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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g Feb 01. 2018

공동정범 : 우리에게 분노를 가르친 도시, 서울




쫓기다 못해 옥상의 작은 보루까지 밀려난 철거민들은 그 벼랑 끝에서 다시 한 번 인간의 본성을 시험당한다. 원인모를 화재로 가족과 동료를 잃은 철거민들은 출소 후에도 그 후유증 때문에 제대로 된 일상을 살아가지 못한다.

2009년 1월 20일 그날 그곳에는 서울 용산구 철거민뿐 아니라 신계동, 산도동, 단대동 등 전국에서 모인 철거민이 함께 했다. 그날은 연대했지만 '공동정범'(형법 30조에 의거해, 2인 이상 책임능력이 있는 자가 서로 공동으로 죄가 될 사실을 실현하는 한 그곳에 참가공동한 정도의 여하를 불문하고 전원을 정범으로 처벌하는 규정)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뒤, 함께 연대하지 못한다.




생존자들은 급기야 그날의 '이기'를 원망하고 '책임'을 전가하며 서로를 불신한다. 지난 25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공동정범>은 굉장히 공적인 이야기이자 동시에 굉장히 사적인 이야기다. 용산참사를 다룬 영화 <두 개의 문>(2011)이 나온 이후 7년 만의 작품이다. 이혁상, 김일란 감독은 "<공동정범>이 국가폭력을 성찰하는 다큐멘터리. 더 나아가 인간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작품이길 바란다"고 말했다(2018년 1월 25일 <씨네21>, <공동정범> 김일란·이혁상 감독, "투쟁에서 배제당했던 '우리' 목소리").

<공동정범>은 뚜렷한 사건에서 시작한다. 화재가 일어나기 2분 10초 전, 물대포와 콘테이너 박스가 강타한 용산구 남일당 망루는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인다.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시나리오였기 때문에 더 비극적이었다. 뉴스에서는 5명의 피해자만을 기록했지만, 그 좁은 망루 안에서 생과 사를 넘나든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기억한다. <공동정범>은 단 한 번도 외부에 드러나지 않은 그 기억들을 소환한다.

용산참사 희생자인 이상림의 아들이자 용산4구역 철거민대책위원장 이충연, 그리고 김주환, 천주석, 지석준, 김창수 등 그날 용산과 연대한 타 지역 철거민들. 그들은 공동정범으로 법적인 책임을 함께 감당했지만 출소 이후 함께 하지 못했다. 김주환 등 타 지역 철거민들은 망루 계획에 대해 그날 전혀 들은 바가 없었으며, 출소 후 타지역 철거민이 함께 모이는 것을 이충연이 계획적으로 방해한다고 생각했다.




급기야 가장 먼저 망루를 빠져나왔던 이충연의 이기적인 면을 기억하며 어제의 동료를 증오하기까지 한다. 이에 현재에도 용산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해 사회적 활동을 하고 있는 당시 대책위원장 이충연은 이렇게 말한다.

"가족을 잃은 저만큼 아픔이 큰 사람이 있을까. 우리가 해야할 것은 술 한 잔하며 과거를 복기하는 것이 아니라, 용산참사를 세상에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이다."


살아남은 자들에게 있어 용산참사는 더 이상 사회적 사건이 아니었다. 5명의 공동정범들에게 그날의 사건은 다분히 사적이고 관계적인 조각이었다. 함께 살아남았고, 공동의 법적 책임을 떠안게 되었다. 하지만 함께 공동정범으로 규정된 순간, 생존의 죄책감은 더 이상 치료받아야 할 아픔이 아니었다. 삶에 안도할 새도 없이, 그들은 동료와 가족을 희생을 몬 주범이 되어 있었다. 살아남았기 때문에 아픔을 발설하지 못하며 고통스러워 하는 그들이 급기야 서로를 향해 화살을 돌리고 있었다.

망루 밖 존재들은 쉽게 알 수 없었던, 얽히고 설킨 갈등이 좁은 공간 안에 잠재되어 있있다. 김일란·이혁상 감독은 그 지점을 파고 든다. 작게 난 망루의 창문을 통해 세상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망루 안 진실을 밖으로 꺼낸다. 이슈를 무리하게 보편화하거나 미화적, 선언적 태도도 일관하지 않는다. 피해자의 아픔을 대상화하기 보다는 객관적 시선으로 그날의 감정을 솔직하게 구술한다. 그리고 솔직한 감정을 인터뷰한 생존자들은 단단한 망루를 걷어내고 세상 밖으로 조심스레 나오려 한다.

출소 후 수 년이 지나서야 만난 처음으로 함께 모인 생존자들. 원망과 미움으로 상대를 대한다. 하지만 만남이 진행되자 관계 회복의 실마리가 보인다. 그들의 생존이 죄책이 아니라 치유의 대상으로 인식되는 순간, 그날의 생존이 인간의 밑바닥이 아니라 불가항력적 본능으로 이해되는 순간, 그들은 서로에게 켜켜히 쌓아둔 오해의 시선을 거둬들인다. 서로에게 겨누었던 증오의 화살을 회수한다. 사건이 일어난지 10여 년이 흘러서야 건물이 올라가는 용산4구역을 바라보며, 우리는 그날의 물대포와 희생이 유의미했던가 생각한다.
  



대화의 자세로 그들을 대했다면? 그들에게 '공동정범'의 책임을 묻지 않고, 서로를 불신하지 않게 만들었다면. 아니 최소한 진상규명을 통해 그날의 사건의 진실을 밝혔다면, 과연 생존자들의 삶은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

'용산참사'라는 사회적 사건을 장르화, 개별화한 <공동정범>의 작업은 그 자체로 인상깊지만, 다큐의 백미는 해체한 사건을 다시 한번 사회적 시선으로 재조합하는 과정이다. 용산참사는 결코 망루안의 사적인 이야기 아니다. 9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우리가, 공동체가 풀어야 할 공통의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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