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차 PO의 이직 연대기
몇 년 전, 국내 대기업에서 면접 제의가 온 적이 있었다. 사실 이땐 이직할 생각이 별로 없어서인지 면접을 볼지, 말지 여러 차례 고민하다 결국 면접을 보러 갔다. 면접 초반엔 프로젝트에 대한 질문을 많이 했다. 그리고 나머지 2-30분은 이직한 이유에 대해 세세히 물어보기 시작했다.
'이전 직장은 왜 퇴사하셨어요?'
'전전 직장은요?'
'전전전 직장은요?'
'ㅇㅇ회사에선 왜 퇴사하셨어요?'
그 당시 이직을 했다면, 면접 보는 회사는 다섯 번째 옮기는 회사였고 면접 볼 당시까진 네 번을 옮긴 상태였다. 나이가 지긋한 분들은 이직을 많이 한 사람을 '또 나갈지 모르는 애', '회사에 충성을 하지 않는 애', '배신자' 등의 프레임을 씌워 좋지 않게 봤다. 면접관은 나이가 크게 많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대기업에 계시다 보니 오래 다닐 수 있는 사람을 뽑기 위해 그동안 재직했던 회사에서의 퇴직사유를 세세하게 물었던 것 같다.
나는 하나하나 다 답변했다. 어떤 회사는 왜 퇴사했고, 왜 이직을 결심했는지.
그러자 면접관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퇴직 사유가 이해가 잘 안 가는데요. 꼭 이직을 했어야 하는 상황이었나요? 재직 중인 회사에서 해결해 볼 수 없었나요?" 반은 맞는 말이고 반은 틀린 말이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속담이 있는데, 이 속담이 왜 생겼을까? 집단을 바꾸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나 또한 내가 노력해서 그 집단을 바꿀 자신도 없었고, 내 리소스를 굳이 쓰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내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선택을 했던 것뿐이었다.
면접이 끝나고, 곧이어 면접에 합격했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그 회사엔 가지 않았다.
60분이라는 시간 중 절반의 시간 동안 이직 사유만 묻는 게 과연 좋은 인재를 가려내기에 적합한 시간 분배인지에 대한 생각이 들어 면접 경험이 부정적이었기 때문이다.
몇 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 사이에 또 여러 번의 이직을 했다. 그리고 이제 누군가 '왜 이직하셨어요?'라고 묻는다면 정리해서 말해야 할 정도로 재직했던 회사도 많고 까마득해서 이 글을 통해 당시를 회상하며 이직했던 이유를 정리해보려고 한다.
주도적인 기획자로 성장하고 싶어서
첫 회사는 스타트업이었다. 개발 인턴을 하다가 기획 오퍼를 받고 기획자로 전향해 기획 일을 처음으로 하게 해 준 나의 첫 회사. 내 재능을 발견해 주시고 기획으로의 오퍼를 주신점도 감사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 기획자에 따로 사수도 없어서 어깨너머로 일을 배우고 기획서를 썼다. 모르는 건 다 대표님한테 가서 직접 물어보며 기획했다. 그렇게 1년을 매일 같이 야근하며 기획 일을 배우다 '다른 기획자는 어떻게 일하는지, 어떻게 해야 기획을 잘한다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대기업에서 과장님으로 기획 일을 일하시던 대표님의 와이프가 잠시 휴직하고 회사를 도와주러 오신다고 했다. 여기서도 호칭은 과장님으로 불렸고 과장님이 쓰시는 기획안, PT 하는 법, 일하는 법 등을 빠르게 배우고 익혀나갔다. '와! 일 정말 잘하신다. 일은 이렇게 하는구나'라는 게 느껴질 정도로 꼼꼼하고 속도감 있게 업무를 착착 진행하셨다. 어느새 그 과장님을 추앙하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과장님이 가르쳐주는 걸 감사히 여기며 다 흡수해 나갔다. 그렇게 한창 성장의 즐거움에 빠져있는데, 과장님이 이제 재직 중인 회사에 복귀하셔야 한다고 하셨다. 이때부터 고민이 됐다. '과장님이 안 계시면 이제 누구한테 배우지?'
과장님이 떠나고 회사에 대한 내 마음도 점점 떠났다. 회사의 상황도 나날이 나빠졌다. 이렇게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여기서 시간을 보낼 바에 선배, 동료 기획자들이 많이 모여있는 곳으로 가서 업무를 배우고 성장하고 싶다는 열망이 컸다. 그리고 무작정 퇴사를 했다. 이직할 회사도 구하지 않고,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채로 퇴사 먼저 해버린 용기는 20대 초반의 주니어여서 가능했으리라. 퇴사 후 나는 토익학원을 다니고, 컴활 자격증을 따고 이것저것 준비했다. 그리고 몇 개월 뒤 2-300명 규모의 에이전시에 입사하게 됐다.
에이전시에 입사하고 제일 좋았던 건 '선배, 동료 기획자'들이 팀으로 모여서 함께 일할 수 있는 것이었다.
첫 회사에는 선배 기획자가 없어서 어떤 게 잘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등의 고민이 많이 들었는데 이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는 모르는 것은 동료들과 선배들에게 물어보며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운영기획부터 이벤트 기획, 서비스 기획, 구축 등의 업무를 진행하는데 뭐 하나 재미없는 것이 없었다. 비슷한 또래도 많아 고민이 있으면 함께 나누고 소통할 수 있었다.
에이전시라 갑과 을의 관계가 자연스레 형성되었는데, 아무래도 우리는 돈을 받고 업무를 처리해주다 보니 갑의 회사가 해달라는 대로 해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내부 데이터도 볼 수 없었고 오직 제작된 사이트에 대한 통계 정도만 볼 수 있었다. 업무를 주도해서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냥 시키는 대로 해달라는 대로 기획안을 써서 컨펌받는 식의 업무가 이어졌다. 그러자 또 다른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내가 주도적으로 업무를 하고 싶어! 누가 시키는 일 말고!'
그러기 위해선 인하우스 기획자로 가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도메인이 무엇인지, 어떤 도메인을 할 때 즐거웠는지 알 수 있었다.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다음 회사를 고르고 면접을 보고 입사를 확정하게 되었다. 바로 이곳이 이전 글에도 여러 번 언급했던 최악의 패션회사인 것이다.
미친 사람들에게 질려서...
브랜드를 취급하는 패션 회사의 인하우스 기획자로 오게 되었다. 나는 이곳에 입사한 첫날부터 퇴사하고 싶었다. 이직의 실패를 정의한다면 이 회사의 명만 대면될 것 같다.
퇴사하고 싶었던 이유는 얼마 전에 작성한 '입사 후 일주일, 퇴사하겠다고 했다.'를 보면 단박에 알 수 있지만 그래도 짧게 언급하고 넘어가려고 한다. 이 글은 나의 이직 연대기이기 때문에...
이전까지만 해도 연봉과 복지, 일의 재미는 나에게 꽤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이직 사유였다. 근데 이 회사에 입사하고 난 이후에는 내 생각은 완전히 바뀌게 된다. '사람' '인간관계'가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가끔 뉴스에 회사 업무로 인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데, 나는 그럴 때마다 이 회사에 재직했던 시절이 떠올랐다. 너무 힘들어 모든 게 칠흑 같았던 그 시절..
이 회사를 퇴사한 이유는 100% 사람이었다. 직장에서의 인간관계가 내 삶 전체를 피폐하게 만들었다.
점점 예민해져 가는 나의 모습이 싫었고, 그들과 같은 물이 들어간다는 것도 소름 끼쳤다.
'내가 계속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람에게 데이며 괜찮은 척하고 1년 넘는 시간을 견뎠지만 더 이상 안 되겠다고 판단했을 때 퇴사를 결심했다. 이땐 다음회사로 어떤 회사도 가고 싶다는 마음이 안 들었지만 내가 존경하던 팀장님의 설득으로 조금 더 큰 규모에 '내가 잘할 수 있는 커머스'로 가기로 결정했다.
바뀌지 않는 상황과 정체되어 있는 시간을 견딜 수 없어서
약 2천 명 정도 되는 큰 회사에 서비스 기획자로 입사했다. 이땐 자신감과 자존감이 바닥이라 이 회사에 입사한 것 자체가 그냥 너무 감사했다. 입사 후 왜 뽑았는지 물어보자 일에 대한 열정과 절박함이 느껴져 채용했다고 하셨다. 이 회사에 가장 오래 다녔다. 재직했던 회사는 보통 2년~3년 정도 다녔는데 이 회사는 4년 가까이 다녔으니 나와도 잘 맞았던 곳이 아니었을까 싶다. 처음엔 '잘 안 맞는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몇 개월 지나 적응하고 나니 이런 감정도 사라지고 실력도 점차 늘어갔다. 매일매일 문서를 쓰면서도 스스로 느껴졌다. '내가 정말 많이 성장하고 있구나!' 그리고 일을 잘하는 선배도 우리 팀에 있었고 보고 배울만한 자료와 기획안도 많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너무 착하고 순한 느낌이 들었다. (아마 전회사의 영향으로 사람의 도리만 하면 선해보였겠지만)
2년 정도 커머스 업무를 신나게 하는데,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말이 들려왔다.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난다는 것. 심지어 그동안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도메인이었다. 해외 출장 중에 들어서 더 정신이 없었던 것 같다. 출장에서 돌아오자마자 리더는 나를 불러 면담했다.
"ㅇㅇ아, 너 낼모레 이 부서로 나랑 같이 발령 날 거야"
"왜요?"
"발령 날 부서가 기획이 좀 약해서, 우리 부서에서 잘하는 애들 데리고 가서 기획 퀄리티 좀 높이기로 했어."
"근데 저 그 도메인 해본 적 없는데.."
"괜찮아, 잘할 수 있잖아. 잘해보자"
"(얼떨결) 앗... 넵.."
그렇게 얼떨결에 나는 잘하는 애 중 한 명이 되어 전혀 다른 도메인에 대규모 프로젝트를 리딩하는 업무를 맡게 된다. 대규모 프로젝트는 1년이 넘게 지속되었고 개발은 더뎠다. 개발 중에 스펙은 계속해서 추가되었고 개발 일정은 점점 더 늘어났다. 2년 정도 똑같은 프로젝트를 잡고 있으니 지루하고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시장은 이렇게 빨리 변하는데, 우리는 왜 1년 전 기획을 아직도 시장에 선보이지 못했지?'
'이러다 오픈을 아예 못할 것 같은데? 나 물경력되는 거 아니야?'라는 불안감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리더와 여러 번의 면담을 하고,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들을 했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300페이지가 넘는 똑같은 기획안을 이해관계자들과 메이커들에게 40번이 넘게 리뷰했다. 신규 입사자가 들어오면 또 리뷰했다.
결국 나는 이 상황이 너무 지치고 견디기 힘들어 퇴사를 결정했다. '다음 회사는 열정러들이 많은 빠른 회사에 가야지!' 하는 마음으로.
작은 도메인 하나보다, 전체의 서비스를 담당해보고 싶어서
빅테크 기업에 PO 직무로 이직했다. 알아보니 일잘러들이 속도감 있게 일을 착착 진행하는 곳이라고 하여 기대를 안고 입사했다. 여기는 서류에서도 7년 차 이상만 뽑는다고 적혀있어서 연차가 다 높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더 높은 연차의 PO분들이 팀에 꽤 많이 계셨다. 사업을 하시다 잘 안 돼서 접고 오신 분, C레벨을 하다 오신 분 등등. 입사 첫날 점심 먹을 때부터 앞으로 내가 담당하게 될 업무가 무엇인지 듣고 당일부터 어떤 회의든 같이 다니며 설명을 듣기 시작했다. PO가 어떻게 일하는 지도 생소했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팀 내 PO분들의 문서를 최대한 많이 보고 일하는 방식을 보며 많이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이 훅 지나가버렸다. 약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업무를 하며 데이터도 많이보고, 쿼리도 스스로 짤 수 있게 되었고, SQLD 자격증도 취득했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ABT도 해보고 로드맵도 짜고 전략이나 방향에 대해서도 고민하며 업무를 했다. 틈틈이 강의도 듣고 세미나도 다니며 실력을 키우는데 집중했다. 뛰어난 동료들과 함께 일하는 게 즐겁고 행복했다.
그러다 조직개편이 되고, 리더가 퇴사하고, 팀에 인력이 추가로 충원됐다. 또, 이런저런 이유로 잘하시는 분들이 다른 기업으로 많이 떠나갔다. 마음을 다잡고 업무를 해내가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작은 도메인 하나 말고, 전체 서비스의 퍼널을 보고 서비스를 기획해 보는 일이 더 신나지 않을까?'
지금까지는 하나의 프로젝트, 일부 도메인을 담당하는 PO, PM이었다면 전반적인 서비스를 담당하며 서비스 전체의 성장에 크게 기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타트업으로 갈지, 아니면 큰 기업에 신사업으로 갈지 고민하다 시장이 좋지 않아서 스타트업은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대기업에 신사업 PO로 이직을 하게 됐다.
왕복 4시간 거리로 사업장이 이전해서
신사업 PO로 하나의 서비스를 온전히 담당하게 됐다. 서비스의 방향성부터 전략, 로드맵까지 다 고민해 볼 수 있었고 그로스그룹, 사업그룹과 커뮤니케이션하며 서비스를 성장시키는데 집중했다. 그동안 해보지 못했던 주문서나 쿠폰에 대한 작업도 해볼 수 있었고 퍼널별 사용 패턴을 확인하고 개선하는 작업, 서비스 전체의 미션과 비전을 정의하는 업무들도 해볼 수 있었다. 작은 조직이라 하나의 목표나 방향성을 잡고 함께 달리면 훨씬 더 크게 성장시킬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었지만 생각대로 잘 되지 않았다.
그로스와 사업그룹 각각이 원하는 방향과 프로덕트그룹이 원하는 방향이 잘 맞지 않았다. 톱니바퀴처럼 딱 맞아서 굴러가는 느낌이라기보다는 3개의 톱니바퀴가 각각 굴러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할지에 대한 고민도 들었다. 이러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방향으로 고군분투했지만 생각보다 문제의 해결은 쉽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점점 무력감도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게 맞아?'
'나에게 이런 책임과 권한이 있는 걸까?'
'이 방향이 맞는 걸까? 맞다는 확신이 안 들 땐 어떻게 해야 하지?' 등에 대한 고민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같은 고민을 가진 동료 PO와 끊임없이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팀을 운영하면 좋을지, 어떤 식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할지, 커뮤니케이션은 어떻게 하면 좋은지를 이야기해가며 서비스를 성장시키는데 집중했다. 서비스가 점점 성장해 가는 게 즐겁고 설렜지만, 한편으로는 해결하지 못한 문제에 대한 찜찜함도 있었다. 다 같이 한 방향을 보면 더 빠르고 크게 성장할 텐데...
이런 고민을 안고 있을 때쯤, 회사가 편도 2시간이 넘는 곳으로 이전을 했다. 그리고 풀재택이 폐지되었다. 사업장 이전에 재택까지 폐지되니 편도 2시간이 넘는 거리를 다닐 엄두가 나지 않았다. 물론 매일 오피스로 출근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부담이 됐다. 그리고 두 달 정도 왕복 4시간 거리의 회사를 다녀보니 삶의 질이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5시 퇴근해서 집에 오면 7시가 조금 넘었다. 통근버스도 원하는 시간에 무조건 탈 수 있는 게 아니었고 버스를 타지 않으면 4번의 환승을 해야 했다. 대중교통을 4번 환승하면서 무언가를 하기란 쉽지 않았다. 길에 버리는 시간이 아까워 책도 읽고, 팟캐스트도 들어보며 그 시간을 효율적으로 써보려고 했지만 사람에 치이고 환승하는데 신경이 쓰여 뭐 하나 제대로 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바로 이전 직장을 퇴사했다.
6개의 직장에 각기 다른 이유로 헤어짐을 이야기했다. 마지막 회사는 아직 성장시켜 볼 기회를 갖고 있는 서비스고, 전체 도메인을 다뤄볼 수 있는 점에서 매력적이라 사업장 이전만 아니었다면 좀 더 길게 다닐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 아쉬운 마음이 크지만 상황상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가끔 전 직장 동료, 친구들을 만나 지금 어디에 다니고 있다고 말하면 또 이직했냐고 묻는다. 하긴, 주변을 둘러보면 나만큼 많은 변화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사실 다니던 회사에 쭉 다니는 게 생각할 일도 적고, 몸도 편하고 좋다는 건 나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성향 자체가 가만히 못 있고, 뭔가에 도전하고, 성취하고, 배우는 걸 좋아해서 한 직장에서 익숙해진 업무를 반복해서 하는 일이 견디기 어려웠다. 물론 같은 직장에 오래 다녔다고 해서 매번 같은 업무를 반복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나는 계속해서 성장하는 느낌이 들지 않으면 정체되어 있는 그 기분을 떨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계속 새로운 곳에 가서 도전하고, 성취하려고 했다.
한 직장에 오래 다닌 사람, 여러 직장에 많이 다닌 사람 각각 장단점이 명확히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동안의 나는 성장에 목말라 도전하기에 바빴다면 이제는 진득하게 하나의 서비스를 깊게 파고 성장시키며 오랫동안 서비스의 성장을 보는데 집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생각대로만 된다면 난 한 회사에 오래 다닌 사람의 장점까지 가질 수 있으니 깊고, 넓은 시야를 가진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