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차 PM이 느낀 '잘 안 굴러가는 조직'이 가진 6가지 특징
평소에 TV 프로그램은 잘 보지 않는데, 여기저기서 워낙 재밌다고 핫해서 ‘흑백요리사’ 예능을 보기 시작했다. 큰 기대감 없이 1화를 틀었는데 이게 웬걸? 너무 재밌어서 1화부터 10화까지 정주행 하고 말았다. 특히 나에게 재미있는 요소로 다가온 것은 ‘요리에 미쳐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의 눈빛과 노력의 흔적, 여전히 갖고 있는 열정이었다. 흑수저는 아직 유명하지 않은 요리사들이고 백수저는 이미 요리로 내로라하는 유명한 요리사들이었는데, 흑수저와 백수저 요리사들 모두 눈빛에 열정이 담겨 있었다.
보면서 나도 같이 심장이 뛰었다. 요리를 오래 했고, 이미 정상의 자리에 올랐음에도 새로운 무언가에 도전하러 나온 요리대가들. TV 화면을 뚫고 나오는 그들의 열정에 얼마 전까지 직무는 '이쯤 하면 되지 않나'라고 생각했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또 한편으로는 ‘그래 더 해보자’며 직무에 대한 열정이 뿜뿜 하기도 했다.
매 회차가 인상 깊었는데, 그중 ‘조직’에 대한 생각을 가장 많이 하게 한 회차는 6회 차의 흑백 팀전이었다.
이 회차에서는 백수저와 흑수저가 각각 생선과 육류로 주 메뉴를 결정하고 팀으로 요리를 하는 내용이 담겨있었는데, 이 부분에서 리더가 팀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내가 그동안 경험했던 조직과 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특히 정말 잘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던 백수저팀을 보며 '리더에 역량에 따라 팀 내 잘하는 사람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역량을 제대로 펼치지 못할 수 있구나. 사기를 잃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는데 회사에서도 보이는 이러한 조직이 가진 특징 6가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조직에서 방향성을 어떻게 가져갈지 정하는 건 정말 중요하다. 우리가 어떤 서비스를 메인으로 가져갈 것이고, 이 서비스를 어디까지 성장시킬지에 대한 충분한 고민과 논의가 된 후 방향성을 설정하는 게 좋다. 이 과정에서 팀원들과 함께 논의를 나누는 것이 가장 베스트겠지만 그게 어려운 조직이라면 상위 레벨에서 우리 조직의 방향성은 무엇이다라는 정의를 내려주어야 업무를 할 때 혼란스럽지 않다.
Good
"우리는 A서비스뿐만 아닌 A 서비스와 함께 이용할 수 있는 B, C, D 서비스까지 이용할 수 있게 확장하여 슈퍼앱을 만들겠다."
어떤 서비스를 추가로 확장하여 앞으로 어떤 앱을 만들 것인지에 대한 방향성이 명확하게 보인다.
Bad
"A서비스는 우리가 잘하고 있는 분야이니 이대로 잘하면 되고, 이 외 도움 될만한 다른 서비스도 같이 붙여서 성장시켜 보자." 도움 될만한 다른 서비스도 붙인다는 것과, 성장시킨다는 것 모두 추상적이라 A서비스와 더불어 어떤 서비스를 확장할 것인지, 어떻게 성장시킬 것인지 그려지지 않는다.
A 도메인을 전문적으로 한 PM과 B 도메인을 전문적으로 한 PM이 있다. 그리고 우리 서비스엔 A와 B 도메인을 모두 갖고 있다. 그렇다면 기존에 이미 몇 년간 도메인 경험이 있는 PM에게 각 도메인을 맡기는 것이 안전하고, 경험을 기반으로 성장도 잘 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근데 이때 어떤 업무가 급하다는 이유만으로 상대적으로 일이 적은 B 도메인 PM에게 A 도메인을 담당해 달라고 요청한다. 물론 경력이 있는 PM이라면 도메인 상관없이 대체로 잘 해내겠지만 팀 내 전문가가 있음에도 급하다는 이유로 이런 식으로 업무 배분하는 것을 옳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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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도메인 업무 배분 시, 그 도메인 지식이 있는 PM에게 연관 도메인을 배분한다. 팀 내 도메인 경험이 없는 PM 뿐이라면 면담을 통해 도메인 연관성이 있거나 의지가 있는 PM에게 적절히 업무를 배분한다.
Bad
특정 도메인 경험이 없는 PM에게 급하다는 이유로 아무 도메인이나 배분한다.
예를 들어 CX PM에게 플랫폼 PM이 담당해야 하는 업무 배분, 쿠폰 백엔드 PM에게 검색 업무 배분. (인력 채용 시 괜히 JD에 특정 도메인 경험을 기재해 놓는 게 아닌데...)
업무 지시가 불명확한 지, 아니면 내가 이해를 못 하는 건지 주니어나 미들급일 때는 구분을 잘 못할 수 있다. 경력이 어느 정도 쌓이니 상사가 무엇을 시키면 대략적으로 어떤 것을 하라는 것인지 척하면 척하고 알아듣는데, 연차가 있음에도 상사가 무슨 일을 시켰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면 그 업무를 준 상사의 잘못이다.
이런 경우는 많이 없었지만, 나도 경험해 본 적은 있다. 업무 지시를 하는데 배경 설명이나 맥락 없이 'ㅇㅇ님, A 프로젝트 F/U 부탁드려요.'라는 멘션이 온다. A 프로젝트가 무엇인지도 인지 하지 못 한 상태이고, 어떤 것을 F/U 할지도 불명확하다. 업무를 지시하긴 했지만 업무를 받은 사람 입장에선 무슨 업무를 지시한 것인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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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 관점에서 중요한 x 지표를 올리기 위한 프로젝트로 A 업무가 도출되었고 예상 ETA는 10월 말입니다. 이 프로젝트 상위기획부터 배포까지 담당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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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 A 프로젝트 F/U 부탁드려요. (가슴이 답답하다......)
나: A 프로젝트가 어떤 프로젝트인가요?
상사: 위에서 중요도 높다고 내려온 프로젝트이고, 10월 말 타깃이에요.
나:???? (그래서 무슨 프로젝트냐고요..)
회사가 굴러가려면 어느 정도의 탑다운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실무자의 의견을 무시된 채로 무조건적인 탑다운은 옳지 않다. 실무자 입장에서 의견을 피력했음에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이런 경험이 수차례 반복되면 실무자는 결국 의욕을 잃고 만다.
그때부터 그냥 시키는 일만 하는 기계 같이 업무를 하게 되고, 상사는 ‘왜 이렇게 열정이 없냐, 조금 더 적극적이면 좋겠다.’는 피드백을 하게 되고, 실무자는 점점 더 일할 의욕을 잃어가게 된다. ‘어차피 내가 의견을 말해도 안 들어줄 텐데, 변하지 않을 텐데.. 뭐 하러 이야기해? 입 아프게..’라는 생각을 갖고 그냥 흘러가듯 업무를 처리한다. 리더라면 실무자가 재미있고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게 동기부여를 해줘야 한다. (물론 ‘채용’ 시 열정적이고 능동적인 사람을 뽑았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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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님, A 프로젝트는 ~~ 한 이유로 중요도가 높다고 판단했고 이 업무를 ㅇㅇ님에게 맡겼을 때 가장 잘해줄 수 있다고 판단했어요. ~~ 한 방향으로 프로젝트 진행해 보면 좋을 것 같은데, ㅇㅇ님 의견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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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 ㅇㅇ님, A 프로젝트 중요하고 급하니까 ㅇㅇ님이 맡아서 빠르게 처리해 주세요. 내일모레 ~~ 한 방향으로 보고할 거예요.
나: ~~ 한 방향보다는, @@한 방향이 어떨까요?
상사: ~~ 한 방향으로 싱크 되었어요. 정리해 주세요.
나: 네(우두두두두둑 의욕 떨어지는 소리)
고군분투하며 업무를 하던 중 같이 일하는 메이커들로부터 회사에 대한 이런저런 부정적인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리더는 이런 문제를 가졌고, 개발팀은 이런 문제가 있으며, 디자인팀은 이런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였다. 각 팀에서 이야기하는 걸 종합해 보니 팀 간 신뢰가 많이 무너져있고, 서로를 무시하고 싫어하고 있었다. 개개인을 봤을 땐 능력 있고 좋은 사람들이었는데 특정 팀으로 소속되는 순간 타 팀을 욕하고 부정했다. 그리고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누군가를 탓하는 게 당연시되어 있었다. 최대한 이런 부정적인 감정에 멀어지려고 애써봤지만, 여기저기서 꾸준히 부정적 이야기가 들려오자 이런 감정이 내게도 아주 빠르게 흡수되는 것이 느껴졌고, 나도 어느새 모든 것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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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날수록 열심히 하고 싶다는 마음, 열정적인 동료들을 보며 받는 자극, 서비스의 성장을 바라는 많은 동료들의 열망이 느껴진다.
Bad
시간이 지날수록 부정적인 말, 부정적인 생각, 타 팀에 대한 신뢰도 저하, 서비스 미래에 대한 불안이 느껴진다.
또 동료의 퇴사 소식이 들려왔다. 대체로 떠나는 동료들은 사내에서 제 역할 이상을 해주고, 애티튜드도 좋았던 동료들일 확률이 높다. 우스갯소리로 '탈출은 지능순'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어느 정도는 맞는 말 같기도 하다. 떠나는 동료들은 '서비스에 대한 애정과 일에 대한 열정이 있는' 동료들이고, 이들은 본인들의 성장을 위해 이곳에 굳이 오래 머무를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다. 모두 열정적으로 힘 합쳐서 으쌰으쌰 해도 성공할까 말까 한데, 모두가 의욕 없이 그냥 시키는 일만 하는 곳에서 성공을 경험할 수 있을까? 이직까지는 많은 고민과 용기가 필요한데 이것을 감안하고 이직을 택했다는 것은 큰 범주로 보면 '이곳에서 본인이 성장할 수 없다고 판단했거나, 이 서비스는 성공할 수 없다고 판단했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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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하는, 좋은 인재가 앞다투어 회사에 입사한다.
Bad
재직자보다 역량이 부족한 직원이 입사한다.
회사 생활은 늘 어렵다. 재미있는 일을 찾아가면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고, 재미없는 일을 찾아가면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어난다. 회사에서 보내는 하루 8시간 이상의 시간들을 ‘재미있게’ 보낼 것인지, 또는 그냥 주어진 일만 하는 ’ 재미없게’ 보낼 것인지는 본인이 어떤 회사를 택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이 선택에 따라 우리가 가진 24시간을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가도 달라진다.
지금까지는 나름 재미있는 회사에서 열정적인 회사 생활을 해왔는데, 오래 일하다 보니 번아웃이 오려는 건지 아니면 재미없는 일에 무기력해진 건지 알 수 없는 상태에 놓여있다. 여전히 매일, 매시간 마음이 갈팡질팡하는데 어느 쪽으로든 얼른 방향을 정해야겠다.
힘든 시기에 다들 무너지는 조직보다는 성장하는 조직, 열정적이고 잘하는 인재가 모이는 조직을 잘 선택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