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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ily Aug 16. 2024

회사가 무너질 조짐을 보인다면

무너져 가는 회사에서 느꼈던 조짐들, 그리고 내가 내린 결정에 대해

최근 좋지 않은 경기로 커머스 업계를 포함해 여러 기업이 위험에 처해있거나, 사업을 접고 있다. 


한때는 잘 나가던 커머스들이 어쩌다 자본잠식 사태에 빠지고, 기업 가치가 폭락한 채 타 기업이나 사모펀드에 인수되고, '희망퇴직', '서비스 종료'등 좋지 않은 기사가 나오는 것을 보니 참 씁쓸하다. 이전에 내가 다녔던 회사 중 몇 개도 상황이 좋지 않아 어떤 회사는 다른 기업에 인수되고, 또 어떤 회사는 경영악화로 결국 문을 닫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때는 정말 잘 나갔던 회사여서 이렇게 될 거라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문득 잘 나가던 회사에서 퇴사를 이야기했을 때 다른 팀 리더가 술자리에서 나를 두고 했다는 말이 떠올랐다. 


"회사에서 잘한다 잘한다 하고, 인정해주는데 왜 나간대?
뭐 얼마나 좋은 데를 갈라고? 다른데 가면 여기서처럼 인정받을 수 있고?"


전해 들었던 터라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위와 같은 뉘앙스로 비꼬듯 이야기했다는 것을 전해 들으니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리더 직책을 달고 뒤에서 저렇게 말하는 것도 별론데 재밌는 건 저분은 나와 한 번도 일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 내 앞에선 젠틀한 척하더니 뒤에서 비아냥 거리는 게 어이가 없었다. 이 말을 듣고 나니 다음 회사 가서도 꼭 인정받아야겠다고 다짐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나오고 반년쯤 지났을까? 한참 새로운 회사에서 일이 손에 익어갈 때쯤 그 회사의 사정이 좋지 않아 규모가 비슷한 경쟁사에 매각될 것 같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몇 개월 뒤 실제로 그렇게 됐다. 기업의 구조를 굳이 갑, 을, 병으로 따진다면 재직했던 회사는 경쟁자였던 갑에게 인수되었고 인수 후 얼마뒤 을에 있던 임원과 리더들을 모두 교체했다. 


내가 퇴사할 때에도 회사 상황은 썩 좋지 않았다. 거래액은 계속 떨어졌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안일했다.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때 대체로 하기 싫어하는 분위기여서 '일'을 진행하기 힘들고 더뎠다. 회사에서 인정받던 소위 '고급인력'들의 줄퇴사가 이어졌다. 회사의 전략이나 미래가 잘 그려지지 않았고, 공유되지도 않았다. 업무를 할 때는 '왜 이 프로젝트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배경 설명 없이 위에서 시키는 대로 내리꽂았다. 이 일을 '왜' 해야 하냐고 물으면 '그냥 위에서 하라면 해'라는 리더의 답을 듣고 동기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업무를 진행해야 했다. 


재직 기간이 길어질수록 커져갔던 불안감

몇 년간 다녔는데, 재직 기간이 길어질수록 이 회사에서의 내 미래, 다음 커리어가 그려지지 않았다. 경쟁사는 점점 많아지고 경쟁력도 점차 떨어지면서 고객들의 발길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한 번에 뚝 끊기는 게 아니고 점점 하향하는 추세를 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와중에 지금 시장에 고객들이 원하는 서비스를 출시할 건데, 그 서비스 전체를 기획하고 리딩하는데 투입되었다. 처음에 들었을 땐 좋은 기회인 것 같았고, 모르는 것을 새롭게 배워가는 것, 어려운 문제를 풀어가는 것에 희열을 느꼈던 나는 1년 넘게 그 프로젝트에 매진했다. 보통 그동안 진행했던 프로젝트 중에 길게 했다 생각되는 것도 6개월 이하였는데, 하나의 프로젝트를 1년 넘게 오픈도 못하고 계속 기획 수정, 개발, 기획 수정, 개발만 반복하다 보니 점점 답답해졌다. 


기획 수정도 꼭 필요한 기획수정이 아닌, 만들다가 타사에서 새로운 기능이나 '좋아 보이는 기술'이 나오면 갑자기 스펙 추가가 되었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과 소비자에 대응하기 위해선 MVP로 빠르게 출시하고 선보이고, 고객의 피드백을 받아 고도화해나가야 이 프로젝트가 성공할 가능성이라도 볼 수 있는데, 오픈은 하지도 못한 채 계속해서 스펙 추가가 되었다. 이렇게 1년 반동안 많은 인력이 이 프로젝트를 붙들고 있었다.


여기 있는 게 내 커리어에 도움이 될까?

최초 시장분석부터 콘셉트, 전략까지 내 손으로 만든 것이고 1년 반 동안 수백 번도 더 보고 고친 내 기획안. 내가 만든 프로젝트의 오픈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자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회사에서 이렇게 1년 반 동안 오픈도 못한 프로젝트를 잡고 있는 나를 뽑아줄까? 내가 다른 구직자들과 비교했을 때 경쟁력이 있을까?라는 생각에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해졌다. 마음을 꾹 누르고 '조금만 있으면 오픈하겠지.. 몇 주만 더..' 하는 사이에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약 2년이라는 시간에 가까워지자 '안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프로젝트 오픈은 '이 회사 재직 중엔 못 볼 것 같다. 그리고 여기 더 있다간 내 커리어가 무너질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리고 여러 기업에 지원서를 넣고 면접을 봤는데 아니나 다를까 몇 년 새 기업에서 요구하는 역량은 더 높아져있었고, 면접은 생각보다 더 어려웠다. 프로젝트에 빠져있던 2년간 나와 이 회사 빼고 외부 환경과 기업은 많이 달라져있었고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연차대비 크게 매력 있는 지원자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을 깨달은 즉시 내가 어떤 부분이 부족하고, 어떤 부분을 보완해야 하는지, 그리고 뭘 배워야 하는지 등을 빠르게 리스트업 했다. 그리고 이미 작성해 두었던 이력서와 경력기술서, 포트폴리오 전체를 재정비했고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뜯어고쳤다. 면접을 볼 때는 철저하게 준비하고 내가 잘하는 점과 부족한 점을 솔직히 이야기했다. 


그렇게 다른 기업에 원하던 직무에 최종합격 하게 됐고, 나는 재직 중인 회사에 퇴사를 이야기했다.

약 4년이라는 시간 동안 함께 일했던 리더에게 '퇴사하겠다'이야기하자 '배신'이라고 했다. 그래서 2년 동안 같은 프로젝트의 기획안을 수십 번 수정하고, 리뷰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오픈하지 못했다면 그건 회사가 배신한 것 아니냐고, 언제 오픈할지 모르는 프로젝트만 보고 있는 게 맞냐고 반문하자 아무 말씀 없으셨다. 어떻게 2년간 오픈하지도 못한 프로젝트만 보며 달려온 내게 배신이란 말을 꺼낼 수 있었을까. 끝까지 이기적이라는 생각에 분노와 배신감이 밀려왔다. 그리고 뒤이어 이어지는 질문 '연봉 인상하고 스톡 주면 남을래?' 

'아 괜히 기다렸다. 퇴사한다고 더 일찍 말할걸...' 하는 생각과 함께 면담이 끝났고, 곧 나는 새로운 회사로 이직을 했다. 


재직할 때 '회사가 망하고 있다, 또는 망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 없지만 '더 이상 성장하기는 어렵겠다'라는 생각은
꽤나 자주 했다.  


그 기업은 아래와 같은 특징을 갖고 있었다.

물론 아래와 같은 특징을 지닌 기업이라고 모두가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피벗을 하거나, 새로운 전략을 세우거나, 리스트 헷징을 잘한다면 위기의 상황을 충분히 타개할 수 있을 것이다. 

아래 특징은 내가 재직했던 회사 중 경영악화를 문을 닫거나, 타 기업에 매각된 회사의 공통점들이니 참고하길 바란다. 

1. 경쟁사(1위, 2위)가 하지 않은 서비스는 먼저 시작하려고 하지 않는다. 
2. 차별화를 주기보단 팔로어에 만족한다.
3. 바텀업보다 탑다운이 강하고 실무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4. 일을 '왜'해야 하는지 누구도 설명해주지 않고, 일을 하는 이들도 대체로 궁금해하지 않는다.
5. 누구든, 어떤 일이든 일 벌이는 걸 싫어한다. 
6. 잘 되든, 잘 되지 않든 현 상황에 안주하고 안정만을 추구한다. 
7. 신기술, 신기능을 말하지만, 도입의 목적과 전략은 부재하다.



마치며 

한 때 내가 재직했던 회사의 흥망성쇠를 가까이서 지켜보며 소식을 들으니 마음도 안 좋고 씁쓸했지만, 빠르게 퇴사를 결정한 것은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그때 안주해서 그 회사에 계속 재직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지금 '회사가 무너지는 것 같아, 이직을 고민 중'이라면 아래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고, '아니요'에 해당되는 게 많다면 이직을 결정하는 것을 추천한다.


1. 현 직장에서의 경력이 내 커리어패스에 도움 되는 경력인지?

2. 시장에서 요구하는 역량을 쌓을 수 있는 환경인지? 

3. 회사가 성장하고 있는지? 

4. 회사에 전략이 있는지? 

5. 회사에 인재 밀도가 높은지?

6. 회사 주요 인력이 이탈하지 않고 잘 유지되고 있는지?

7. 회사가 프로젝트 또는 '될만한 것'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는지? 

8. 회사 대표, 임원들이 회사를 성장시키려는 열정이 있는지? 


회사가 무너질 조짐이 보이면 빠르게 결단하고 움직여야 같이 무너지지 않는다.(**물론 무너질 조짐이 보였다고 해서 모든 회사가 무너지진 않지만..) 그 당시 나는 회사의 재무제표를 보지도, 실제 회사가 어떤 상태인지도 잘 알지 못했지만 '내 커리어에 분명 도움 되진 않는다'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 이직을 결심했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잘 생각해 보고 빠르게 결정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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