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로 돌아오고 얼마 되지 않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과 함께 학기가 시작되었다. 이번에 내가 공부하는 학교는 오울루가 아닌 핀란드 중부에 위치한 위바스퀼라(Jyväskylä)라는 도시인데, 한국에 있을 때 기숙사 신청을 해 두었지만 아직도 학교 기숙사를 찾지 못해 온라인으로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할 수밖에 없었다. 전에 핀란드에서 공부를 했었기 때문에 모든 절차가 쉬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사이에 많은 것들이 디지털화되었고 다양한 사이트와 앱으로 세분화되어 있어서 찾아다니는 데 약간 정신이 없었다. 문서가 생명인 아날로그 독일에 있다가(혹시나 몰라서 아직도 독일에서 가지고 온 관공서 관련 서류들을 가지고 있다. 으으) 대부분이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핀란드에 다시 적응을 해야 했다. 예를 들면, 이제는 물리적인 학생 카드가 굳이 필요 없이 앱을 다운받아서 본인 인증을 하고 사진을 첨부하면 학생 카드를 바로 만들 수 있었다. 그런데 이 학생 카드를 다운받을 수 있는 앱이 너무 여러 가지라서 처음에는 도대체 어떤 앱을 다운받아야 할지 몰랐다. 핀란드의 다양한 student union에서 만든 앱들이어서 자기 학교에 적용되는 앱을 선택해 다운받으면 되는 듯했다. 나는 Jamko라는 student union에서 제공하는 앱을 다운받아 학생 카드를 만들었다. 연회비를 내야 학생 카드룰 만들 수 있는 앱도 있는데 연회비를 내면 이벤트를 포함해 여러 가지 학생 할인 혜택이 더 많다. 연회비 없이 본인 인증 후 바로 학생 카드를 만들 수 있는 앱도 잘 찾아보면 있는데, 이는 대학마다 다르다.
다양한 앱과 학생 카드 때문에 학생 식당 앞에 놓여진 학생 카드 설명서
온라인 오리엔테이션이었기에 모닝커피를 마시며 여유롭게 집에서 Zoom으로 참관을 하고 있었다. 앞으로 어떤 일정으로 진행될 것이며, 총 35명의 학생이 새로 입학했고, 어느 나라에서 학생들이 왔는지를 자료를 보며 쭉 설명하고 있었다. 나는 자료를 보며 '음... 역시 중국인은 어디든 많군. 어? 한국인은 나 밖에 없네?'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쭉 학생들의 국적을 말하던 학과장이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
"자, 한국에서 온 학생이 있네요. 저희 학교에 입학한 한국 학생은 처음입니다.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굳이 예를 들자면 미국에서 온 학생도 있었지만 학과장이 언급하면서 환영한 나라는 '한국' 뿐이었다. 갑자기 어깨가 살짝 올라가는 기분이었다. 전에 핀란드에서 공부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한국인이라고 하면 '음, 그렇구나' 정도의 반응이었고 생각보다 한국에 대해별 관심도 없고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물론 지금도 한국을 잘 모르고 관심이 없는 외국인들이 여전히 많지만 확실히 전보다 한국에 대해 아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 같고, 한국 음식이나 문화가 많이 퍼졌다는 것을 느낀다. 수업에서 만난 한 네팔 친구도 내가 한국인이라고 하니 반가워하며 한국 드라마가 너무 재미있어서 자주 즐겨 본다고 했다. 독일에 있을 때도 회사 동료들과 오징어 게임, 블랙핑크 베를린 콘서트 등에 대한 얘기를 나눴고 가끔 불닭볶음면이나 잡채를 해 주면 너무 맛있다고 하면서 먹었다.
이제는 아시아 마트가 아닌 그냥 일반 슈퍼마켓에 가도 불닭볶음면, 짜파게티와신라면을 살 수 있다. 물론 한국에서의 가격을 생각하면 손이 떨려서 잘 못 사긴 한다. 슈퍼마켓에서 파는 신라면 한 봉지는 2.5유로로 거의 3500~4000원 정도로 한국에서는 한 묶음에 해당하는 가격이다.
얼마 전에는 시내 한복판에서 핀란드 아이들이 K-pop을 틀어놓고 군무를 추고 있었다. 처음에는 '설마 아니겠지' 하고 지나가는데 뭔가 익숙한 듯해서 노래를 계속 들어보니 한국어 가사가 들렸다. 그 모습이 너무 신선해서 한참을 쳐다보고 있었다. 핀란드 북쪽의 작은 도시에서 핀란드 십대들이 K-pop에 맞춰 군무를 추고 있다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이제는 슈퍼마켓에서 쉽게 살 수 있는 한국 음식. 근데 비싸다는 점.
그렇게 나는 다시 학생이 되었다. 남편의 표현을 빌리자면 '학생이라는 달콤한 버블' 속으로 다시 들어온 것이다. 확실히 마음가짐이 조금 달라졌다. 이전에는 허허벌판에 홀로 서 있는 막막한 이민자의 신세였다면 지금은 핀란드 대학의 학생이라는 신분으로 마치 핀란드 커뮤니티에 다시 입성한 기분이었다.소속감을 느끼고 싶어서 계속 공부를 하려고 했던 친구의 마음이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그래도 학생이 되어 가장 좋은 것 중에 하나는 다시 저렴한 학생 가격으로 학생 식당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가끔 남편의 학교에 같이 가서 식사를 하곤 했었는데 학생이 아니었다 보니 2.9유로에 해당하는 금액은 10유로로 확 뛰었다. 한 번은 배가 별로 고프지 않아서 남편의 식사를 같이 먹기로 하고 같이 식당에 들어가서 음식을 담는데 계산하는 사람이 너네 둘이 같이 먹는 거냐고, 한 명만 먹어야 한다고 해서 당황함에 얼굴이 붉어진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나도 학생이니 학생 식당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다.
사실 먹을거리가 많지 않은 핀란드이다 보니 매일 뭐 먹지가 고민거리이긴 했다. 슈퍼마켓을 가도 딱히 사고 싶은 게 없었다. 고기는 양념이 된 고기가 많은데 양념이 된 고기라는 건 오래 판매할 수 있는 별로 신선하지 않은 고기이기 때문에 그다지 먹고 싶지가 않았다. 독일 슈퍼마켓에서 보던고기보다 색깔도 창백해서 뭔가 손이 잘 가지 않았다. 그리고 핀란드라서 연어가 저렴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연어도그다지 저렴하지 않아 자주 먹진 못한다. 아시아 마트를 가면 너무 좋으나 돈이 훅 나가니 자주 가지를 못했다. 그래서 몇 가지 메뉴로 돌려먹곤 했었는데, 다시 학생 식당을 이용하니 생활비도 절감되고 무엇보다 채소를 마음껏 먹을 수 있어서 좋다. 게다가 우연히 다른 캠퍼스의 학생 식당을 발견했는데 학생 할인을 받으면 95센트(약 1400원)라는 놀라운 가격에 한 끼를 든든히 먹을 수 있어서 남편과 자주 가서 먹는다. 핀란드는 역시 학생으로 있기에는 천국 같은 곳이다. 그렇기에 학생 신분을 계속 연장하는 사람들이 핀란드에는 많다.
다시 학생 식당에서 식사를.
핀란드는 이미 영하 10도로 내려가 한겨울이 되었고 오후 3시쯤 되면 밖은 이미 어둑어둑하다. 정신없이 적응하면서 공부를 하다 보니 이제 벌써 한 학기가 끝나가고 있다. 얼마 전 드디어 기숙사를 찾아서 이제 곧 위바스퀼라라는 도시로 또 이사를 할 예정이다. 남편은 대부분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고 학교 프로젝트도 온라인으로 진행이 가능하기 때문에 같이 이사할 수 있게 되었다. 핀란드 북쪽인 오울루는 춥고 눈이 많이 와 진정한 핀란드의 겨울을 경험하기에는 좋지만, 주변에 로바니에미 외에는 딱히 갈 곳이 많지 않기 때문에 돌아다니기 좋아하는 나에게는 약간의 답답함이 있었다. 하지만 위바스퀼라로 옮기면 내가 전에 공부했었던 탐페레와도 가깝고 헬싱키와도 더 가까워지니 살짝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