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사과 영상에 대하여
필수 요소: 단조로운 배경, 화장끼 없는 얼굴, 검은색 옷, 손질 안된 지저분한 머리, 초점 없는 눈빛
선택 사항: 대본, 유튜브 활동 중단
동방예의지국답게 우리나라 유튜버들은 고개를 숙이며 "구독자 여러분, 정말 죄송합니다 (꾸벅)” 영상을 시작한다.
크고 작은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쏟아져 나오는 유튜브 사과 영상은 이제 하나의 밈(meme)이 돼버렸다.
잘못을 한 유튜버는 대게 사과 영상을 올리는 형태로 구독자와 자신이 피해를 준 집단에게 공개 사과를 하는 영상을 찍어서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올린다.
왜 사과 영상을 만드는가?
남들에게 노출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면 사과도 공개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 맞다. 연예인들도 각종 논란거리로 자신의 SNS를 통해 사과문을 올린다. 자필 사과문을 올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필로 쓴 사과문이 보통 더 진정성 있다고 평가되고 누가 대신 대필해준 것이 아닌 자신이 '직접' 쓴 사과문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나의 뇌피셜이지만 대부분 회사가 써줄 확률이 높다).
공인이 공개적으로 사과를 하는 것처럼 유튜버들도 자신이 활동하는 플랫폼에 사과문을 올린다.
유튜브 사과 영상도 2가지 유형으로 나눠볼 수 있다:
1. 유튜브 채널에서 했던 실수에 대한 사과 (말실수, 뒷광고, 허위광고, 다른 유튜버 디스, 혐오발언)
2. 유튜브 외적인 일/ 과거 일에 대한 사과 (학교폭력, 빚투, 범죄)
1번 유형과 달리 2번 유형에서는 사실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에게 직접 사과하면 된다. 그런데 유튜브 외적인 일로 인한 사건 (유형 2)에 대한 사과도 하는 것은 유튜버가 자신의 구독자들(팬들)을 실망시킨 것에 대한 사과도 함께 해야 하기 때문이다. 팬들은 생각보다 쉽게 배신감을 느낀다. 일방적인 사랑의 관계인 팬심은 자신이 상상했던 스타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 마음이 돌변할 가능성이 크다.
왜 사과 영상에서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가?
잘못을 저지르고 사과를 하면 끝일까? 잘못된 사과 방식은 용서는커녕 오히려 더 큰 분노와 악플을 몰고 온다.
크게 분류를 하자면 반성과 책임에 대한 내용이 빠져있어서 사과 영상 안에 진정성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1. 잘못된 사과 태도
나쁜 사과 영상 케이스: 과도한 감정 표출 (울기), 변명, 동정심 유도
모두 사과의 본질을 흩트리는 나쁜 사과 영상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사항이다. 사과를 할 때는 우선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한 인지가 필요하고 어떤 점이 잘못되었는지에 대한 파악이 필요하다. 실수가 발생한 이상 사람들은 그 사람이 왜 이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듣고 싶지 않아 한다. 변명은 책임 전가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과도한 감정 표출은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일단 논란의 인물이 된 이상 살벌한 인터넷 사용자들이 이 논란의 인물을 불쌍하게 동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볼 리가 없다. 감정을 이용해서 자신의 잘못을 감추려고 한다는 인식 때문에 이러한 태도는 진정성과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다.
2. 뒷수습을 위한 형식적 사과
사과가 올라오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면 구독자들의 비난은 배가 된다. 우리가 진정성에 대해 이야기할 땐 그것이 자발적으로 마음에서 우러나는 행동이길 바란다. 그런데 단순히 자신의 채널을 지키기 위해 아님 앞으로 활동에 지장이 될까 봐 사과를 하는 경우라면 이런 사과를 진심으로 받아들이기 힘들 수 있다. 결국 사과의 핵심은 피해를 받은 사람 혹 실망한 사람에게 사죄하는 마음인데 그 초점이 사과하는 이에게 맞춰져 있다면 이 역시 사과의 본질을 상당히 흐리게 되는 것이다.
3. 실수 방지를 위한 대책 없음
사과의 3 요소라고 하면 흔히 : 1. 나는 누구인가 2. 무엇을 잘못했는가 3.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 의 내용이 들어가야 한다.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사과 영상의 경우 앞으로 비슷한 유형의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이 없는 영상들이 많다. 사과는 반성에서 나아가 책임을 지기 위한 행동까지 이어져야 한다. 아무리 앞에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해도 그것이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사과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 사과를 받아줄 이유가 없다.
보통 유튜버들은 사과 영상을 올린 후 반성의 의미로 영상 업로드를 중지하고 활동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활동을 안 하는 이유, 활동을 안 하는 동안 무엇을 할지, 피해 보상은 어떤 방법으로 할지 등 구체적인 계획 없는 활동 중단은 아무 의미가 없다.
사과 영상에 대한 피로감
유튜브 사과 영상에 대한 피로감이 분명히 있다. 유튜버 논란거리가 수면 위로 드러났을 때 이제는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사고 수습을 할지 눈에 훤히 보인다:
우선 논란이 터진 날 댓글창에 난리가 나고 SNS에 테러를 당해도 묵묵부답으로 하루 이틀을 버틸 것이다. 다음, "마음의 안정을 찾느라 사과문이 올라오기까지 오래 걸린 점 사과드립니다."라고 말하며 SNS의 자필 사과문을 올린다. 대책 없는 타입이라면 댓글창을 닫아놓을 것이고 아직 내 안에 인간성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어떤 쓴소리도 달게 받겠다'는 자세로 댓글창을 열어 그냥 질책을 받는다. SNS 팔로어들은 사과문으로 만족할리가 없다. 심지어 유튜버 구독자의 100%가 모두 SNS까지 팔로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과문을 보지 못한 이들도 있다. 그래서 논란의 유튜버는 이제 사과 영상을 찍기로 결심한다. 사과 영상을 올린 후 6개월 정도 잠적을 하며 마치 유튜브 판을 떠난 것처럼 행동하지만....
어느 순간 다시 SNS 활동을 재개하고 "다시 시작" / "보고 싶었어요" / "일상의 회복" 등의 유튜브 활동을 다시 알리는 영상을 가지고 논란의 유튜버는 아무 일이 없었 듯 다시 활동을 시작한다.
우리는 이런 패턴에 너무나도 익숙해졌다. 사과를 해도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믿어주지 않고, 활동 중단을 한다고 해도 돈이 궁해지는 시점이 오면 분명 돌아올 것이기 때문에 믿지 않는다. 일명 '6개월 안 복귀는 사이언스'라는 말이 생길 정도다.
유튜버와 구독자의 관계는 여러 면에서 특별하다. 그냥 연예인과 달리 이 관계는 유대감과 친밀함이 핵심이 되어 신뢰를 바탕으로 형성된 관계다. 작은 논란인데 너무 크게 부풀려서 한 사람의 커리어를 망치는 경우도 분명 있다. 이 얘기는 나중에 [슬기로운 인터넷 탐구생활]에 '캔슬 컬처' (Cancel Culture)에 대해 글을 쓰며 따로 탐구해보고 싶다.
어쩌면 유튜버는 사실 일반인이기 때문에 영상을 많은 사람이 본다는 이유만으로 공인의 잣대로 평가하는 것이 개인에게 너무 과도한 일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유튜버들이 넷상에서 여러 사람에게 노출되어 다른 이들에게 끼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이들은 분명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고 자신을 그동안 믿어준 구독자들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현재 유튜브에는 사과 영상이 넘쳐난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사과가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 진정한 사과는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사과를 바라보는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진정성 없는 사과 영상 및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몇몇 유튜버들의 행보를 보고 있으면 사과의 의미가 상당히 퇴색되었고 가벼워졌다는 것을 느낀다. 사과가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도 많을뿐더러 모두 진정한 사죄의 자세는 없이 비슷하게 정형화된 사과 영상 형식으로 잘못된 행동에 대한 책임을 그냥 쉽게 넘겨버리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사과 영상도 사과 영상이지만 애초에 왜 이들이 사과 영상을 찍게 되었는지 먼저 생각해보자. 제일 좋은 건 사과 영상 따위는 찍지 않도록 평소에 바르게 행동하는 것이다. 물론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 이때 구체적으로 사과를 하고 확실하게 반성하는 모습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방법밖에 없다. 사과는 사과 영상에서 끝나면 안 된다.
사과 영상이 계속해서 좀비처럼 나타나는 하나의 유튜브 트렌드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행동은 바르게, 사과는 확실하게 하자.
+ 위에 영상은 해외 유튜버들의 사과 영상 중 'I'm sorry' 부분만 모은 것인데 나중에는 'I'm sorry'가 나중에는 단어처럼 들리지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