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먹방을 보는 이유
유튜브의 한 구석에는 자신이 음식 먹는 영상을 찍어서 올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름하여 먹방 유튜버들. 먹방은 먹는 방송의 줄임말이다.
유튜브뿐만 아니라 방송가에서도 음식, 아기, 동물 이 3가지 없이 방송을 생각하지 말라고 할 정도로 먹방은 방송의 치트키라고 한다. 그만큼 우리는 남들이 먹는 모습을 보는 것을 좋아하고, 생각보다 그런 모습에 많이 노출되어 있다.
먹방에 위상이 얼마나 커졌나면 이제는 먹방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 유튜버들도 찍는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먹방 전문 외국 유튜버들도 많은데 먹방은 한국에서 처음 만든 영상 장르인 만큼 영어로도 'mukbang'이라고 한다. 먹방이 세계화가 된 만큼 전 세계 곳곳에서 여러 종류의 음식을 먹는 유튜버들이 먹방 영상을 유튜브에 업로드한다. "Hi guys, welcome to my mukbang"이라고 시작하는 외국 먹방 영상들은 보면 아직도 조금 신기하다.
외계인들이 지구에 와서 인간들이 유튜브로 어떤 동영상을 시청하는지 보면 상당히 흥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사실 외계인까지 갈 필요도 없다. 인터넷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시대분들 역시 왜 '요즘 애들'이 남 먹는 걸 보는지 잘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먹방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렇다고 유튜브 먹방을 모두가 즐겨보는 것은 아니다. 남이 먹는 소리가 싫어서 먹방을 안 좋아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고 또 먹방을 보는 행위 자체를 이해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렇게 호불호가 나뉘는 먹방 영상을 우리는 도대체 왜 시청하는 것일까?
대리만족
내가 언제 먹방을 자주 보는지 되짚어보면 다이어트할 때랑 이유 없이 밤에 배고플 때 가장 많이 봤던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배고플 때 먹방 보면 더 배고파지지 않냐고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내가 먹지 못해도 남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는 모양이다. 우리가 현재 다이어트와 운동으로 몸을 가꾸기를 강요하는 금욕적 사회 속에서 살기 때문에 억제되어 있는 욕망이 먹방과 같은 쾌락주의적 영상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을 수도 있다.
많이 먹고 또 맛있게 먹는 사람을 보면서 느끼는 쾌감이 분명 있다. 넓은 구강 면적을 자랑하는 이들이 한입에 컵라면을 뚝딱 먹어치우는 쾌감을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춤꾼이 있는 것처럼 맛있게 그리고 복스럽게 잘 먹는 먹꾼도 따로 있는 것 같다.
대리만족이라는 감정은 참 신기한 것 같다. 내가 하지 못하는 걸 남이 해줄 때 그 사람을 대신해서 만족을 한다. 나 자신을 다른 이에게 투명시키면서 간접적으로 그 행동을 느끼는 감정에서 대리만족이 탄생하는 것일까? 아니면 타인의 행복을 대신 느낄 수 있는 만큼 우리가 감정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탓인가? 어떤 이유 때문이든 보기만 해도 배부르다는 얘기를 먹방에도 쓸 수 있는 것 같다.
외로운 현대인의 식사자리
혼자 적막하게 조용히 식사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밖에서 혼밥 하기 싫어서 집에 와서 먹는다고 해도 집에서 먹는 혼밥 역시 그리 즐거운 일은 아니다. 식시시간은 단순히 밥을 먹는 시간이라는 의미를 넘어 남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일상을 보낸다는 의미도 갖는데 여러 이유 때문에 혼자서 밥을 먹어야 하는 이들에게도 밥 친구가 필요할 때가 있다.
그래서 그런지 스터디윗미 글에서도 썼지만 유튜브를 시청하는 사람들은 무언가를 함께한다는 느낌을 받는 걸 참 좋아한다. 외로운 현대인의 식사자리를 조금 덜 외롭고 쓸쓸하게 보내기 위해 나의 인터넷 친구, 먹방 유튜버를 틀어놓고 밥을 먹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먹방을 보면 유튜버와 음식을 같이 먹는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유튜버들이 먹방을 시작할 때 보통 그날 방송에서 먹을 걸 소개하고 어쩔 때는 한입씩 카메라에 가까이 보여주며 마치 시청자들에게 한입 먹어보라는 듯이 행동해서 더욱 그런 것 같다.
건강을 해치며 얻는 것들
우리는 이렇게 여러 이유로 먹방을 보는데 과연 이게 건강한 모습인가 의구심이 들긴 한다. 여기서 건강은 신체적 건강과 정신적 건장 둘 다 말한다.
남자보다 여자에게 이 잣대가 더 심한데, 흔히 먹방 유튜버들의 댓글에는 흔히 '언니는 이렇게 많이 먹는데 왜 살이 안 쪄요' 같은 질문이 많다. 그러면 또 대댓글로 OO님은 '많이 먹고 운동해서 괜찮다' 혹은 '많이 먹으려고 1일 1식 한다'라는 글들이 달린다. 많이 먹는 모습은 좋아하지만 또 그렇다고 과도하게 살찌는 모습은 구독자도 유튜버도 극도로 싫어한다.
실제로 많은 먹방 유튜버들은 과도하게 살찌지 않기 위해 1일 1식을 하고 먹방을 찍기 않는 나머지 시간에는 먹방 하면서 먹은 칼로리를 모조리 불태워버리겠다는 생각으로 하루 종일 운동하는 경우가 많다. 자기 관리가 철저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방송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일상을 과도하게 바꿔가며 사는 것이 과연 괜찮을까 괜한 걱정이 든다.
먹방을 찍으면서 건강상의 이유로 잠시 휴식기를 갖는 경우도 있다. 예전에 ‘벤쯔’님이 식도 화상을 입고 한동안 뜨거운 음식을 못 먹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엠브로’님도 다이어트를 위해 먹방 휴식기를 가진 적도 있다. (여담이지만, ‘벤쯔’님은 여러 논란거리를 제공하고 유튜브를 그만둔 건 이미 알고 있었는데 ‘엠브로’의 근황이 궁금해서 오랜만에 검색했더니 이분도 뒷 광고 논란에 휩싸여서 결국 은퇴했다고 한다.)
먹뱉 현상: 음식을 먹고 뱉는 것
몇몇 유튜버들을 악성루머처럼 끊임없이 따라다니는 먹뱉 논란 또한 먹방을 논하면서 빼놓을 수 없다. 멀쩡한 음식을 낭비하는 것 자체로 사실 비난받을 만한 일이지만 먹방계에서 먹뱉은 유튜브 구독자들을 농락하고 속인다는 느낌 때문에 사람들이 더욱더 배신감을 느끼는 것 같다.
실제로 이들이 먹뱉을 하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런데 계속해서 왜 먹뱉 논란이 생기는지 생각해보면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음식 수준보다 훨씬 더 많이 먹는 모습에 대한 불신 때문인 것 같다. 실제로 먹고 뱉는 먹방 유튜버가 있다면 그것은 상당히 심각한 문제다.
식탐, 먹방 그리고 낭비
유튜브 먹방을 보다 보면 참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을 떨쳐내기 힘들다. 우리 사회는 너무 많이 먹는 것을 '식탐이 심하다' '저렇게 많이 먹으면 돼지 된다'라고 비난하면서, 또 많이 먹는 모습을 찬양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정말로 먹는 게 즐거워 보이는 것 같은 ‘입짧은햇님’이나 ‘여수언니 정혜영님’ 같은 먹방 유튜버들도 있다. 하지만 많은 먹방 유튜버들에게는 결국 먹방 영상을 올리는 것이 직업이 되어버린 이상 더 많이, 더 자극적인 음식을 먹는 모습을 어쩔 수 없이 계속 보여줘야 한다.
필요 이상으로 많이 먹는 것에 대해 뭐라고 할 생각은 없다. 각자 원하는 만큼 많게 혹 적게 음식을 먹을 자유는 있다. 다만, "만 칼로리 먹기 챌린지" 같이 과도하게 많은 양을 억지로 먹는 것은 결국 재미를 위해 음식을 낭비하는 것은 음식을 올바르게 다루는 자세는 아니다.
먹방의 여러 문제점을 인식한 나머지 실제로 2018년 정부는 먹방 가이드를 만들고 규제하겠다고 발표한 적이 있었다. 물론 이러한 정책 발표는 먹방을 보는 개인의 자유를 침범하지 말라고 먹방 lover들이 거세게 항의 해서 없던 일이 되었다. 비슷한 사례로 2020년 중국 정부 역시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먹방을 규제에 나선 적이 있다 (먹방과 음식물 쓰레기가 무슨 연관성이 어디에 있나 의심스럽지만). 먹방을 향한 정부 차원 규제는 분명 과도한 면이 있으나 여러 국가의 정부가 이미 먹방의 문제점을 지적한다는 것은 그만큼 '먹방'이 견제와 규제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
먹방을 즐기는 것 자체는 괜찮다. 먹방은 누군가에게는 대리 만족을 주고 누군가에게는 외로움을 달래는 수단이 된다. 또 먹방은 누군가에게는 소소한 재미를 안겨주고 누군가에게는 많이 먹는 것이 수익 창출의 기회가 된다. 그렇지만 우리의 무분별한 먹방 시청이 과도한 음식 섭취에 대해 무감해지지 않는지는 분명 계속해서 살펴보아야 할 문제인 것 같다.
10년 차 유튜브 시청자로서 유튜브에서 허비하는 시간이 점점 늘면서 나 역시 예전에는 그저 무해해 보였던 먹방이 생각보다 위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시작한 것 같다. 어느순간 갑자기 라면 10 봉지를 뚝딱 해치우는 영상을 밤에 보고 있는 내 모습이 기이해보이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