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귀거래사(新歸去來辭)

by 여송

누렇게 바랜 벽지 위에 하얗게 붙어 있는 달력은 6월 중순을 가리키고 있다. 계절은 저만치 앞서가고 있는 듯, 한낮의 기온은 벌써 30도를 넘어서고 있다.

미루고 미루어 왔던 매화나무 밭의 제초작업을 오늘은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아침부터 서둘렀지만 들판에 도착하니 해는 이미 중천까지 솟아올랐다.

수년 동안 방치한 농토는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드문드문 서 있는 매화나무 사이로는 어른 키만큼 자란 억새풀들이, 주인 없는 집에서 마음껏 판을 벌이고 있는 춤꾼들처럼 바람에 흔들거리고 있다. 게으른 지주를 만난 탓에 물 한 모금, 거름 한 줌 맛보지 못한 과일나무들의 잎사귀들은 창백했고, 그 위로 덩굴식물들마저 휘감고 있어 숨쉬기가 힘들 정도이다. 험난한 생존경쟁에서 도태되어 고사한 과일나무들의 무덤 위로는 버드나무와 찔레나무들이 버젓이 둥지를 틀었다. 이 와중에도 살아남은 매실나무들은 열매를 맺었다. 극단의 상황 속에서도 종족을 보존하려는 나무들의 생존본능이 눈물겹다. 하지만 영양상태가 부실하여 누렇게 곯은 매실들은 손만 대어도 우수수 떨어진다.

본격적인 무더위가 도래하기 전에 마무리했어야 했던 이 일을 제때에 처리하지 못한 나태함에 대한 대가는 혹독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중무장을 한 후 매실 밭에 들어서니 벌써부터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한다. 서둘러 예초기의 엔진을 작동시킨 후, 밭 입구의 잡초들을 베기 시작했다. 등에 업힌 소형엔진에서 나오는 열기는 체온을 더욱 높이고, 엔진소리는 시골의 정적을 깨뜨린다.

정오에 가까워지자 솟구친 기온에 땀은 비 오듯 흐르는데 찔레가시마저 갈 길 급한 사람의 옷고름을 잡아당긴다. 제 때에 미리 작업을 해 놓았더라면 하고 후회해 본들 이미 때는 늦었다. 한 시간의 작업 후 지친 팔다리에 휴식을 제공하고 솟구치는 땀도 식힐 겸 나무그늘 아래서 좀 쉬기로 했다.

저 멀리 산골짜기 사이로 파란색 고속열차가 시원하게 내달린다. 반백여 년 전에는 시커먼 연기를 내뿜던 증기기관차가 힘겹게 오르던 그 길이다. 그 기차를 보면서 아버지와 나는 이 땅에서 낫으로 풀을 베곤 했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가냘픈 증기기관차는 힘세고 우락부락한 전기기관차로 바뀌었고, 연약한 인간의 힘에 의존하던 낫이라는 농기구는 말 한 마리의 힘에 가까운 출력을 내는 예초기로 대체되었다. 아버지는 오래 전 하늘의 별이 되었고, 남은 형제들은 먹고살 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반대편 영천강 너머로는 아파트들이 우후죽순처럼 솟아올랐다. 불과 십여 년 전만 해도 이곳은 기름지고 널찍한 평야였다. 문전옥답이 아파트 단지로 변모한 이른바 상전벽해의 현장이다. 이 땅을 터전으로 살아왔던 촌로들은 그 평야를 사들이라 불렀다. 들판을 가로지르는 강물이 모래를 퇴적시켜 형성된 사질토(砂質土)의 들판이라는 의미이다. 사들이라는 명칭은 이젠 아파트 단지를 관통하는 도로 이름인 사들로에서 겨우 그 잔재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더위가 절정에 다다른 오후 1시쯤 제초작업은 마무리되었다. 힘든 작업이라고 하지만 낫으로 풀을 베던 옛날에 비하면 식은 죽 먹기다. 아버지와 둘이서 하루 종일 걸려서 하던 일을 혼자서 단 3시간 만에 끝냈으니까.



‘고향의 논밭이 황폐해지고 있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으리오(田園將蕪胡不歸)’


황폐해 가는 고향의 산하를 보면 도연명의 귀거래사의 첫 구절이 떠오른다. 물론 고향의 전원을 황량하게 만든 주범은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문전옥답을 방치한 나 자신이다. 1,600여 년 전 중국 시인의 눈에 비친 피폐한 고향을 바라보는 감성이 시공을 초월하여 내게로 다가온 듯하다. 시대가 바뀌고 환경이 변화해도 인간의 본성마저 바꾸지는 못하리라.

예초기를 메고 터덕터덕 집으로 향했다. 그동안 가슴 한 구석을 억누르고 있던 과제를 해결했다는 성취감에 마음이 한결 가볍다. 남쪽에서 불어오는 미풍이 이마에 흐르는 땀을 씻어준다. 하지만 고향의 산하가 점차 황폐해가고 있다는 생각에 발걸음은 그리 경쾌하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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