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타 May 04. 2023

응답과 기쁨

새끼 손가락과 변명

1.

 그녀의 새끼 손가락은 한마디 정도가 없고 딱 그만큼 짧다. 양 손 모두.

 손가락으로 이어지는 손바닥 끝의 굴곡이 완만하게 휘다가 새끼부근에서 확 꺾인다고 할까.

 그렇기때문에 새끼손가락이 저 아래에서부터 달려 있다고 할까.

 자세히 보지 않으면 남들과 다를 바 없고 딱히 불편한 적도 없어서 평소엔 생각도 않지만,

 주먹을 쥐면 툭 튀어나오는 뼈가 새끼손가락에만 없어서 달력이 세어지지 않았던 곤란한 기억이 그녀에게도 있었다.

 당시 그녀는 자신의 손이 그런 줄 몰랐으므로 '나는 왜 30일과 31일이 세어지지 않을까, 혼자서만 틀린 답을 하고 앉아 있을까' 혼란스러웠다.

 청소년기가 지난 뒤에야 자신이 그 문제를 틀릴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웃어 넘겼지만

 튀어나오기는커녕 보조개처럼 살짝 들어가기까지 한 그 부근의 뼈를 보고 왠지 짠하긴 했다.

 그러곤 자신의 몸에 난 점들을 잊듯 빠르게 그 사실을 잊었다.


 소소한 일에도 한껏 부딪히며 살아가는 매력적인 사람들이 그녀 주위에도 있었다.

 자기 삶의 주도권을 갖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자기 몸의 점들을 기억하는 자들이다. 자신을 사랑하고 구석구석을 살피는 눈을 가진 자들.

 그녀는 주인공이 되어 울고 웃는 그들을 보며 부럽다고 생각했다.

 파도처럼 거대한 일이 아니고선 관조적 자세로, 땅에서 발을 살짝 떨어뜨린 상태로 사는 데 익숙해졌으므로. 그녀에게 말을 걸어오는, 새끼손가락 부위와 같은 일들을 휙휙 지나치며.

 그녀 또한 아이일 적엔 주인공이었는데. 나뭇가지에 앉았다 가는 참새조차 한 개의 사건이 되어 그녀 앞에 떨어지곤 했는데.

 무엇이 그녀를 두렵게 만들었을까. 무엇이. 그 무엇이.


 그녀는 손을 펴고 손가락을, 새끼 손가락을 가만히 보았다.

 언제나 통하는 변명. 그것이 새끼손가락에도 있었다.

 기타실력이 늘지 않는 이유 또한 그 때문이었으니까. 그렇게 말하면 모두 믿어주었으니까.

 그녀는 그저 열심히 하지 않았던 거다. 새끼 도무지 닿지 않는 줄이 있었

 그걸 잡으려 손목을 비틀어야 해서 자세가 완전히 나갔지만

 어찌어찌 잡아도 소리가 선명하지 않았지만

 그 모든 건 변명. 그리고 이건 하나의 비유.

 게다가 다른 데서 오는 묵직한 한방.

 "너 왼손잡이였구나."

  같은.

  참 나, 삶이란.


 2.

 그럼에도 주말마다 기타를 메고 홍대를 들락거리며 합주를 하던 시절이 그녀에게도 있었다. 이십 대의 한 자락.

 같이 하자고 연락 온 베이시스트부터 나머지 팀원까지 그녀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크나큰 단점 있었으므로.

 착한 데다 인내심하다는 단점.

 "이 모든 게 새끼손가락 때문이에요."

 그녀는 고백했고 베이시스트는 고민했다.

 "음. 그럼 네가 베이스를 쳐라. 내가 기타를 칠게."

 베이시스트는 자신의 베이스를 그녀에게 건넸고, 얼마 뒤 다시 고민에 빠졌다.

 "음. 왼손잡이였구나. 줄을 바꿔 끼자. 반대로 들면 돼."

 "일주일만에 합주가 될까요."

 "...하면 되지..."

 아주 막가자는 거구나! 드러머가 말했고 보컬이 고개를 푹 숙였지만

 그들의 인내 덕에 합주가 굴러가는 기이한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악기와 사람 간의 주파수를 이해하면서 그녀는 베이스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녀에겐 기타의 카랑카랑한 소리보다 베이스의 저음이  맞았다. 그 소리가 더 좋았다.

 베이스 또한 새끼손가락의 난관이 기다리고 있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기타(베이스)의 위치가 바뀌어

 안정을 찾아갔다.


뒤풀이에서 그녀는 기타를 처음 접하게 된 날에 대해 말했다. 통기타였다.

그것이 집 근처 누군가의 집 담벼락 앞에 버려져 있었다. 벽에 기댄 채 며칠동안. 검은 케이스를 입고.

그녀는 그곳을 지나칠 때마다 그것을 보았다. 그리고 늘 그렇듯 무심하게 그곳을 지나가다가,

안되겠다 싶어 길을 되돌렸다. 그러고는 그것을 집어 어깨에 멨다. 


"이야, 도둑질을 했네."

"그렇게 안 봤는데."

 드러머와 보컬이 말했고 베이시스트가, 아니 이젠 기타리스트인가, 아무튼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거 안되겠구만, 과 같이 말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항변했다. 버려진 것이었다고.

 "담벼락 앞에 차가 세워져 있면, 그것도 가져가겠네?"

 "커버로 덮여 있어도 가져갈 걸."

 베이시스트가 고개를 흔들며 도둑이었어, 중얼거리고.  

  

 때 그 술집에 흐르던 음악은 무엇이었을까.


 3.

 미밴드라 플레이어란 말이 더 적합하겠으나 그녀에게만은 리스트로 남아 있는 열정적인 구성원들.

 변명은 때로 누군가의 도움으로도 변명이 아니게 될 수도 있음을,

 알고보면 완벽한 순간이 단 한순간도 없다는 것을

 그녀는 제 안다.

 그녀는 여전히, 무언가를 하려면 집 정리가 되어 있어야 하고 신변이 고요해야 하는 성격의 소유자이지만

 완벽한 순간은 잘 없기에 이왕이면 변명하지 말자고

 그저 하자고

 그렇게 스스로와 약속하게 되었다.

 변명이 달콤한 사탕처럼 입안에 감돌고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그녀를 주저 앉히고는 하지만

 마당에 앉았다 가는 새라든가, 창에 들어오는 햇빛 한 줌조차 구원자가 될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알기에.

 그녀는 중얼거린다.

 오늘도 삶 쪽으로.

 땅에 발을 딛고.

 연습.


 

 



 

  



 

 



 


 

 


 


 

 




 




  

  


 

  



   

  

   

  



 



 

  

 

 

작가의 이전글 응답과 기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