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타 Apr 08. 2020

외롭고 높고 소소한

삶의  아이러니를 믿어

  작가 유시민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작가가 된 과정을 말해주었다. 대학시절 데모를 하다가 끌려갔을 때 맞지 않으려고 경위서, 조서와 같은 글을 열심히 썼단다. 글을 쓰는 동안에만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으므로 미친 듯이 썼다고 했다. 또 유일하게 반입이 허용된 성서를 읽으며 문학적 토양도 키웠다. 성서가 신앙 뿐 아니라 역사와 문학과 철학을 모두 아우르는 방대한 베스트셀러임에는 틀림없으니. 물론 타고난 글재주를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그는 그 시절 혹독한 글쓰기 훈련을 한 것이다. 그곳에서 쓴 글은 신문에 날 정도로 훌륭했다고 한다. 오래 전에  읽어 본 것도 같은데 생각은 나지 않고 멋지다 라고 느꼈던 감정이 남아 있다. 출소한 뒤로는 글을 쓰는 쪽으로 일이 풀렸다고 했다. 그렇게 유시민은 작가가 되었고 여러 직함이 따라 다니지만 어쨌든 지금 그의 이름 앞에는 '작가'라는 타이틀이 붙는다.

   심윤경 소설 "설이" 의 주인공 설이는 설날 새벽 음식물 쓰레기통에서 발견된 아이였다.  보육원 원장에 의해 설이가 꺼내지는 모습은 전국에 중계되었다.

  설이는 파양을 반복하다가  보육원 직원이었던  '이모'와 함께 살게 되는데,  이모는 설이를 사랑으로 보듬는 가족과도 같은 존재다. 여러 사건 끝에 이는 이모에게  '그 날'에  대한 진실을 듣는다. 자극적인 장면이 필요했던 방송국이  보육원 원장과 함께 음식물 쓰레기통에서 아기를 꺼내는 모습을 연출한 것이었다고. 설이를 따라다니던 수치와 모멸과 상처가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었는데, 이모는 그 때문에 자신이 설이 곁에 있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장면을 목격한 이모는 설이 곁에 있고 싶었다. 마음이 그랬어도 보육원이 작았다면  곁에 있을 수 없었을 텐데 설이가 방송을 탄 덕에 후원과 관심이 이어졌고 보육원이 덩치를 키울 수 있었다. 그 덕에 이모는 계속 그곳에서 일을 하며 설이 곁을 지킬 수 있었다. 그러니까 상처뿐인 설이의 출생이 세상에 둘도 없는 이모를 만나게 해 준 것이다.


   삶의 아이러니. 잘난 인물이나 소설 속에서만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안다.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삶에서도 어떤 '진수'가 숨어 있고 그것이 비기인 양 드러나기도 한다는 것을.  몸에 가시를 세우고 살아가던 때보다 내가 싫어하는 단어인 순응하고 순종하며 살아갈 때  도리어 삶에 끌려다니지 않고 주체가 된다. 그런 아이러니. 해야 할 일을 불평 없이 묵묵히 하고  거기에 보태 애정을 싣는다. 그 신실한 순간이 나를 '진수'로 이끈다. 그건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한 자의 변명 같은 게 아니다.  삶은 어느 정도는 그 사람의 대로 흘러가는 성향이 있지만 그렇다고 원하는 대로 흐르는 게 절대 아니니까. 그 때문에 불안도 계속 갈 수 있는 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자기 속에서 그 아이러니를 발견할 수 있는데, 사람이 어리석어 그걸 모르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 이를테면 이렇게 말하고 싶은 건데.

   나는 내 삶이 어디로 흘러가는 지 알아. 모르지만 알아. 지금 이 삶이 나도 당황스럽지만 힘에 부칠 때도 많지만 결국 이 삶 속에서 나는 내 삶을 발견하게 될 거야.  이 삶 또한 내 삶이고 내가 발견하게 될 삶 또한 내 삶이야.

 

  그것이 결코 배치되지 않는다는 믿음. 삶의 아이러니를 믿게 됐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을 어떻게든 가꾸어야 한다.




 


   

 








  




작가의 이전글 외롭고 높고 소소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