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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나 Nov 13. 2022

세 개의 죽음이 남긴 단상 (1)

첫 번째 죽음: 나의 외할아버지

 나의 외할아버지는 스님이셨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뒤늦게 출가한 할아버지를 보러 '대성사'를 자주 갔었던 기억이 있다. 어느 순간 그 기억의 배경은 인천 화평동 냉면거리에 있는 '광덕사'라는 절로 옮겨갔다. 외가친지들은 그 곳에서 때되면 제사도 지내고 팥죽도 끓여먹고, 김장도 담궜다. 부처님 오신날이 다가오면 온 가족이 동원되어 찹쌀풀로 진달래 색 주름진 종이이파리를 붙여 연등을 만들기도 했다.


 6녀 중 장녀인 엄마는 유난히 아버지에 지극정성이었다. 몇 년 간 거의 매주 우리 가족은 토요일 새벽에 광덕사를 갔다가 월요일 새벽 4시 차가 막히지 않는 틈에 서둘러 올라왔다. 할아버지의 집, 아니 절에 가면 그 쿰쿰한 곰팡내 나는 이불때문에 비염이 심했던 나는 숨을 쉬기 힘들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밤에 무서움을 참고 가야 하는 푸세식 화장실도, 추운 겨울에 물을 한 솥 끓여 찬 물과 섞어  부어놓은 고무다라이에서 하늘색 플라스틱 바가지로 물을 퍼서 몸을 씻는 불편함도 진절머리 났다. 그래서 할아버지네 가는 것이 그렇게 싫었다.


 한참 뒤 내가 대학생이 됐을 때, 할아버지는 아프셨다.


'광덕사'를 정리하고 요양병원으로 들어가셨다가 추측이건데 비참함을 견디지 못하고 나오셨다. 어떻게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둘째 이모가 그를 집으로 모셨다. 둘째 이모 집은 우리집 바로 옆이였다. 인천보다 거리는 가까워졌는데 엄마가 따로 가자는 소리를 안 하고 나도 학교 생활로 바쁘다 보니 할아버지를 좀처럼 보기 힘들었다. 아니, 볼 생각을 안 했다. 어느 날 엄마가 다른 이모에게 둘째이모를 타박하는 소리를 들었다. "자기가 우겨서 모시고 왔으면서, 집에만 가둬놓으니 노인네가 얼마나 답답하겠어!"


할아버지가 불쌍하게 느껴졌다. 그 생각을 내내 떨치지 못하고 마음에 걸려 하다가 수업이 하나밖에 없던 날, 집 앞 버스 정류장에 내려서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평생 무뚝뚝했던 할아버지 목소리에 묻어있는 요만치의 반가운 기색은 참 알아차리기 쉬웠다.


    "오야"

    "할아버지, 점심 드셨어요?"

    "아니, 이제 무야지."

    "그럼 저 가서 같이 먹어도 돼요?"

    "어? 어? 그래, 온나. 콩나물 국 끓여묵자."


 통화를 마치고 이내 갔더니 할아버지는 실망하고 겸연쩍은 기색의 얼굴로 말씀하셨다.  

    "하~ 참. 급하게 끓여서 그런가 맛이 안 나."

    "괜찮아요~"


 70넘어 병든 할아버지와 갓 스무살을 넘긴 손녀는 딱히 할 말도 없었다. 그냥 마주 앉아 정말 맛없는 콩나물국을 말없이 후루룩 후루룩 먹기만 해도 내가 위로하고 그가 위로받음을 느낄 뿐이었다.


그 후로도 몇 번 그렇게 찾아갔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건데, 내가 찾아가 요리를 하게 되는 날이면 오랜만에 본인의 쓸모를 느끼셨지 싶다. 스님인지라 육고기는 드시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손녀 먹으라고 돼지고기와 김치를 넣은 두루치기도 해주셨다. 광덕사에서 부터 쓰시던 빨간 원형 전기 팬에다가 말이다.


 할아버지는 서울에서 1년을 못 채우시고 다시 인천으로 내려가셨다. 투석실이 지척인 단칸방에서 보살님 한 분의 도움을 받아 통원하며 여명을 보내시다가 내가 졸업을 앞두고 있을 때 돌아가셨다. 영특하신 양반이셔서 본인의 죽음을 예견하셨는 지 돌아가시기 한달 전쯤 택시를 빌려 여섯 딸들의 집을 차례로 돌아보셨고, 그 때 마지막으로 할아버지를 보았다.


 장례식을 마치고 유품을 정리하러 온 가족이 그 단칸방에 모였다.

"어, 이거 내가 아버지 사준건데. 내가 가져가야겠다." 둘째 이모가 눈에 익은 전기팬을 챙기며 말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순간 생전 처음으로 집안 어른에게 눈을 똑바로 뜨고 내 주장을 했다.


"이거 제가 가져갈 거에요. 할아버지가 이걸로 요리 많이 해주셨거든요."

약간은 황당해 하는 할아버지의 둘째 딸에게서 한 세대를 건넌 손녀가 당돌하게 전기팬을 뺏어 들었다. 소중하게 들고 온 그 전기팬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결혼해서 엄마가 된 손녀딸의 주방까지 따라와 묵직하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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