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게 기르던 머리를 잘랐다. 결혼 후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대부분 머리를 묶고 지냈다. 머리를 묶는 것이 간편하기는 했지만 너무 오랜시간을 그렇게 하다보니 머리를 동여맨 부위가 아프기까지 했다. 긴 머리카락에 마치 지난 10년의 시간들이 고스란히 들어있기라도 한 듯 자르기를 주저했다. 그러나 무엇이든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그런 날이 있다. 온 세상이 나를 향해 단발을 종용했다. 미용사는 묶인 머리를 잡더니 정말 싹둑 잘라버렸다. 가볍다.
우리집 남자들은 대대로 긴 머리를 좋아한다. 짧아진 머리카락을 보고 남편은 눈꼬리를 가늘게 뜨며 “너무 짧은 거 아니냐”고 한마디 툭 던진다. 10여 년 전 긴 머리를 댕강 자르고 단발을 했을 때 9살이던 큰아이는 내게 머리를 다시 붙이고 오라면서 울었다. 이제 열아홉인 아들은 뭐라고 할까? 육아 때문에 길렀던 머리를 자르니 아이들이 어렸을 때가 떠오른다.
‘8년 전 오늘’이라면서 가끔씩 소환되어 오는 휴대폰 속 아이들의 사진은 나를 미소짓게 한다. 이럴 때도 있었지, ‘맞아, 이때 우리 아들 나랑 결혼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얼굴만 마주치면 싸우게 되네’, ‘막내가 이렇게 통통했었나? 볼에 여드름이 하나도 없구나.’ 한 장 한 장 넘겨보는 사진 속 귀염둥이들은 오늘 아침 싸우고 문을 ‘꽝’ 닫고 나간 아이들과는 다른 존재다. 사진 속 나는 부스스한 똥머리를 한 채로 빨래가 너저분한 거실에 배경으로 자리해 있다. 퇴근이 곧 출근이어서 힘들다는 말을 달고 살았는데 사진에는 그 시절 나름대로 결이 다른 분주한 행복이 배어나온다.
그 아이들이 자라 모두 중고등학생이 되었다. 이제 더 이상 빨래가 너저분한 거실은 없지만 그때와는 다른 파고가 휩쓸고 지나갈 때가 있다. 아이들은 시험 공부를 하며 긴장하고,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 친구 관계 때문에 속상해 한다. 자격증 시험에 떨어져 그 속상함을 화로 분출하기도 한다. 그들은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견고한 성처럼 자리잡은 감정들을 어찌 처리할지 몰라 흔들린다.
아이들에게 어떤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어릴 적 내가 들으면서 자랐던 노력하면 다 할 수 있다는 말은 이제 통하지 않는 것 같다. 노력해도 되지 않는 일 투성이고 인생은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일보다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이 개연성없이 일어나기도 한다. 다만 그 앞에 절망하고 주저앉지만 말고 세상에는 다른 길도 많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전투하듯이 생을 치러내는 것에도 즐거움이 있지만 계절이 바뀌면 길가의 풍경도 달라지는 것을 눈치챌 수 있도록 뭉근히 익어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