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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g Mar 16. 2018

더포스트: 세상은 변화시켰지만, 신문 속 여성은 제자리



스필버그의 신작 '더 포스트'는 '펜타곤 페이퍼'라는 미현대사에서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다룬다. 지금까지 기자를 다룬 많은 영화들이 그렇듯 저널리즘의 역할을 강변하지만 스필버그는 정의감 넘치는 기자 세계만을 다루지 않는다. 영화의 엔딩스크롤이 올라간 후 가장 드라미틱하게 변한 건 1970년대의 미국사회이지만, 시대의 변화만큼 큰 울림을 가진 것은 한 인물의 작은 내면 변화다. 카메라는 역사 속에서 그냥 지나칠 수 있었던 한 개인의 찰나의 선택과 용기들을 고집스레 잡아낸다. 왜곡된 주변 환경 속에서 한 인간이 스스로 일어나기까지 얼마나 큰 용기와 희생이 필요한지 말이다. 뉴욕타임즈에 물을 먹은 워싱턴 포스트 기자들에 세상으로 시작하지만, 영화의 시선은 금새 최초의 여성 발행인 '캐서린' 개인의 이야기로 옮겨간다. 조밀조밀한 취재과정에 줌인하기 보다는 저널리즘이라는 대명제 그리고 그 속에서 한 인간이 바로서는 과정을 극화한다. 한낱 지방지였던 워싱턴포스트가 전세계가 주목하는 신문이 될 수 있었던 이유에는 캐서린이라는 한 '여성'이 존재했다.




워싱턴 포스트의 두 축은 멜 스트립이 연기하는 '캐서린'과 톰 행크스가 연기하는 '브래들리'다. 브래들리는 워싱턴 포스트의 편집국장으로서 위압적 인물이며, 가족경영을 통해 회사를 이끄는 캐서린은 부드러운 존재다. 출신성분과 살아온 과정이 다르게 성격차가 있을 수 있지만, 영화는 상반된 두 축을 통해 70년대 초 미국의 공기를 담는다. 남자들의 권능과 여성들의 순종. 권력 피라미드에 제일 꼭대기에 있는 캐서린임에도 불구하고 초반부 영화를 이끌어 가는 것은 벤의 남성성이다. 그는 마초적이며 권력적인 인물이다. 부하직원을 대할떄도 항상 강압적 태도를 일관하며, 일을 추진하는데 있어서도 저돌적이다. 상급자인 캐서린을 대할떄도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그녀의 집에 찾아가 의견을 표출한다. 그에 비해 캐서린은 주변부적이다. 자신의 의견을 표출할 충분한 사회적 신분과 식견을 가졌음에 불구하고도 항상 생각을 드러내는데 주저한다. 항상 남성 보드진에 둘러 쌓여있으며,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녀의 언어는 의심받고 자격미달로 취급 당한다.




멜 스트립은 영화 '철의 여인'의 대처처럼 강력한 카리스마를 보여줄 것 같았지만, 영화는 이내 그녀의 조용한 결단력에 집중한다. 사교의 여왕이지만 가업에는 특별한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하는 멜 스트립는 오랫동안 준비한 투자설명회에서도 정확한 의견을 타진하지 못한다. 회사에 대한 충분한 애정과 식견을 갖추고 있지만 그녀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을 주변부적인 인물로 생각하고 주변 남성에 이끌려 간다. 외부의 시선과 반응으로 인해 스스로의 능력을 깍아내리는 현실. 하지만 아버지의 유언을 그녀를 각성한다. 결정적 순간 정확한 판단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그녀. 이제 그녀의 용기있는 판단에 주목할만도 했지만, 여전히 세상은 여성의 결정보다는 남성의 결정에 반응한다. 뉴욕타임즈와 함께 재판을 받은 워싱턴 포스트지만 재판이후 기자들이 플래쉬를 터트리는 쪽은 뉴욕타임즈의 남성 사장이다. 감독은 사회를 고발해야하는 저널리즘의 역할을 선명하게 이야기하지만 동시에 언론의 왜곡된 젠더관 역시 선명하게 드러낸다. 영화 내내 남성은 정치, 사회적 사건의 주인공으로 신문에 등장하지만, 여성은 결혼과 패션과 같은 비사회적 이슈로 지면 속에 존재한다. 신문은 세상을 변화시켰지만 여전히 신문 속 여성들은 제자리다.




영웅적인 취재담이 존재하는 언론 영화인줄 알았지만, 영화는 취재과정이나 혹은 기사 내용을 디테일하게 다루지 않는다. 보다 저널리즘의 대명제 그리고 한 주변부적 인간이 편견의 알을 깨고 나오는 과정을 보여준다. 저널리즘은 이익과 취재라는 명분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하야 하는가. 개인적인 감정이 엮여있는 사건에 대해 어떤 방향으로 기사를 정해야 하는가. 정부의 압력과 수많은 외압 속에서도 저널리즘은 무엇을 궁극적으로 따라야 하는가. 다소 직전적이고 교훈적인 주제이지만, 워싱턴 포스트가 전세계가 주목하는 신문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교과서적인 기본원칙이 제대로 작동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구심에는 역사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여성 캐릭터 캐서린이 존재한다. 온화한 존재라는 것을 알기에 그녀에게서 나온 단단함의 강도를 우리는 더욱 잘 알고 있다. 스포트라이트 받지는 못했지만 재판 후 조용히 계단을 내려오며 그녀의 모습에서 우리 그 어떤 조명보다 화려한 존경을 목도할 수 있었다.



이미 알고 있는 역사적 이야기를 바탕함에도 영화의 몰입감은 뛰어나다. 캐서린 역을 맡은 멜 스트립의 연기도 대단하지만, 군더더기없이 수려하게 영화를 만든 스필버그의 연출력 역시 뛰어나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영화를 몰입하게 만드는 건 정의적 결말을 희망하는 관객들의 열망 이다. 거짓말로 점철된 정치인들의 말이 신문 헤드라인에서 사라지기를. 더 이상 무의미한 젊은이들의 희생이 존재하지 않기를. 권력비호가 정치의 목적이된 통치자들의 권능에 대항할 수 있기를. 베트남전 비밀을 담은 문서가 폭로되고 워터게이트 사건이 일어나기까지. 70년대 초, 캐서린을 비롯해 수많은 시민들의 작은 용기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관객들의 희망한 정의도, 미국의 현대사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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