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후가 진짜 인생이다 - 결혼은 집안 대 집안의 결합
아이의 출산은 우리에게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을 주었지만, 그와 동시에 부부관계의 현실성이 더해지면서 서로 부딪히는 일이 많아졌고 이전과 달리 인간적으로 상대에게 실망하는 일이 많아졌다. 인간 자체에 대한 실망은 특정 사건에서 서로 맞지 않아 부딪히는 것과 질적으로 달랐고, 이런 사람과 평생 함께 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라는 물음에까지 이어졌다.
아이가 있기 전에도 우리는 치열하게 싸웠지만, 그때는 사람 자체에 대한 실망이라기보다는 우리를 둘러싼 상황 등 외부 요인에 탓을 돌릴 수 있었다. 맞지 않는 서로의 부모님의 성향이라든가, 경제적 상황이라든가...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지만 남편에 따르면 내가 "우리끼리는 싸울 일이 없는데"라고 말했다고 한다. 나는 연애 때부터 시작해 결혼 후 약 1~2년까지, 결론적으로 총 3년 정도까지는 남편은 단점이 없는 사람이고 우리 부부의 다툼의 원인의 대부분이 철이 안 든 내 탓이라고 여길만큼 남편의 인격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남편의 인격 자체에 대해 실망했고, 신뢰하지 않으며 아이 때문에 관계를 이어가는 사이라고 여긴다. 반대로 나만큼이나 남편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생각해볼 때, 원인은 여러 가지다.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물론 결정적인 것은 아이가 우리에게 생긴 일이다. 아이 자체가 문제는 당연히 아니다. 아이의 출산으로 양가 부모님과의 밀착성이 커졌고 그로 인한 서운함을 느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서운함으로 인해 서로에게 향하는 폭행적 언행은 상대의 집에서 연결고리를 찾게 된다. 남편이 싫으면 시아버지의 언행이, 아내가 싫으면 장모의 언행이 머리에서 맴돈다. 결혼은 역시 집안 대 집안의 결합이구나, 상대 집안을 잘 보고 결혼하라는 말이 괜한 게 아니다. 문제는 결혼 전에 상대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는 것,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결혼에 실패한다는 것이다.
양가 부모님과의 밀착성의 증대
친정 엄마가 아이를 봐주면서 남편과 갈등이 발생했다. 평소 나보다 남편이 일찍 퇴근하니 친정 엄마가 집안일이나 정리 정돈에 대한 지시를 남편에게 알게 모르게 하고 있었고, 남편은 이에 서운함을 느끼고 있었다. 가족 여행을 가서 대놓고 딸만 챙기고 딸 편만 드는 친정 엄마에게 남편은 결정적으로 폭발했다. 반대로 남편이 이런 친정 엄마에 대한 불만을 내게 말을 하면, 나는 남편이 '배은망덕'이라고 치부했다. 특히, 여행 사건에서 우리 엄마 앞에서 눈을 뒤집으며 화를 내고 나에게 함부로 하는 모습을 엄마에게 보인 것에 완전히 실망했다. 이 사람의 인격 자체에 대해 의심을 한 첫 계기였던 것 같다.
나와 시부모님의 관계는 아이가 있기 전에도 내가 전화를 자주 하지 않는 문제 때문에 트러블이 있었다. 하지만 남편도 "나도 장모님한데 자주 안 해" 하면서 내 방패가 되어줬고, 내가 시댁에 갔다 와서 불만이 있어 남편에게 얘기하면 남편이 바로 시부모님에게 얘기를 했기 때문에 시부모님들이 내게 직접적으로 잔소리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어찌 보면 이 때는 아이도 없었기 때문에 전화를 자주 해도 할 말도 없다는 것을 서로가 어느 정도 용인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태어난 후, 시부모님이 전화를 전보다 더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출산휴가 중에는 시간이 좀 있어서 전화한 지 1주일이 안 됐지만 또 전화를 하게 됐는데, "자주 좀 해라" 하면서 잔소리를 하시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내 몸 상태는 전혀 물어보지도 않고, 아이와 남편에 대해 물어봤고 또 뭐라고 했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어쨌든 화가 나서 "전화한 지 1주일도 안 됐어요. 그리고 저도 힘들어요."라고 얘기했던 것 같다. "그렇지. 너도 힘들지"이러시고 끊었는데. 나는 이 전화 이후 전화를 또 한동안 하지 않았다.
시댁은 가부장적이고 여성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편이다. 시어머니부터가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지 않고 살아왔고, 아들들은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체득했다. 어쨌든 이 전화에서 내가 몸조리를 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시댁에서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에 화가 났다. 친구나 지인들이 시부모님들이 출산했다고 뭐 해줬냐고 물어볼 때도 짜증이 났다. 언제부터 이런 것을 주기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다들 뭔가를 받았었는지 나한데 자꾸 물어보는 데, 애초에 시댁의 성향상 뭔가를 바라지도 않았거니와 자기 아들, 손주 걱정만 하는 시댁을 보며 이래서 역시 남이구나 싶었다.
물론 시부모 입장에서는 우리가 너무 자기들에게 신경을 안 쓴다고, 손주에 대해 궁금한데 연락도 없다고 서운해했을 수 있다. 아이가 백일이었지만 시아버지는 남편과 또 뭔가로 틀어졌는지 아이 백일 때 오지도 않았다. 남편은 자기가 잘못해서 그런 거라고 했지만 어쨌든 어이가 없었다. 결정적으로 시부모에게 등을 돌린 건 내 아이 돌잔치에는 1돈짜리 돌반지를 가져왔으면서, 같은 해 태어난 남자 손주에게는 2돈짜리 목걸이를 가져다준 일이었다. 내 주변 사람들에게 얘기했을 때 결혼한 사람들도, 여자고 남자고 다 "그건 정말 아니다"라고 혀를 내두른 일이다. 지인 중 한 남자 분은 "이제 그 집 제사 안 가도 되겠네. 여자라서 1돈 주고, 남자라고 2돈 준 걸로 밖에 안 보이는데" 이렇게 말하고 다른 사람들도 "같은 해에 태어났는데 어떻게 그래?" , "나중에 아이에게 말해. 네 할아버지가 그랬다고"라고 하는 등 다들 이해 못하겠다는 식이었다. 시아버지는 나중에 돈이 없어서 그랬다고 말했다는데, 몇 달 후 통장에 들어 있던 현금 1억 가까이를 보이스피싱으로 날렸다는 소리를 들었을 땐 또 이 사건이 생각났다. 돈이 없어서 그랬다고?
어쨌든 나는 그 날 너무 화가 나서 시어머니에게 울면서 화를 냈고, 그 이후부터 또 일절 연락을 안 했다. 어차피 이런 건 다 시아버지가 결정했을 일이기에 시어머니에게 풀 것도 아니었지만, 어쨌든 이 경험으로 나는 우리 아이를 더 똑 부러지게 키우겠다고 결심했고, 그전까지 카톡으로 보내던 아이 사진도 보내지 않았다. 남편도 이 당시에는 화가 났는지, 아님 내 심정을 이해했는지, 내가 "전화도 안 한다, 사진도 안 보낸다, 생신도 안 챙긴다"라고 말했을 때도 그렇게 하라더니, 지금은 내가 잘 안 챙긴다며 나를 원망한다. "너 때문에 내가 천륜을 어기고 있다"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아이가 생기면서 양가 부모님과 우리 부부 간에는 서로 간에 기대하는 것이 전보다 커졌고, 그것이 충족되지 못함으로 인해 더 큰 실망을 하게 된 것이다. 어떻게 "내 딸한데 그럴 수 있지?", "친할아버지가 손주한데 저럴 수가 있지?" "며느리가 어떻게 저래?" 라는 식으로 말이다.
가풍의 충돌
나는 남편이 나를 무시하고, 남편은 내가 자기를 무시한다고 생각한다. 어찌 됐건 이제 남편은 장모님을, 나는 시부모님을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하지 않으니 하는 언행 하나하나가 다 맘에 안 들고, 남편은 내게서 장모님의 모습을, 나는 남편에게서 시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이래서 "가정교육이 중요해"라는 생각을 각자의 머릿속에 넣고 산다.
이제 남편은 사업을 시작하면서 시아버지처럼, 시동생처럼 행동한다. 그 집 남자들의 생각은 밖에서 일하는 사람이 충분히 대접받아야 하며, 안에 있는 사람은 좀 더 편하게 집에 있으니 집안일을 일체 챙겨야 하고 잘 못했을 것우 지적받는 것이 당연하며 밖에서 일하는 사람에 비해 무능하고 보조적이다, 언제든 대체 가능하며 이 집의 재산에 대한 일체의 권한은 없지만 의무는 많다. 이 때문에 자기 아내에게 함부로 말하고, 아이 앞에서 엄마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사사건건 간섭하고, 밥상에서 맛있다 고생했다는 얘기보다는 성의가 없네 맛이 없네 하며 투덜대고, 네가 잘하는 건 뭐냐, 네가 그럼 그렇지 라는 식으로 사람을 전체적으로 깍아내린다. 직장생활 관련해서도 이러면서 어떻게 회사를 다녔냐는 식으로 무시를 한다. 잘한 부분을 인정해주기보다 못한 부분을 기여코 찾아내서 또 지적한다. 잘 되면 자기 덕분이고, 잘 안 되면 아내 탓이다. 또한, 결론적으로 아내는 이 집에서 나가면 그만인 사람이다, 본인은 독박 벌이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일을 하고 있고, 나는 집에서 애를 보고 있기 때문에 일을 안 한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친정은 여자가 남자보다 발언권이 센 집이었고, 이 때문에 남편은 아내인 나에게 서방 잡아먹을 여자라고 말한다. 이 말이 친정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신 우리집 입장에서는 굉장히 예민할 수 있는 발언이라는 것을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르지 않을 터다. 남편은 내가 자신을 외롭게 만든다고 말한다. 외롭게 일을 하고 있는데, 가정이 따뜻한 보금자리가 되어 주지 못한다고 한다. 가정에서 위안을 얻을 수 없다고 한다. 내가 화를 자주 내고 남편을 무시하기 때문에 자기도 화가 나서 자꾸 심통 나게 행동한다고 말한다. 남편이 힘들 게 일하고 있으니, 아내는 남편이 하는 쓰레기 같은 인격모독 발언에도 참아야 한다는 것인지, 당최 알 수가 없다.
남편은 물론 외롭게 창업을 시작했고, 가장의 무게 때문에 쉬고 싶어도 쉴 수 없는, 실패해선 안 된다는 중압감에 시달리고 있다. 나도 이를 모르는 바가 아니기 때문에 남편의 비정상적인 언행도 한두 번은 참아 넘기려고 노력하지만,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인 줄 아는지라 결국 또 폭발한다. 처음엔 비정상적인 언행이나 쉽게 서운해하는 성향은 일시적인 것일 거라고, 지금 외롭기 때문에 별 것 아닌 일에 더 서운할 것이란 생각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것을 일시적인 게 아니라, 이 사람에게 원래 내재되어 있던 성향이라는 것을 점차 느끼게 됐다. 그러한데 그러면서 우리는 안 맞는 사람들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미치고 서로에게 원망을 품고 살고 있겠구나 싶었다. 이런 관계를 과연 유지해야 할 것인가란 고민을 자주 하는 이유다.
얼마 전 남편이 내게 "오피스텔을 찾아 나갈 것"이라는 말을 했다. 전에만 해도 "말도 안 돼"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잘 지낼 때는 남편이 집에 늦게 오면 잘을 잘 이루지 못하던 나였다. 물론 지금은 잘 자고, 방도 따로 쓰고 싶을 정도이기 때문에 '오피스텔에 나갈 날'이 정말 오기를 기다리는 나이다. 어차피 지금도 맨날 늦게 들어와서 육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나로선 전과 다를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