자 우리를 맞이한 오로라. 그리고 아름다운 핀란드 겨울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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