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기업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고 어떤 ㅇㅇㅇ이냐가 중요하다.
A: "저 ㅇㅇ기업 합격했어요."
B: "와! 진짜요? 너무 축하드려요."
A: "네 감사해요.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B: "왜요?"
A: "질문의 수준이 어렵지 않고, 대부분 인성 위주의 질문들만 있었어요."
나중에 들어보니, 가려는 회사가 조직 개편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어수선해서 원래 들어오는 면접관이 아닌 다른 면접관이 들어와 하드 스킬보다는 소프트 스킬 위주의 질문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대답하기도 수월했었다고.
이직 면접 후기를 물어보면 종종 '면접이 쉬웠다' 또는 '프로세스가 알고 있는 것보다 짧았다'라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같은 A 기업의 면접을 봐도 누군 쉬웠다, 누군 어려웠다고 하는데 결국 면접은 '어떤 기업' 이냐에 따라 다른 게 아니고 '어떤 팀이냐, 어떤 면접관이냐'에 따라 불합 여부가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오늘은 면접에 큰 영향을 끼치는 '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면접을 본다는 건 '내 시간'과 면접관의 '시간', 즉 양 쪽의 소중한 시간을 모두 쓰는 일이다.
따라서 면접을 볼 땐 면접을 볼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하는 건 기본이다. 여기서 말하는 자세란 무엇인가?
내가 말하는 면접 볼 자세는 아래와 같은 준비를 말한다. 서로의 시간을 쓰는데 '최소한으로 준비해야 하는 것'들이다.
1) 면접 볼 기업에 대한 기본적인 조사
기업의 문화는 무엇이고, 어떤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은 뭔지, 어떤 사업에 집중하고 있는지 등에 대한 기본적인 조사다. 구글에 기업명만 검색해도 빠른 시간에 쉽게 찾을 수 있다.
2) 제출한 이력서, 경력기술서, 포트폴리오에 대한 복기
기업에 제출했던 이력서와 경력기술서, 포트폴리오에 기재해 둔 내용에 대해 복기한다.
어떤 프로젝트를 왜 했는지, 목적이 무엇인지, 성과는 어땠는지에 대해 자세하게 생각하고 정리한다.
3) 면접 연습
거울을 앞에 두거나, 카메라를 켜고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을 말로 하는 연습을 한다. 이러한 연습을 하지 않으면 실제 질문을 받았을 때 버벅거리며 제대로 정리된 상태로 말하기 어렵다.
4) 면접 복장 및 용모 체크
면접 보기 1시간 전, 면접 복장과 용모에 대한 기본적인 체크를 하자. 요즘엔 딱히 면접 복장에 대한 가이드가 없어 편하게 입고 가도 되지만, 자리가 자리인 만큼 '단정한 복장과 깔끔한 외모'로 참석하자.
면접관으로 들어가 보니, 생각보다 최소한의 준비도 하지 않고 면접에 참석하는 지원자들이 있었다.
기본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운'이 따를 거라고 바라진 말자.
기본적인 자세를 갖추고 들어온 면접자라면, 이제 어떤 팀에 어떤 면접관이 들어오느냐가 진짜 '운'의 영역이다. 이유는 면접자가 면접관을 선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선택할 수 있다고 해도 누가 어떤 질문을 할지 모르니 선택권이 있어도 큰 의미가 없다) 면접자로 들어갔을 땐 면접관의 생각을 '추측'했어야 했지만, 면접관으로 들어가니 이제 '면접관'의 직접적이고 날 것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다른 면접관의 생각을 듣다 보니 결국 '운'의 영역은 면접에서 어떤 면접관을 만나느냐가 관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데이터 역량'을 가진 사람을 높게 평가하는데, 다른 면접관은 '커뮤니케이션 역량'을 더 중요시한다면 당연히 한 명의 지원자에 대한 평가가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면접관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나, 면접 보는 스타일이 다른데, 보통 아래와 같은 종류가 있을 수 있다.
1) '실무' 역량이 가장 중요한 면접관
면접관으로 들어갔을 때 어려운 질문을 하는 이들은 보통 '역량을 검증하는데 진심인' 면접관들이다.
이 경우 일에 대한 열정이 높고, 함께 일하는 동료나 후배를 본인보다 나은 사람으로 뽑으려는 마음이 강한 면접관들이다. 그렇다 보니 면접자들이 서류에 써놓은 '일'을 진짜 본인이 한 게 맞는지, 어디까지 깊이 있게 생각했는지 파악하기 위해 딥다이브 질문 위주로 묻는다. 또, 본인이 과거 경험해 봤거나, 현재도 경험하고 있는 '어려운 고민'에 대해 물어보는 추가 질문도 함께 곁들여 면접의 난이도는 높은 편이다.
2) '도메인' 경험이 중요한 면접관
PM/PO라면 도메인 경험이라고 이야기하는데, 개발자는 다룰 수 있는 범위나 언어, 일반 직장인이라면 유사 경험으로 생각하면 된다. 이 부분은 보통 서류를 넣을 때 JD를 통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JD에 필수 역량과 우대 역량이 있는데 여기에 종종 '쿠폰 도메인 담당 경험이 있으신 분', '라이브커머스 기획 경험이 있으신 분' 이런 식으로 기재되어 있는데 이 경우 쿠폰이나 라이브 커머스에 대한 프로젝트 경험이 있으면 매우 유리하다. 도메인 지식과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면접관은 같은 연차에 A는 도메인 경험은 없지만 역량이 조금 더 좋고, B는 도메인 경험은 있지만 A보다 역량이 조금 낮다면 '도메인' 경험이 있는 B를 선택할 확률이 높다.
3) '컬처핏' 또는 '본인의 기준'이 중요한 면접관
어쩌면 면접이 가장 쉬울 수도 있고, 어려울 수도 있는 면접관 유형이다. 예를 들어, 야근을 좋아하는 면접관이라면 이 사람이 얼마나 오랫동안, 그리고 얼마나 늦게까지 일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돌려 물어본다.
예를 들어 '일을 좋아하는지, 좋아한다면 얼마큼 좋아하는지, 어느 정도의 시간을 쏟는지'등을 알아볼 수 있는 질문들을 연이어한다. 이 경우 2-3개의 질문만 던지면 면접자가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 대충 감이 온다.
이 외에도 '얼마나 주도적인지', '연차 대비 스킬이 어떤지', '근속연수 대비 경험이 어떤지', '채용하면 오래 다닐 수 있는 사람인지' 등 면접관이 중요시하는 부분에 따라 질문이 달라지는데 본인이 생각하기에 본인 기준에 맞으면 '합격'을 준다. (실무 역량보다 본인의 기준에 충족하면 뽑는 경우가 있다)
이와 같이 면접은 '어떤 팀'의 누가 '면접관'으로 들어오는지가 불합 여부를 결정한다.
같은 기업이라도 어떤 팀인지, 그리고 면접관이 누구인지에 따라 동일한 역량을 지닌 지원자라고 해도 누구는 합격하고 누구는 불합격한다. 이 외에 또 중요한 요소는 '지원률'이다. TO가 1명인데 시장이 좋을 땐 2-3명이 지원하고, 시장이 좋지 않을 땐 200-300명이 지원한다. 그럼 당연히 후자의 채용이 훨씬 어려워지게 된다.
이직을 하며 면접자로 면접을 보기도 하고, 면접관으로 면접을 보기도 하면서 느낀 건 결국 면접의 반은 '운'이 작용한다는 점이었다. 요즘 같이 채용시장이 꽝꽝 얼어 채용을 하는 기업도 적고, 채용하는 인원도 적은 시점에 많은 지원자들이 본인의 역량을 의심하고 실망하고 좌절한다. 물론 면접에서 계속 떨어지면 자존감도 떨어지고 사기도 떨어지고 힘도 빠지겠지만, 그럼에도 무조건 '본인의 역량이 부족한 탓'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썼다.
몇 번의 취업이 성사되지 않고, 이직이 어려운 건 본인이 부족해서 만은 절대 아니다. 시장이 안 좋고, 단지 나와 잘 맞는 면접관을 만나지 못하는.. 운이 따라주지 않았을 뿐이다. 내가 역량을 충분히 갖췄고, 면접 준비에 최선을 다했다면 언젠가 꼭 원하는 기업에 갈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지금 잠깐 안 됐다고 좌절하지 말자. 결국 다 '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