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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의 이방인 May 25. 2024

학생 모드, 벌써  일 년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새해를 맞이하는 폭죽을 본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5월이다. 학기가 시작하면 온전히 공부에 집중하다 보니 마음에 여유가 없어 글을 쓰거나 다른 일을 하기가 어려워진다. 4월 말에 모든 과제와 시험을 마치고 나니 긴장이 확 풀려서 그런지 피로가 나를 덮쳤다. 그래서 요즘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뒹굴거리거나 산책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핀란드 사람들, 특히 핀란드 학생에게 있어 가장 큰 행사 중 하나인 바뿌(Vappu)가 시작되는 5월에 접어들면서 봄날씨도 같이 찾아왔다. 4월 30일과 5월 1일에 걸쳐서 진행되는 바뿌에는 모든 핀란드인들이 고등학교 졸업식 때 받은 흰색 캡을 쓰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풍경을 볼 수 있다. 꽁꽁 얼어붙어 있었던 호수가 드디어 다 녹아 물결이 치기 시작했고 아이스크림을 파는 키오스크와 야외 테라스가 모습을 드러냈으며, 사람들이 점점 밖에 나와 햇빛을 쬐며 앉아있기 시작했다. 4월 말까지 눈이 내려서 봄이 오는 건가 싶었는데, 그래도 신기하게 호수 물이 점점 녹았고 새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6개월 정도 눈으로 덮여 있었던 핀란드는 지금부터 짧지만 찬란하고 아름다운 봄과 여름이 시작된다.


조용한 핀란드인들이 시끌벅적한 인싸가 되는 날인 바뿌


우리는 작년 12월에 오울루에서 위바스퀼라라는 도시로 이사를 했다. 위바스퀼라는 핀란드 중남부에 위치한 도시로 핀란드 중부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1858년 핀란드 최초의 핀란드어 학교, 1863년 핀란드 최초의 사범학교, 1864년 핀란드 최초의 여학교가 건설되었을 정도로 핀란드의 대표적인 교육 도시로 알려져 있고, 시내 곳곳에 위바스퀼라 대학교 캠퍼스가 자리 잡고 있다. 핀란드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가 알바 알토가 생전에 작업을 했던 도시이기도 하며 시내에는 알바 알토 미술관, 핀란드 중앙 박물관이 들어서 있다(출처: 위키피디아). 호숫가에는 알바 알토가 디자인한 배가 전시되어 있기도 하다.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그렇게 큰 도시는 아니지만 호수가 많고 경치를 내려다볼 수 있는 언덕이 있어 작지만 다이내믹한 느낌이 드는 도시이다. 대부분 도보로 접근 가능한 콤팩트한 도시라는 점도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겨울엔 꽁꽁 얼어붙은 호수 위를 걷거나 스케이트를 탈 수 있으며 크로스컨트리 스키를 즐기는 사람들도 많이 볼 수 있다. 3월 말에는 호수 위에서 승마 경기가 진행되기도 했고 4월에는 얼음낚시 축제가 진행되기도 했다. 핀란드는 4월 말까지는 거의 겨울 날씨라고 볼 수 있다.


어둡고 춥지만 겨울 맛집인 핀란드


어느새 1년 동안의 공부를 마치고 긴 방학이 시작되었다.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 중에는 나처럼 아예 1도 모르고 공부를 시작한 친구들도 있었지만 이미 IT 쪽으로 경력이 있는 친구들도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코딩 부트캠프 같은 곳에서 공부한 후 이쪽에 발을 들였지만, 코로나 이후로 IT 쪽 거품이 꺼져서 그런지 학위가 필요해 공부를 시작했다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런 걸 보면 무모하게 학위를 시작한 내가 잘한 건가 싶은 생각도 들 확실히 적성이 잘 맞아야 할 수 있는 분야라는 생각 든다. 사실 나는 고3 때 이과에서 문과로 전향한 케이스라 그런지 생각보다 이과 공부가 잘 맞았고 특히 수학은 문제를 푸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남편은 내가 수학 문제를 풀 때가 제일 차분하고 평화로워 보인다고 했다. 답이 없는 인생 속을 내내 헤엄치다 보니 답이 딱 떨어지는 수학 문제를 푸는 시간이 나에겐 힐링하는 시간이 되었다.

내가 공부하는 학교는 2021년도부터 영어 과정이 생겼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수업 자료 일부분이 핀란드어로만 되어있는 수업도 있었고, 영어가 유창하지 못한 교수도 있어서 강의 내용이 학생들에게 잘 전달되지 않기도 했다. 때문에 수업 내용이 잘 이해되지 않아 헤매기도 했지만 다행이었던 건 나만 헤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다 같이 헤매고 있어서 외롭진 않았다. 영어로 진행되는 학사 과정아직도 자리를 잡는 과정이라 그런지 학생들의 피드백에 따라 커리큘럼도 계속 수정되는 듯하고, 올해 입학하는 학생들은 우리와는 또 다른 커리큘럼으로 공부한다고 한다. 그래도 시작하기 전에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공부는 잘 따라갈 수 있었고 한 과목을 제외하고 모두 최고 점수를 받았다.

사실 핀란드에서의 공부는 순한 맛 그 잡채다. 너무 순한 맛이라 좀 더 엄격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정도다. 예를 들면, 과제 데드라인이 일요일까지인데 아프다는 이유(혹은 핑계?)로 교수한테 과제 데드라인을 연장해 달라고 하면 대부분 그냥 연장해 준다. 전공 수업은 아니었지만 어떤 수업은 기말고사 기간에 다른 시험이 너무 많다고 하니 시험을 아예 오픈북으로 바꿔준 수업도 있었다. 거의 모든 시험은 재시험이 가능하고 일정 기간 동안 원하는 만큼 무제한으로 재시험을 볼 수 있는 과목도 있었다. 이쯤 되면 pass보다는 fail이 더 어려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뭔가 학생들의 편의를 너무 봐준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내가 이미 꼰대라는 건가?


멱살잡고 끌고 갔던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하드웨어' 수업


남편과 나는 이런저런 기회를 찾아보던 중 이번 학기에 교환학생도 같이 지원했다. 남편이 공부하는 학교에서는 독일과 아일랜드 파트너 대학에 이중 전공 프로그램이 있어서 지원해 보기로 했다. 1년 동안 가서 공부하고 돌아오는 과정인데, 가서 공부하고 오면 두 나라에서 학위를 받을 수 있어서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영어 실력도 향상하고 독일에서는 이미 살아봤기에 남편은 처음에 아일랜드로 가고 싶어 했지만 살벌한 월세 가격에(남편이 오리엔테이션 때 물어보니 더블린 원룸 스튜디오가 2000유로 정도라고 했다. 한화로 300만 원?!) 결국 남편은 독일을 1차 희망 순위로 지원했다.  

내가 공부하는 학교에서도 다양한 나라로 교환학생을 지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유럽 나라는 더 이상 관심이 가질 않았고 홍콩, 일본 등 다른 아시아 국가로 지원할까 생각도 해봤지만 복잡한 비자 프로세스를 굳이 또 경험하고 싶지가 않았다. 사실 그냥 나는 처음부터 한국으로 지원하고 싶었다. 작년에 엄마를 보내고 얼마 되지 않아 바로 핀란드로 돌아왔기에 집에 혼자 계시는 아빠가 마음이 쓰이기도 했고, 한국에서 좀 오래 지내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이런 생각이 드는 걸 보니 이제 한국에 돌아갈 때가 된 것 같기도 하). 한국인이 한국 대학으로 교환학생이라 가능할까 싶었는데 여기저기 검색해 보니 외국 대학을 다니며 한국으로 교환학생을 다녀온 사람들이 그래도 꽤 있는 듯했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 지원서를 준비해 제출했고 얼마 전 둘 다 합격했다는 결과를 받았다. 또다시 이동이다. 이렇게 우리는 롱디 커플에서 기러기 부부로 진화해서(?) 다시 각자도생을 시작하게 되려나.


반짝반짝 빛나는 핀란드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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