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 보수, 뜨거운 얼음, 그리고 소리없는 아우성. 앞뒤가 형용되지 않는 역설적인 문장들을 보면서 8월의 크리스마스 떠올렸습니다. 죽어 가는 상황에서 가장 뜨거운 사랑을 만나게 나는 한 남자의 이야기는 그 어떤 역설보다 모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주인공이 만나게 되는 이러한 운명의 비대칭성을 드러내기라도 하듯, 영화의 제목 역시 <8월의 크리스마스>입니다. 한 여름에 존재하는 크리스마스. 이 역설적인 영화의 제목처럼 영화 내용 역시 기존 장르 관습을 따르지 않습니다. 죽음과 사랑이라는 가장 뜨거운 감정을 다루는 멜로물이면서, 감독 허진호는 신파적인 장면을 억지로 끼어넣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죽어야만 하는 한석규의 눈물이 한번쯤은 나올법 했지만, 영화는 그 당연한 감정마저도 절제해냅니다. 감정을 표출하고 드러내기 보다는 그 당연한 감정마저도 억제하고 감추는 방식을 통해 주인공의 삶의 대처방식을 자연스러 보여줍니다. 그렇게 영화의 마지막 30분은 그 흔한 대사 하나 없이 흘러갑니다. 신파없는 멜로가 역설적으로 느껴질 정도의 과잉의 시대지만, 한석규의 마지막 독백은 그 어떤 화려한 수사와 언변보다도 진실되었습니다. 그녀를 향한 그의 묵직한 사랑은 그렇게 사진 한장을 통해서 우리를 관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