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유튜브에 허비한 시간, 인터넷 문화에 대한 고찰
어느덧 유튜브를 보면서 허비한 세월만 거의 10+년.
아주 어렸을 때, 아직 유튜브가 마이너들의 공간이었던 시절부터 봤으니 이제는 어느 정도 유튜브 고인물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10+년 동안 유튜브 생태계 자체가 많이 변했고 내가 보는 영상의 종류 역시 변했다. 10년이면 강산이 바뀐다고 하는데 그래도 나는 그 시간 동안 참 한결같이 일상 브이로그 영상을 시청했다.
솔직히 남들에게 왜 브이로그를 보는지 설명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왜 모르는 사람의 일상을 보고 있냐고 물어보면 사실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냥 생각 없이 보는데?"라고 하기엔 그동안 꾸준히 많은 영상을 시청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워서 그렇지 마음속 깊이 우리가 유튜브 일상 브이로그를 좋아하고 영상을 꾸준히 보는 이유가 분명 있다.
브이로그란?
이 글을 지금 블로그에서 읽는 당신이라면 브이로그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도 굳이 설명을 해보자면 브이로그 (vlog)란 video랑 blog의 합성어로 말 그대로 영상 형태의 블로그라고 할 수 있다. 유튜브에 영상을 만들어 올리는 것이 유행을 하면서 인터넷 블로그 공간에 글과 사진을 남기는 방식을 넘어 영상을 찍어 비디오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삶을 공유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는 추세다.
유튜브에는 여러 장르 중 하나로 일기 쓰듯 편하게 일상을 공유하는 방식 때문에 아마 많은 이들이 계속해서 자신의 모습을 자신의 카메라로 담는 것 같다. 브이로그만 단독으로 찍는 브이로그 유튜버가 따로 있는가 하면 특정 주제의 영상을 만들면서 일종의 팬 서비스 차원으로 브이로그를 가끔씩 올리는 유튜버들도 많다.
I. 브이로그를 보는 현상이 왜 특이한가?
사실 어느 순간부터 문뜩 이렇게 여러 명의 브이로그를 자주 챙겨 보는 나의 행동에는 조금 기이한 면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랑 상관없는 남의 (심지어 유명인도 아님) 일상을 보고 있을 이유가 전혀 없다. 의식적으로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보는 것 같지도 않다.
솔직히 브이로그를 보면서 딱히 새로운 정보를 얻는 것도 아니다. 여행 브이로그라면 차라리 일상과 다른 이색 공간에서 재미있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냥 일상 브이로그라고 하면 말 그대로 그냥 평범한 나의 일상을 보여줄 뿐이다. 학교 갈 준비하고, 밥해 먹고, 커피 사러 가고, 슈퍼 가서 장보고, 개 산책시키고 - 그야말로 일상을 다루기 때문에 여기서 특별히 얻는 교훈이나 정보를 얻는다고 말하기 힘들다.
브이로그 영상들이 특별히 더 재미있어서 보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영화나 드라마와 달리 일상 브이로그에는 딱히 스토리의 기승전결이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영상이 쭉 나열되며 보통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하루, 일주일, 한 달 등 시간의 단위에 따라 이야기가 진행되는 방식이 대부분이다. 굵직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영화이 너무 잔잔하다/재미없다는 혹평을 받는 일이 다반이데 일상 브이로그는 줄거리가 없다고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물론 브이로그의 구성요소에 대해 달리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미국의 유명 유튜버 Casey Neistat은 브이로그 안에도 영화처럼 기승전결의 요소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했다. Casey는 다큐 영화감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일 수도 있다.
Casey Neistat은 자신이 브이로그를 찍는 방법을 아래 영상을 통해 설명하는데 자신의 브이로그는 항상 set up - conflict - resolution 구조를 따라간다고 한다. 브이로그 역시 스토리가 중요하고 어쨌든 콘텐츠이기 때문에 내용을 풍부하게 하기 위해서는 소설과 영화처럼 일정한 짜임새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기승전결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브이로그는 이러한 구성요소가 아주 교묘하게 숨어있기 때문에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는 것일 뿐 흥미를 위한 장치로 스토리텔링 기술이 어느 정도 들어간다는 점을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그렇지만 영화나 소설처럼 브이로그 안에도 스토리가 숨겨져 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왜 우리가 생판 모르는 사람의 일상을 궁금해하고 시간을 들여 영상까지 시청하는 걸 설명하기 힘들다. 함께 학교에 가고, 함께 출근 준비를 하고, 함께 요리를 하는 그런 느낌을 주는 영상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느끼는 것일까?
우리는 왜 일상 브이로그를 볼까? 나는 왜 일상 브이로그를 볼까?
II. 남의 생활 염탐(廉探) 하기: 보여주는 사람과 보고 싶어 하는 사람
일단 남을 '보고 싶어 하는' 구독자에 대한 이야기부터 하자. 브이로그를 보는 행위 심리는 타인에 대한 궁금증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관찰 예능을 보는 우리의 모습과 비슷한 맥락으로 일상 브이로그 시청을 이해할 수 있다. 시나리오가 정해져 있는 예능보다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관찰 예능은 우리를 남의 일상으로 초대한다. 우리는 남의 생활을 궁금해하기 때문에 이 초대를 수락한다. 이렇게 남의 생활을 관찰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타인에 대한 궁금증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여러 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우리가 타인에 대해 궁금해하는 이유는 인간이 사회적인 동물이라고 말한다. 움막 짓고 무리 지어 살았던 시절에는 다른 이의 사냥 비법을 알고 싶어 했겠지만 현대사회에는 이러한 호기심이 다른 이의 삶에 대한 전반적인 궁금증으로 발전해 왔다고 한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의 위치를 확인받고 싶어 한다. 또 혼자가 아니라 어떠한 큰 무리에 속해있다는 느낌을 받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것들을 궁금해하고 정보를 수집하고 그 정보를 토대로 스토리텔링을 끊임없이 한다.
다른 사람을 궁금해하고 알고 싶어 하고 더 나아가 훔쳐보고 싶어 하는 심리, 그리고 그것을 충족시켜주는 브이로그. 이런 맥락에서 브이로그를 시청하는 행위를 분석하면 우리가 브이로그를 보는 행위가 지극히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운 감정에서 나온다고 말할 수 있다.
단순 호기심을 넘어 유튜브 브이로그를 보는 심리 속에는 일종의 관음주의가 숨겨져 있다. 어떤 정보를 알려달라고 하는 것보다 몰래 훔쳐보면 더 자연스러운 모습을 관찰할 수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몰래 보는 것이 재미있다. 스스로 인정하기 껄끄러워서 그렇지 누구나 다른 사람을 염탐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근데 혼자 몰래 보는 것이 이렇게 쉬워질 수가 있는가. 자신의 일상으로 초대하는 사람이 유튜브에 이렇게 많으니 말이다.
반대로 브이로그를 찍는 사람은 어떤가? 자신을 남에게 드러내고 싶어 하는 심리로부터 브이로그를 찍어서 유튜브에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남들과 소통하고 싶고 나를 남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는 생각 때문에 이렇게 대부분의 유튜버들이 일상 브이로그를 시작한다.
흥미로운 건 구독자는 브이로그를 통해 다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지만 유튜버는 내가 조회수를 올려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모른다. 이렇게 브이로그 유튜버와 구독자 사이에는 한쪽이 다른 한쪽에 대해 더 많이 아는 일종의 불평등 관계가 형성된다. 일방적으로 보여주고 일방적으로 훔쳐보는 관계가 일상 브이로그를 통해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브이로그는 자신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사람과 몰래 훔쳐보고 싶은 사람의 만남을 통해 만들어진다고 할 수 있다.
II. 다른 이의 삶을 이해하는 방식
우리가 브이로그를 보는 무의식적인 심리를 벗어나 의식적으로 왜 남의 일상을 소비하는지 한번 보자.
브이로그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하면 다른 이의 삶을 쉽게 이해하기 좋은 수단이라는 점이다. 나이, 국가, 인종 초월하여 다른 사람의 삶을 좀 더 organic 한 방법으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꾸미지 않은 (설령 그것이 매우 꾸며진 것이라고 해도) 브이로그는 다른 사람의 일상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이런 특징은 특히 외국 유튜버들의 브이로그를 볼 때 더 잘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브이로그를 보고 있으면 LA 언니, London 언니의 일상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고 이들의 영상을 보면서 내가 마치 이들을 아주 잘 아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LA 언니는 슈퍼에서 무엇을 사는지, London 언니는 친구들이랑 맥주 마시러 어떤 펍에 가는지 관찰하는 재미가 있다. 유튜브 고인물은 이제 도쿄 유치원생의 도시락까지 궁금해서 찾아보는 경지까지 갔다.
다른 직업군의 사람을 보는 재미도 있다. '카페 노예 jun'도 가끔 보는데 음료와 디저트를 만드는 과정을 보는 것이 재미있다. 흥미롭게도 이분은 해외에서 인기가 많은지 외국인 구독자가 점차 느는 추세인데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식 카페를 꼭 가보고 싶다는 글로 댓글창을 도배한다. 물론 jun 사장님이 인심이 좋아 재료도 아낌없이 팍팍 쓰고 메뉴 개발에도 신경 쓰는 건 맞는데 (나도 이런 동네 카페가 있으면 매일 갈 것 같다) 우리가 보기에 막 '세상에, 이런 카페를 본 적 없어~!' 이런 느낌이 아닌데도 그들이 보기에는 'Korean style cafe'이 특이해보이는가 보다.
나이, 직업, 인종에 따라 물론 다른 점도 있지만 브이로그를 보면 사람 사는 것은 다 비슷비슷하다는 것 또한 느낀다. 나이, 직업, 인종 불문 각자 다르면서도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 모습을 보면 사람은 다 똑같다. 다들 친구 만나고, 요리하고, 장보고, 자기 전에 열심히 스킨-로션-앰플 바르고 자는 모습까지 묘하게 닮아있다.
우린 서로 다르지만 닮은 구석이 있다.
III.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
나랑은 다른 사람의 삶을 보기 위해 유튜브를 보는가 하면 반대로 익숙함과 편안함을 찾아 브이로그 영상을 보는 경우도 있다. 이 유형을 약간 개 TV를 보는 강아지들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고 (어쩔 땐 잠도 오고). 어쩌면 킬링타임 하기엔 그저 무해한 요리 영상, 집 정리 영상이 딱이라는 생각도 든다.
실제로 브이로그 댓글에 보면 많이 보이는 류의 댓글에 '힐링'된다는 부류의 글이 많다. 왜 브이로그에서 힐링을 찾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브이로그는 대체로 잔잔한 일상을 보여주기 때문에 우리가 영상을 부담 없이 편안하게 소비할 수 있는 까닭 때문인 것 같다. 우리의 일상과 비슷한데 삶 속에서 느껴지는 어려움은 싹 뺀 편집본- 그런 구김살을 없앤 모습으로 편집된 일상을 보면 마음이 편안하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가 인기가 있었던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리틀 포레스트'에서 농사의 고됨은 싹 빠진 상태로 김태리가 배추를 키우고 요리하는 모습만 보여주니 이 영화는 우리의 귀촌 로망을 아주 잘 충족 시켜준다.
일상 브이로그도 삶의 어려움을 싹 뺀 삶이라는 환상을 심어주면 이 환상을 충족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브이로그를 시청하는 이유에 대해 한번 탐구해봤다. 글을 쓰다 보니 말이 너무 길어지는 것 같아서 유튜브 브이로그에 대한 나머지 고찰은 다음 편에 쓸 예정이다. 일상을 콘텐츠화 하는 것의 의미는 무엇이며 브이로그를 보는 구독자는 어떤 태도를 가지고 영상을 시청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가 일상 브이로그를 보는 이유 2편에서 계속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