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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나 Dec 03. 2022

다르게 육아하는 엄마들

일과 육아 그 사이 어디즈음

Ep.06_Editor_혜나


나와 당신, 엄마가 된 우리는 일과 육아 사이 그 어디즈음에 발을 딛고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 불안은 아는 것이 아닌, 모호하고 알 수 없는 것에서 기인한다. 많은 부모들이 자신이 발디딘 그 자리에 대한 경험을 밖으로 꺼내어 공유하고 공감을 주고 받을 수록 '부모된 삶'에 대한 불안은 사라질 것이고, 비로소 불안에 휩싸인 채 내뱉는 불평불만에서 벗어나 모든 부모와 아이를 위한 공동의 선에 대해 논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 네 명의 메이트들의 짧지만 밀도있는 이야기가 그것에 기여하길 바라고 이 세 개의 인터뷰도 거기에 보탬이 되길 바란다.




가정보육의 진정한 가치를 실현중인 _공진주

초등학교 체육 강사, 6세 딸 (현재는 남편이) 가정보육 중


그녀를 알게 된 것은 가정보육에 뜻이 있는 엄마들과  '엄마가 된 나찾기'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였다. 태권도 학원 관장님이었던 언니는 강단있는 성격과 뚜렷한 철학, 그리고 진중함이 드러나는 이야기들로 늘 모임에 무게감을 실어주는 고마운 멤버였다. 이번에 레퍼런스 조사 미션이 떨어졌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났던 이유도 분명한 소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그녀는 분명 좋은 답을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정보육의 가치'에 공감하는 사람과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지 반가운 마음에 이야기는 세 시간 정도 이어졌다.


Q. 간략하지만 정체성을 담은 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가족을 중요하게 여기는 자존감 강한 엄마 공진주입니다. 여섯살 딸 아이를 키우고 있고, 지금은 초등학교에서 체육 강사로 일하며 정규 체육 수업과 방과 후 수업을 하고 있어요.


Q. 아이를 5세까지 직접 가정보육을 하시다가 아이가 6살이 되면서 생활에 변화가 있었죠? 요즘의 생활이 어떤지 설명해 주시겠어요? 

아이가 여섯살이 되면서 남편이 육아휴직을 하고, 제가 초등학교 강사로 일하고 있어요. 출근이 오전 11시나 오후 1시 반이고 퇴근은 4시반이어서 가족과 아침 먹고 출근하고 퇴근하면 또 같이 저녁 먹고 시간 보내고 사실 그냥 일이 하나 더 추가된 거지 생활의 변화는 많이 없는 것 같아요. (웃음) 아이와 늘 새로운 곳 찾아다니고, 다른 가족들과 캠핑도 다니고.


Q. 아빠가 1년 간 육아휴직을 하셨군요. 그렇게 하기로 한 이유가 있을까요?

아빠가 딸이 컸을 때 서먹해지기 않도록 추억을 많이 만들어놓고 싶다고 먼저 이야기를 했어서 몇 년 전부터 아이가 6세쯤 되면 이렇게 해보자고 계획하고 있었어요.


Q. 아빠가 가정보육하는 삶은 어떤가요? 만족하시나요? 

지금 사는 수원/용인 시에서 육아대디를 모아서 모임을 시켜주더라구요. 체육대회도 하고, 문화체험 비용을 지원해주기도 하고. 육아하는 아빠들이 생각 보다 많아요. 남편처럼 공기업에 다니거나 군인분들 중에 특히 육아 대디가 많다는 걸 알게됐어요. 그리고 가정보육맘 까페에서 만난 같은 연령의 아이들 7~8명이 일주일에 두 세번 모여서 노는 모임이 있는데 엄마들이 양해해줘서 아빠가 대신 그 모임도 다니고 있어요. 아빠는 엄마와 다른 육아를 하기 때문에 오히려 아이에게 더 좋은 점이 있는 것 같아요. 엄마들은 아무래도 집안일이 쌓여있으면 틈틈히 그것도 해가면서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데, 아빠는 그런 게 안 보이잖아요. (웃음) 그러니깐 아이에게 모든 시간 집중해서 놀아줘서 아이가 그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아이의 사소한 감정을 읽어주는 부분이 조금 부족한듯 보이지만, 그 부분은 내가 집에 돌아와서 말로 추스려 줄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서 괜찮아요. 아빠도 일을 떠나 아이와 시간을 보내면서 몸도 건강해지고 마음의 여유도 되찾게 되고 좋은 점이 많은 것 같아요.


Q. 그냥 강사도 아니고 관장님까지 하셨었고, 심판이 되려고 준비도 하셨던 걸로 알아요. 커리어를 다 내려놓고 가정보육을 결정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요?

일에 대한 사명감은 늘 있고 한 번도 최선을 다하지 않은 적은 없지만 시기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아이는 한 번 키우면 되돌릴 수 없잖아요. 지금은 육아를 해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할 뿐이에요.

사실 아이를 갖기 전부터 이미 아이를 낳으면 가정보육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한 상태였어요. 태권도 관장이던 시절 부모가 가정보육하는 친구들, 할머니가 케어하는 친구들, 기관 다니는 친구들 다양한 양육 상황의 아이들을 오랜 시간 지켜볼 수 있었거든요. 가정보육하는 친구들의 평소 안정적인 모습이나 문제상황이 닥쳤을 때 해결해 나가는 능력이 남다른 게 눈에 도드라지게 보였어요. 그 차이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나도 아이를 낳으면 가정보육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었죠. 그리고 4살까지 직접 키우다 보니 내 딸은 장소에 낯을 특히 더 가리고, 불안이 높은 성향인 걸 잘 알겠더라구요. 그걸 알고 나자, 딸 아이가 학교라는 새로운 환경을 만나기 전에 내면을 더 단단하게 가꾸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정보육을 더 지속하게 되었어요. 학교 수업을 해 보니, 나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더 느껴요. 보통 이 나이때까지 가정보육을 하면 학교 적응에 어려움을 겪을거라고들 말하는데, 기관에 다녔던 친구들도 다니지 않았던 친구들도 학교를 들어오게 되면 모두 달라진 생활에 스트레스 받아 하는 걸 보면서 결국 그 스트레스 상황에서 어떻게 풀어가고 적응해 가느냐의 문제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어요.


Q. 6~7년만에 사회로 복귀하면서 언니가 가진 능력을 다 펼치지는 못하는 직업을 선택하게 된 것 같은데, 아쉽지는 않으세요?

절대. 지금의 일은 우리 가족 모두가 행복해지는 수단으로 선택한 일이고, 내 꿈은 이게 아니니깐 괜찮아요.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면 다시 내 꿈을 펼칠거에요. 지금의 일은 본격적인 복귀 전에 적응훈련이라고나 할까? 이번에 이 일을 하게 되면서 우리 가족 모두 얻은 것이 많아요. 아이는 여태까지와는 다른 생활에 적응해 볼 경험을 얻었고, 남편은 여유를 얻었죠. 저는 다시 일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었고, 무엇보다 아이가 다른 생활에 곧잘 적응해내는 것을 보고 아이가 다른 변화에도 잘 적응할 것이라는 믿음을 얻었어요.


Q. 어쩌면 언니가 가지고 있는 자격이나 경력이 전문적이기 때문에 10년 후의 복귀를 계획하는 게 가능한 것 아닐까요?

그렇다기 보다는 자존감과 자신감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저는 늘 '그냥 하면 되지 왜?'라는 마인드에요. 못하면 '못할 수도 있지 왜?'라는 생각을 하구요.


Q. 저는 안타까운 게, '부모의 삶의 질과 일'에 '아이의 양육'이 상대적으로 홀대받고 있는 상황이에요. 겪어보니 분명히 아이가 부모로부터 전적인 양육을 받아야 하는 중요한 시기가 있다는 확신이 드는데, 언니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마 어렸을 때 부터 주체적인 삶을 살라는 이야기를 계속 들어오다가, 아이가 생기면 내 삶을 컨트롤 하는 주체성이 흔들리니깐 위기감을 느껴서 그런 선택들을 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일에 대한 피드백은 빠르게 오니깐 그것을 당장 잘 해내야 겠다는 압박이 들텐데, 양육에 대한 피드백은 아주 천천히 성인이 됐을 때, 위기 상황에 닥치고 나서야 그 결과로 나온다는 거에요. 지금 당장 아이가 엄마 없는 삶에 그럭저럭 적응하고 있는 것 같아서 간과하기 쉽지만, 어린 시절의 양육 경험이 한 사람의 인생에서는 엄청나게 중요한 일임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요. 아이가 가진 힘을 못 믿어서, 혹은 보호하기 위해서 끼고 도는 것이 아니라, 삶의 무수한 위기를 맞이했을 때 단단한 내면으로 잘 견딜 수 있는 힘, 다시 나아갈 수 있는 기반을 다져주는 게 제가 가정보육을 하며 목표했던 바에요.


Q. 우리가 전적으로 옳다고 할 수는 없지만 가정보육의 가치를 더 강조하는 엄마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는데, 언니도 함께 이런 목소리를 내는 활동을 하실 생각은 없으세요?

가족이랑, 딸이랑 놀러다니는 게 더 중요해서. (웃음) 지금은 양육이 더 중요한 시기 이기 때문에.


Q. 여성의 일과 양육 관련해서 꼭 남기고 싶은 한 마디가 있다면?

걱정했던 것 보다는 모든 일이 너무 다 잘 될 거라는 말을 꼭 해주고 싶어요. 성향과 상황이 있기 때문에 다른 분들의 선택도 존중하지만 분명히 양육에 중요한 시기는 있다는 건 말해두고 싶네요.


일과 육아 사이 합리적인 선택 뿐_Bethany Rutledge

4세, 2세 형제 가정보육 중, 내년 봄에 예쁜 공주님 태어날 예정


‘하이힐을 신은 여자’, ‘인턴’을 통해 미국 워킹맘들의 삶을 보면서, 문득 진짜 미국 이야기가 듣고 싶어졌다. 그 때 마침 페이스북 메신저로 Bethany가 안부를 물어왔다. 프랑스에 있을 때 같은 교회를 다녔던 친구 Bethany는 나와 생일이 똑같은데 첫 아이도 둘 다 2018년 4월에 낳았다. 거기에 이제 내년이면 둘 다 새로운 공주님을 만날 것이다. 참 신기한 인연이다. 그렇게 특별한 인연임에도 때때로 안부만 물었지, 문학 선생님이 될 것이라던 똑부러지던 그녀가 남편을 따라 이 곳 저 곳 이사만 다니며 아이만 키우고 있는 사정을 들어볼 기회는 없었다.


“넌 영원한 나의 친구야♥”라는 그녀의 스윗한 메시지를 보고 냉큼 물었다.

“그렇다면 친구, 이것 좀 해줄 수 있겠나? ^^”


구글폼을 이용해서 ‘엄마의 일’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여성이 일과 육아의 병행에서 마주하게 되는 현실에 대해 묻는 몇 가지 질문을 보냈다. 며칠 후 그녀의 답변이 작성되었다는 알림을 받았다.


Q. 소개 좀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만 4세, 2세 아들들을 키우고 있고 내년 봄에 또 한 명의 아이를 만나게 될 Bethany 입니다.


Q. 혹시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서 경력공백을 겪어야 했나요? 만약에 겪었다면, 그런 결정을 한 당시에 했던 고민이나, 남편과 나눈 이야기, 그리고 느꼈던 감정들에 대해 공유해줄 수 있나요?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 몇 달간의 육아휴직을 부여 받았는데 휴직 기간이 끝난 후 아이를 떼어놓고 복직하는 것이 너무 괴롭게 느껴졌어요. 그리고 보육 서비스 비용은 만만찮은 반면에 당시에 내가 하고 있던 일의 보수는 많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를 직접 양육하는 것이 경제적으로도 합리적인 결정이었죠. 남편과 나는 아이를 양육하는 이 기간을 “경력 휴식기간 (career pause)”이라고 생각키로 했어요. 경력이 끝난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어느 정도 학령기에 들어서면 다시 일을 할 거니까요. 나까지 경제적 활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어서 아이를 직접 키울 수 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나의 엄마도 일을 하지 않고 집에 머물며 아이를 키우는 삶을 선택하셨는데, 그런 엄마의 삶이 지금의 나로 성장하는데에 아주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해요.


Q. 한국에서는 많은 엄마들이 경제적인 사정이나 일에 대한 마음 때문에 12개월의 육아휴직 기간이 끝나면 일터로 돌아가요. 당신의 문화에서는 출산 후 여성의 사회로의 복귀는 대체로 어떤 양상을 보이나요?

미국에서는 대부분의 엄마들이 최대 2개월 동안만 육아휴직을 하고 복귀를 해요.


Q. 미국에서는 부모 중 한 사람이 육아를 위해 경력을 유예하거나 포기하는 것이 일반적일까요? 부모 중 누가 더 그런 선택을 할까요? 그리고, 경력단절 후에 사회로 복귀하는 것에 어려움은 없나요?

대다수의 사람들은 육아 때문에 경력을 포기하는 선택을 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부부 중 한 명이 그런 선택을 한다면 그건 분명히 엄마인 경우가 많은데 모유수유처럼 생물학적으로 불가피한 이유도 있겠지만, 문화적인 영향 때문에 그렇기도 해요. 경력이 단절된 사람이 사회로 복귀하는 것은 어떤 분야인지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요? 개인적으로 느끼기에는 과학이나 의학 관련 분야에서는 경력 공백 후에도 복귀하는 것을 반갑게 여기는 것 같아요. 내가 몸담고 있던 교육분야도 경력 공백이 있는 사람의 복직에 대해 관용적인 것 같아요. 우리 남편은 지금 하버드 산하의 연구기관에서 일하고 있는데, 이 곳은 굉장히 가정친화적이고 아이친화적인 직장이에요. 내년에 남편의 육아휴직이 예정되어 있는데, 뒤쳐지는 것에 대한 개인적인 부담감은 있겠지만 돌아갔을 때 동료들이 이해해주고 반겨줄 것은 의심치 않아요.


Q. 기업이나 고용주가 결혼이나 출산 후 효율성이나 충성도가 저하될 것을 걱정하여 여성 고용을 꺼리는 추세가 있다고 생각하나요?

음... 그런 경향이 있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Q. 한국에서는 만 3세까지는 엄마가 직접 키워야 한다는 오래된 이야기가 있어요. 미국에도 부모의 직접양육을 강조하는 신념이라던가 이론이 있을까요? 있다면, 젊은 부모들은 그것에 어떻게 반응하나요? 당신의 개인적인 의견은요?

미국이 워낙 크다 보니 어떤 의견 하나를 일반화 시키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그렇지만 내가 자란 ‘Bible Belt’, 텍사스에서는 집에서 육아하는 것을 여성의 가장 큰 사명(calling)으로 보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내 생각에는 그런 움직임에는 장단점이 있어요. 아이의 어린 시절 동안 직접 양육하고자 하는 나와 같은 여성들에게는 지금처럼 살아도 된다는 일종의 허용이 되는 반면에, 양육에 뜻이 없거나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여성들에게는 죄책감이 될 수도 있는 거잖아요. 저는 모든 여성은 부르심(divinely ordained calling)에 응답하기 위한 고유한 개성과 재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로 인해 가정마다 양육의 방식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정말 솔직히 말하자면, (집에서 아이를 보는) 나도 가끔은 내 일을 할 수 없다는 게 부당하다는 생각에(I can’t have my cake and eat it, too)에 괴로울 때가 있어요. 다르게 표현하자면, 집에서도 온전한 역할을 해내고 싶은 마음과 일로써 지역사회에 더 넓게 영향력을 펼치고 싶은 마음 둘 다 내 안에 있어요.


Q. 한국에서는 여성들의 일이 가지는 의미가 남성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성들에게 요구되는 가사부담이 더 과중하다고 이야기해요. 미국에서는 어떤가요? 미국에서도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과 직업 사이에서 치이는 여성들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편인가요?

맞아요. 미국에서도 여성이 가사일의 대부분을 책임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가사일을 남녀가 분담하는 방향으로 천천히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우리 세대의 남성들은 요리, 청소, 육아에 대한 책임을 더 직접적으로 느끼고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 남편과 아빠를 비교해보면 정말 눈에 띄게 세상이 변한 걸 느껴요. 예를 들면, 우리 남편은 내가 쉴 수 있도록 대신 식사준비를 한다거나, 이런 저런 집안일을 해주거든요.


Q. 혹시 일하는 부모들을 위해 마련된 정책이나 제도에 대해 들어볼 수 있을까요? 

팬데믹 기간동안 정부가 아이마다 양육비용에 대한 보조금을 지급해 주었지만 언제나 그래왔던 것은 아니에요. 대부분의 부모들은 근무시간 동안 공교육에 아이 케어를 의존하고 있어요.


Q. 마지막으로 ‘엄마의 일’이라는 주제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자유롭게 나눠주시겠어요? 

굉장히 흥미로운 주제였어요! 스스로를 엄청 보수적인(traditional) 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편임에도 집에 머물며 아이를 키우고 있는 (보수적인 가치를 쫓는) 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었네요. 모든 것을 다 해내는 워킹맘들과 나 자신을 비교하지 않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나는 지금 내 모든 주의를 가족에게 기울이며 느끼는 이 평화로움에 감사해요.


엄마와 아이의 동반성장 커뮤니티_점핑마더 이지우

22개월 딸을 키우면서 엄마와 아이의 동반성장을 위한 커뮤니티 “점핑마더” 운영 중

http://cafe.naver.com/jumpingnaeun

https://www.instagram.com/jumping_mother


최근에 어떤 자료를 찾을 일이 있어서 지우 이름을 나의 메일함에서 검색해 본 적이 있다. 검색결과에는 10여년 전 본인의 전공과목 노트필기를 몽땅 보내줬던 메일이 아직까지도 남아있었다.


    “언니, 기국 (기업과 국제환경) 듣는구나! 나머지 필기는 넷북에 해놔서~ 첨부파일: 기국.zip”


학교에서 함께 공부했던 지우는 천상 Giver였다. 언제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신의 지식으로 사람들을 도울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고 눈을 반짝이며 말하던 그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내 인생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책 중 하나인 법륜스님의 책 <행복>도 그녀가 어느 날 선물해 준 책이었다. 그런 그녀가 아이를 낳고 키우다가 엄마와 아이의 동반성장을 위한 컨텐츠를 만든다고 했을 때 “오잉?”이 아니라, 고개가 끄덕여졌던 것도 내가 아는 그녀의 결에 너무나 잘 맞아 떨어지는 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일하랴 육아하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흔쾌히 나의 인터뷰 요청에 응해준 그녀와 밤 11시에 줌으로 마주 앉았다.


Q. 간단하게 자기 소개 부탁드려요.

22개월 딸을 키우며, 아이와 부모에게 도움이 되는 성장 컨텐츠를 만들고 있는 이지우입니다.


Q. 아이를 낳고 전직을 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이전 직장을 그만두기로 결정하게 된 상황과 그 당시의 고민들에 대해 듣고 싶어요.

일을 그만두려고 생각 한 적은 없었는데 낳고 나니 상황이 어쩔 수 없었어요. 육아를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아이가 무척 예민하고 순하지 않은 편이어서 시터분들이 자꾸 그만두셨어요. 시터가 다섯번 째 바뀌는 상황에서 더 이상의 교체는 아이한테 좋지 않겠다는 생각이 드는거에요. 어린이집은 자리도 없었고, 시터를 구하는 것이 녹록치도 않았구요.


Q. 남편이 육아휴직을 할 수는 없었나요? 왜 꼭 지우가 그만뒀어야 했는지 궁금하네요.

남편의 회사가 보수적인 분위기여서 남직원의 육아휴직을 보는 시선도 곱지 않았고, 먼저 육아휴직을 하며 제가 주양육자 역할을 해 왔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제가 자연스럽게 계속 육아를 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어요.


Q. 하던 일을 굉장히 좋아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많이 속상했겠어요.

그 당시에는 억울하고 부정적인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인생의 큰 위기였지만 덕분에 새로운 것들을 시도해 볼 기회가 되지 않았나 지금은 그렇게 생각해요.


Q. 조직에서도 일 해 봤고, 지금은 개인사업을 운영하고 있잖아요. 육아를 위해선 어떤 업무 환경이 더 낫다 싶은 생각이 들던가요?

많은 분들이 아이와 시간을 더 많이 보내려고 직장을 그만두고 개인 사업을 해볼까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사실 그런 접근은 잘못된 것 같아요. 사업은 내가 시간을 조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긴 하지만, 해야 하는 일의 총량이 결코 적지 않아요. 사업화하고 싶은 것이 있을 때 해야지, 아이와의 시간을 위해서 사업을 할 건 아닌 것 같아요.


Q. 엄마와 아이를 위한 컨텐츠를 제작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간단한 소개와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얘기해주세요.

제 아이는 까다롭고 예민한 편이에요. 너무 힘들게 느껴지니깐 답답해서 육아서를 탐독하며 공부를 시작했어요. 아이의 발달 과정에 대해 공부하니깐 까탈스럽고 힘들게만 느껴졌던 아이가 이해되기 시작하더라구요.

아이가 4개월이 됐을 때부터는 그간 공부한 것들을 인스타그램으로 공유하기 시작했어요. 그때는 사업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기 보다는 내 아이가 살아갈 사회에 좋은 아이들이 많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 아이를 키울 엄마들에게 지식을 나눠주자는 생각이었죠. 초반엔 책육아에 대한 정보를 많이 올렸는데 그와 관련해서 아이 책을 추천해달라는 요청이나 공구를 진행해 달라는 요청이 생각보다 많이 들어왔어요. 그래서 추천도 하고 공구도 했더니 이젠 '산 책을 어떻게 하면 잘 활용할 수 있는 지'알려달라는 요청이 들어오더라구요. 그래서 책육아 스터디를 운영하게 됐구요. 그러다가 엄마인 우리들도 육아과정에서 얻는게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육아는 '아이위주의 것'이라고 흔히들 생각하는데, 아이에게 주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면 아이에게 바라는 게 많아질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엄마와 아이의 동반 성장을 위한 정보제공에 초점을 맞춰보았어요. 아이에 대한 무지한 사랑은 오히려 안 하느니만 못하다고 생각해요. 알고 육아를 해야 하는데, 육아에 대한 정보가 너무 많으니 정작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게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수많은 육아서의 내용들 중에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들을 간추려서 제공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육아의 기본은 엄마의 마음다스림, 감정컨트롤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가능하려면 엄마의 마음그릇이 더 커져야해요. 그렇게 그릇을 키울 수 있는 인문학 컨텐츠도 같이 제공하고 있어요. 꼭 육아서가 아니라 문해력을 기르고 다양한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인문학책들을 소개해주는데 예를 들면, 연말에는 트렌드 2023 같은 책도 큐레이션 해볼 예정이에요.


Q.방향성을 갖고 컨텐츠를 만드는 만큼 엄마의 삶이나 육아와 관련한 본인만의 뚜렷한 철학이나 소신이 있을 것 같아요. 공유해주시겠어요?

저도 아직 저의 방향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다른 분들과 함께 가는 거에요. 개인적으로는 공부나 성적 위주로만 아이를 평가하거나 낙오자로 낙인 찍지 않고  아이 하나하나의 고유한 재능을 인정해주는 사회가 되길 소망해요.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그런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바라구요. 그렇게 키워나갔으면 좋겠어요.


Q.다수의 엄마들과 소통하며 일을 해왔을 텐데 그 과정에서 느꼈던 엄마들의 긍정적인 변화 공유해주실 수 있나요?

책육아를 할 때는 아이랑 둘이 있는 시간에 뭘 해야 될 지 모르겠고, 의미도 못 찾겠고, 우울했는데 육아에 활력이 됐다는 피드백이 가장 반가웠어요. 지금 점핑마더를 통해 제공하는 뉴스레터 같은 경우에는 독박육아하며 우울하고 힘들었던 엄마들이 뉴스레터를 통해 육아하는 상황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면서 행복했졌다고 피드백을 줬을 때 가장 기뻤어요.


Q. 일상의 모습도 궁금해요. 육아와 사업을 병행하는 삶은 어떤가요?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4시에 하원해요. 그 동안에 일을 하죠. 시어머니가 매일은 아니지만 주 2~3회 가사와 육아를 도와주러 오세요. 아이가 하원하면 어머니와 같이 육아를 하다가 아이가 잠들면 밤 10시부터 ~ 새벽 3시정도에 또 일을 해요.


Q. 지금 이 프로젝트를 진행 하다보니 사람이 어떤 양육의 형태를 취하게 될 때는 나름의 전제하는 조건들이 있더라구요. 예를 들면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 라는 전제를 두고 엄마가 행복한 일을 찾아 한다던가, 저 같은 경우엔 '아이가 준비될 때까지는 정서적으로 안정된 주양육자가 직접 양육하는 것이 가장 좋다'라는 전제를 두고 직접 양육을 했다던가. 당신의 전제는 무엇인가요?

사랑에 몰두하다 보면 단단하고 일관성 있게 대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고, 그렇다고 엄마가 엄마의 행복만 생각하거나 본인의 일에만 몰두하면, 소중한 아이에게 사랑과 관심을 주지 못하게 되구요. 엄마와 아이 둘 다 행복해 질 수 있는 각자의 밸런스를 찾는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 저의 전제일 것 같아요.


Q. 끝으로 여성의 일과 육아의 병행이라는 주제와 관련해서 꼭 남기고 싶은 말 한 마디 부탁드려요.

엄마들이 본인 스스로와 대화를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그 대화끝에 내린 결론이 내가 계속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버텨야 하는거고, 일을 하는게 행복한 사람이 아니라면 다른 길을 갈 수도 있는 거고. 그렇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가야 지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아직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중이랍니다.




엄마들에게는 남들이 다 알지 못하는 2~30여년의 역사가 있고, 그 오랜 기간 견고해진 가치관이 있다. 그 가치관은 그 사람의 육아의 형태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한 맥락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워킹맘이나 전업주부이기 이전에 '나'이고 각자가 살아온 맥락에서 '나다운 엄마'가 되었을 뿐이다. 그렇기에 모든 엄마들을 '애를 내팽개치고 일하는 워킹맘'이나, '집에서 놀고먹는 전업주부'로 단순하게 나누어서 평가해선 안된다.


우리가 함께 보고 이야기 나눴던 영화 <82년생 김지영> 마지막에 김지영은 자신을 향해 '맘충'이라며 비아냥 거리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저를 아세요?



모든 엄마들의 선택과 삶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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