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ng Jan 25. 2018

나 다니엘 블레이크 : 인간선언




"아무것도 안하고 죽는 것보다, 하고 있는 도중에 죽는게 낫다"
   
'바람이 분다'(2013) 이후 은퇴를 선언한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의 감독이 최근 은퇴를 번복하며 했던 말이다. 사람들은 그의 번복을 책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절망적인 세상 속에서도 고령의 감독이 던질 인간적인 메시지에 기대를 품었다. 여기 영국의 미야자키 하야오가 있다. 고령의 나이에 스스로 뱉은 은퇴를 번복하고, 다시 카메라를 잡은 감독. 영원한 ‘좌파감독’ 켄 로치다. 더 이상 자신에게 ‘극영화는 없다’고 선언한지 불과 2년, 그는 신작을 들고 돌아 왔다. 데뷔 반세기를 뛰어넘은 지금, 그는 다시금 '다니엘 블레이크'란 인물을 통해 상식이 퇴보하는 세상 속 인간의 가치를 부르짖는다.
   
그의 신작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그의 데뷔작 <캐시, 집에 오다>와 많은 면에서 닮아 있다. 주인공의 나이, 감독 스스로의 나이만 바뀌었을 뿐, 부당한 복지제도와 무능력한 관료주의를 비판하는 날카로운 시선은 그대로다. 50년 전 켄 로치가 젊은 미혼모에 자신을 동일시했다면, 2016년의 그는 심장병이 걸린 늙은 목수 다니엘 블레이크에 자신을 투사한다. 다니엘 블레이크는 의료연금에 의존하며 죽음을 앞둔 인물이지만, 그 절망 속에서도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 나간다. 이웃을 도와주고 부당한 권력과 싸운다. 자신을 관리 받아야 하는 한낱 개, 돼지로만 취급하는 제도적 폭력을 향해 그는 존중받아야 마땅한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킨다. 



영화는 다니엘 블레이크가 전하는 한편의 ‘인간 선언’이다. 심장병과는 관련도 없는 기계적 질문을 던지는 의료 심사관, 평생 컴퓨터를 만져본 적 없는 목수에게 컴퓨터로 연금을 신청하라 강요하는 행정 시스템, 약속 시간에 5분을 늦었다고 위험 대상군으로 지정해 버리는 공무원. 숫자와 효율만을 최우선시 하는 무능력한 관료제를 보면서 관객들은 답답함을 느낀다. 사회적 약자의 생명선을 볼모로 잡은 그들의 폭력은, 과연 복지가 인간다움을 보장하는 제도일 수 있는지 의문을 던진다. 최소한 영화 속 영국 복지제도에서는 미래에 대한 희망도 인간 존엄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제도 속에 약자들을 가두고 절망과 가난을 정형화해, 관리하는 효율성만이 존재할 뿐이다. 자신을 지치게 만들고 이웃들을 등 돌리게 했던 그 철옹성과 같은 시스템에 다니엘 블레이크는 한자 한자 써내려 간다. 컴퓨터 마우스가 아닌 다니엘 블레이크의 필체 그대로. “내 이름은 다니엘 블레이크”라고.  


다니엘 블레이크의 처절한 ‘인간 선언’을 보면, 왜 우리는 인간답게 대우받기 위해 왜 그렇게 처절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영화 전체에 감도는 유쾌한 분위기에 한바탕 웃다가도, 영화가 그려내는 비극적 현실에 금세 영화관의 공기는 숙연해 진다. 영화의 비극적인 결말을 차치하더라도, 푸드뱅크에서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본능적으로 통조림을 뜯어내 허겁지겁 맨손으로 먹는 싱글맘 케이티의 모습에 관객은 동요한다.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비참한 삶으로 이끌었는가? 하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다니엘 블레이크는 그 누구도 탓하지 않는다.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에 눈물 흘리는 케이티에 다니엘 블레이크는 그 옆자리를 지킬 뿐이다. "이건 너의 잘못이 아니야" 절망의 순간에서 손을 내민 딱 한 마디의 위로는, 그 어떤 복지 제도보다 더 인간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다. 




켄로치 영화는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 영화는 스크린을 뛰쳐나와 현실의 일부가 된다. 도전적이고 성취하는 인물이 아니라 연민과 슬픔, 웃음과 위로의 감정이 관객들을 끌어 당긴다. 평생을 좌파 감독으로서 약자의 곁을 지켜온 켄 로치는 과장된 미학 언어로 관객들을 현혹시키지 않는다. 지나친 수사와 선언적 언어로 관객들을 선동하지도 않는다. 단지 가장 인간적인 감정과 보편적인 상황들로 자신이 가진 문제의식과 더 나은 사회에 대한 가능성을 말한다. 2006년에 이어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통해 두 번째 황금종려상을 받은 켄 로치 감독은 수상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고 그리고 필요하다고 우리는 말해야만 합니다" 그의 데뷔작 <캐시, 집에 돌아온다> 가 만들어진지 50년이 지난 지금, 어쩌면 세상은 더 어두워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의 영화가 있기에 우리는 지금도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고,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이 켄 로치 영화가 존재하는 이유이다.
   
은퇴 이후 물고기를 조각하던 다니엘 블레이크는 강풍에 휩쓸려 내려간다. 그렇게 꿈꾸던 의료연금 재심사를 앞두고 그는 생을 다한다. 그리고 그를 기리는 오전 9시에 열리는 가난뱅이의 장례식에서 케이티는 블레이크를 대신해 그가 못 다한 이야기를 전한다. 
  



"나는 의뢰인도 고객도 사용자도 아닙니다. 나는 게으름뱅이도 사기꾼도 거지도 도둑도 아닙니다. 나는 보험 번호 숫자, 화면 속의 점도 아닙니다. 내 이름은 다니엘 블레이크입니다. 나는 묵묵히 책임을 다하며 떳떳하게 살았습니다. 난 굽실대지 않았고 동등한 입장에서 이웃을 도왔습니다. 자선에 기대지 않았습니다. 나는 내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내 권리를 요구합니다. 인간에 대한 존중을 요구합니다. 나는 단 한명의 시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말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죽지 않았다. 하고 있는 도중에 죽었다. 죽음 앞에서도 스스로를 위해, 이웃을 위해, 세상을 위해,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 끝까지 싸웠다. 인간다움을 포기하지 않는 묵묵한 삶만으로도 싸움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줬다. 문득 백만 개의 촛불이 광화문 거리를 밝힌 우리의 상황이 겹쳐진다. 어쩌면 우리 모두 다니엘 블레이크가 아닐까. 서로가 서로의 어깨에 기대에 우리는 외친다.
   
"우린 고객도 사용자도 화면 속 점도 아니다. 우린 다니엘 블레이크다. 존중받아야 마땅한 시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룸 : 공분을 넘어 일상화된 용기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