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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부사장님이 내 자리로 찾아왔다.

그룹 보고를 할 일이 있는데, 자네가 도와 줄 수 있나

by 찬란


나는 석유화학회사에 입사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 회사가 정확히 어떤 제품을 만드는지도 몰랐다. 다만 연봉이 높고, 내부 커뮤니케이션이 수평적이고 글로벌한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에 끌렸다. 양식에 맞춰 입사지원서를 썼다. 인턴십, 장학금, 자격증, 학점, 영어 점수.. 등등을 써 넣었다. 운이 좋게도 합격했다.

면접 날엔 머리를 단정히 올려 묶고 정장을 입었다. 엄마는 나보다 비장한 표정이었다. 아빠는 정장을 입은 나를 한참 쳐다보았다. 뜨거운 사골국 한 그릇 먹고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면접에서는 구시대적인 질문도 받았다.


“남자친구 있나?”

“술 잘 먹나?”


기분이 묘했지만, 그 시절엔 그저 넘겼다. 웃으면서 그런 질문들을 요리조리 잘 넘기는 것이 면접자로서의 미덕이자 능력인 시대였다. “상사의 불법 행위 요구를 받으면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 “임신 계획 있냐” 등등의 질문을 압박면접이라며 받던 날들이었다.


“아하하하 아니요 남자친구 없습니다.“

(결혼할 남자 있었음)

“술은 마실 수는 있는데 잘은 못 합니다.”

(당시 말술이었음)

그럴싸한 면접 플레이가 끝나고, 긴장 속 몇 주가 지났다. 나는 최종 합격했다. 대학교 중도 컴퓨터에서 웹사이트에 들어가 최종결과를 확인 했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사람들의 흘깃흘깃 쳐다보는 시선을 뒤통수로 받으며 날아갈 듯 집으로 향했다.


신입사원 교육을 마친 후, 나는 사업부 산하 작은 기획팀에 배치됐다.


처음 맡은 일은 시황 조사와 엑셀 작업이었다. 간단한 일이었다. 정해진 자료와 양식을 바탕으로 그래프를 만들었다. 월간·분기·연간 회의자료를 정리하기도 했다. 정말 작은 일이었지만, 나만의 시각으로 조금씩 다르게 해보려 노력했다.

그런 태도를 싫어하는 상사도 있었다.


“너의 시각을 누가 궁금해하겠냐? 누가 물어보면 사업부기획 누구 사원 생각이라고 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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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전략기획부문에서 근무했습니다. 그러다 사고를 당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사랑, 용기, 희망을 믿습니다. chanranfromyo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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