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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의 이방인 Dec 23. 2023

다시 찾은 핀란드 산타 클로스 마을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오울루를 떠나기 전 기차로 2시간 반 정도 거리인 로바니에미에 있는 산타 클로스 마을을 한 번 더 가보기로 했다. 어쩌다 보니 핀란드 산타 클로스 마을을 벌써 세 번이나 방문하게 되었다. 처음 방문했던 건 6년 전 라플란드 패키지여행 일정에 짧게 포함되어 있었던 산타 클로스 마을 방문이었다. 저렴한 패키지라 빡센 일정이었는데 밤새 버스를 타고 로바니에미에 도착해서 산타 클로스 마을에서 잠깐 시간을 보내고, 또 버스를 타고 부랴부랴 더 북쪽으로 올라가야 했다. 오래전 일이기도 하고 너무 잠깐 머물러서 기억이 가물가물했기에 그때 찍었던 사진들로 기억을 더듬어야 했다. 두 번째로 방문했던 건 작년 가을 남편 생일 때였다. 산타 클로스 마을 바로 옆에 있는 산타 클로스 홀리데이 빌리지를 1박 예약했는데 애매한 가을에 갔기에 가격은 매우 저렴했지만 역시 애매한 가을이라 있는 내내 꾸물꾸물한 날씨에 우중충한 느낌이었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 이사를 하게 되면 아무래도 북쪽으로 다시 올라오기가 힘들 것 같아서 이사하기 전 마지막으로 다시 산타 클로스 마을을 가 보기로 했다.

눈이 없고 흐린 작년 가을의 산타 클로스 마을


다행히 우리가 갈 즈음에 눈이 많이 내렸고 그날 아침에는 영하 10도 이하의 쨍하게 추운 날씨가 우리를 맞이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그런지 로바니에미로 가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낮 12시 반 기차를 탔는데 도착할 즈음인 오후 3시에는 이미 해가 지기 시작해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참고로 요즘 핀란드의 일출 시간은 9시 45분, 일몰 시간은 오후 2시 45분 즈음이다. 하루에 5시간만 해가 뜨는데 그나마 날씨가 흐리면 해를 볼 수조차 없고 잠시 밝아졌다가 다시 어두워진다고 보면 된다. 비타민 D는 필수이고 해를 보지 못하니 몸도 마음도 무기력해지기 쉬워 건강을 잘 챙겨야 한다.

기차에서 내리니 오울루와는 또 다른 차원의 추위가 얼굴을 얼얼하게 때렸다. 기차역에 있는 전광판을 보니 영하 20도, 체감 온도는 아마 영하 25도 정도쯤이라고 보면 된다. 바람이 불진 않았지만 뼛속까지 파고드는 추위에 밖에 오래 있을 수가 없어서 기차역에 들어가서 버스를 기다렸다. 확실히 겨울이라 그런지 현지인보다는 관광객이 많이 보였고, 스키를 들고 내리는 사람들도 보였다.


영하 20도의 강추위가 맞이한 로바니에미


로바니에미 기차역에서 8번 버스를 타면 40~50분 정도 걸려서 산타 클로스 마을에 도착한다. 종착역이기도 하고 유일하게 사람들이 많이 내리고 타는 곳이기 때문에 잘못 내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다. 가는 길에 개장한 스키장이 보였는데 스키를 타러 왔어도 괜찮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착한 산타 클로스 마을은 다행히 온통 눈 덮인 하얀 세상이었고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몸이 얼어붙는 추위 때문에 밖에 오래 머물 수가 없었고, 이곳에 있는 내내 밖에서 머물 수 있었던 시간은 최대 5분, 그 이상이 되면 어딘가에 들어가서 잠시 몸을 녹여야 했다.

산타 클로스 마을이 특별한 점은 여름에 해가 지지 않는 백야와 겨울에 해가 뜨지 않는 극야 현상이 일어나는 북극권이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산타 클로스 마을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진을 찍는 장소도 아마 이곳일 것이다. 그리고 유튜브로 산타 클로스 마을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도 있는데, 영상을 보면 카메라 앞에서 통화를 하면서 손을 흔드는 사람들을 여럿 볼 수 있다. 이날 나도 남편도 가족들에게 연락해서 손을 흔들면서 안부 인사를 했다.


https://youtu.be/Cp4RRAEgpeU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산타 클로스 마을
실시간 영상에 나오고 있는 우리 (맨 앞에 콘헤드 두 명)


산타 클로스 마을에서 특별하게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산타를 만나서 함께 사진을 찍는 것과 우체국에서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는  정도일 것이다. 이곳의 반전이라면 산타 클로스 마을에는 산타가 한 명 있는 게 아니라는 ! 하긴 크리스마스 시즌에 방문하는 수많은 관광객을 맞이하기에 산타 한 명으로는 부족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산타를 만나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는데 개인 촬영은 금지이며 직원만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찍은 사진은 다양한 크기로 바로 현상이 가능한데 최소 금액이 30유로, 약 43000원에 해당하는 가격이다. 사진 한 장 가격치고는 꽤나 비싼 가격이지만 언제 또 방문할지 모르는 산타 클로스 마을에서 추억을 만들기 위해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늘 많다.

산타 우체국에 가니 크리스마스 카드를 쓰고 있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이곳에서 크리스마스 카드나 엽서를 사서 쓴 후에 보내면 특별한 스탬프와 함께 전 세계로 보내진다. 가격은 정확하진 않지만 대략 10유로 (약 15000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다. 이곳에는 편지를 보내는 것뿐만 아니라 산타 클로스 마을로 도착한 수많은 편지들이 우체국을 장식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낼까나 했는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문 닫기 직전에 산타 우체국에 도착해서 크리스마스 카드를 써서 보낼 시간이 없었다.


크리스마스 분위기 제대로였던 산타 클로스 마을


사실 산타 클로스 마을은 그렇게 크지 않고 볼거리도 별로 많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산타 클로스 마을만을 보러 시간과 돈을 들여 핀란드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실망할 수도 있다. 전에 내가 던 패키지여행에서 산타 클로스 마을 일정은 딱 두 시간이었는데, 사실 산타를 꼭 만나서 사진을 찍는 게 아니라면 두 시간도 널널할 수 있다. 나머지는 크리스마스 기념품 가게들과 핀란드 브랜드 '마리메꼬(Marimekko)', '이딸라(iittala)', '펜틱(Pentik)' 등의 상점이 입점해 있다. 워낙 중국 관광객이 많이 방문하기 때문에 이곳도 약간 중국 패치화가 되어서 기념품 가게 건물 안에 생뚱맞게 딤섬 레스토랑이 자리 잡고 있고 중국인들이 운영하는 것 같은 상점들이 몇몇 있다. 그리고 기념품 가게들은 변함없이 너무 올드한 기념품들을 판매하고 있어서 사실 이곳에서 무언가 사고 싶다는 생각은 딱히 들지 않다.

이곳에서 액티비티를 체험하고 싶으면 허스키 썰매나 순록 썰매를 타거나 어린이들은 스노모빌을 탈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액티비티는 라플란드 북쪽으로 더 올라가면 좀 더 넓은 자연 속에서 큰 스케일로 즐길 수가 있다.




이렇듯 겨울이 되면 특히 핀란드 북부 지역은 관광객들로 성수기를 이룬다. 그리고 이들은 관광객들을 맞이하기 위해 다양한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외국인들을 채용하기 시작한다. 많은 외국인들이 눈 덮인 자연, 오로라, 허스키와 함께 하는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기 위해 핀란드로 일하러 오지만 이는 잊지 못할 악몽이 되기도 한다.  기사에 따르면 라플란드에서 일했던 한 외국인크리스마스 시즌에 연속 2주 동안 하루도 쉬지 못하고 일해야 했으며 투어 가이드 업무에 야간에 장시간 운전도 해야 해 사고로 이어질까 봐 염려가 되었다고 말했다(나도 이번에 이사를 하면서 밤운전을 해봤는데 어둡고 미끄러운 눈길을 운전해야 했기에 평소의 몇 배는 긴장을 해야 했다). 현지 고용주들은 일한 시간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임금을 지불하며, 임시직이라는 점을 악용해 무작위로 해고하는 등 외국인에 대한 노동 착취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한다. 심지어 상을 받기도 한 유명한 관광 업체에서 일했던 한 직원은 자신들을 노예처럼 취급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직원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업무 시스템도 엉망진창이라 제대로 굴러가지 않으며, 취업 비자를 빌미로 협박을 기도 했다고 한다.

특히 라플란드 지역은 겨울 한철 장사이다 보니 고용주들은 최대한 많은 관광객을 커버하기 위해 직원들을 갈아서 일을 시키고, 다음 해 겨울이 되면 아무것도 모르는 해맑고 혈기 왕성한 젊은 외국인들이 와서 또 몸을 갈아서 일하면서 인생의 쓴 맛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런 걸 보면 세상 어디를 가든 다 비슷한 것 같다. 모든 게 잘 지켜지고 천국일 것 같은 이곳 핀란드에서도 악덕 고용주들은 존재하며 현지 사정을 잘 모르는 외국인 노동자는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어두운 면이 존재다.

 

Exploitation of foreign workers an "open secret" in Lapland tourism sector | Yle News | Yle


전에 크루즈에서 같이 일했던 대만 언니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크루즈에서 일하기 전에 라플란드에서 겨울에 투어 가이드로 일한 적이 있었는데 근무 환경도 너무 열악하고 숙소도 형편이 없어서 제대로 자거나 쉬지도 못했다고. 그리고 일에도 체계가 없어서 투어 가이드에 호텔 리셉션 일까지 다 했어야 했다고 말하면서 나보고 절대 가서 일하지 말라고 했었다. 사실 이 언니가 아니었으면 나도 순진하게 그곳에서 울면서 고생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고마워 앰버 언니.


아무튼 산타 클로스 마을을 방문했던 이 날은 너무 추워서 밖을 많이 돌아다니기는 힘들었지만 추위 덕분에 겨울크리스마스 기분을 제대로 느껴볼 수 있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이런 얘기를 했다. 앞으로 이곳에 굳이 다시 올 일은 없을 것 같다고.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산타 클로스 마을 안녕.

저녁이 되니 영하 22도로 더 떨어진 기온에 썰렁한 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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