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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나 Sep 15. 2023

우울증 약을 먹어보았다

첫째까지 재운 뒤 1시간 동안이나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마루에 누워 무기력에 절여져있던 나는 일어나 부엌으로 가 '그 약'을 꺼내었다. 두려워하며 고민할 시간조차 주기도 싫어 바로 꿀떡 삼켜버렸다.


이틀 전 받아왔지만 망설이며 먹지 않던 항우울제였다.


둘째를 임신하면서 결심한 것이 있었다. 지나고보니 그것이 산후우울증이었구나 싶었던 그 호르몬의 폭풍우가 찾아오면 지체없이 약을 먹겠다고. 첫 아이 출산 후 한참동안 남편이 감내해야 했던 그 심한 짜증과 화로부터 첫째를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아이가 80일을 지난 어느 날 그 파고가 찾아다. 폭발적인 분노와 가라앉혀지지 않는 짜증, 곤두서있는 예민함. 그런데 임신기간 내내 대비하고 생각한 것이 무색하게도 나는 그 변화의 원인을 깨닫지 못하고 반복해서 폭발하고 후회하고 자책할 뿐이었다.


끝없는 분노와 짜증으로 온 가족을 질리게 하던 어느날 아침 화장실에서 출산 후 첫 생리를 확인했다. 고민할 것도 없이 정신의학과 초진을 예약했다. 다음 배란일 전에 초진이 가능한 병원은 몇 군데 없었다.


초진일, 기본문진 후 증상을 설명하였더니 별다른 주의사항 같은 것도 없이 일주일 치 처방이 나왔다. 이렇게 쉽다니. 


거침없이 진료와 처방을 받았음에도 그걸 열어 입에 넣는 것이 스스로에게 타당해지는데에는 상당한 분노와 우울, 무기력이 필요했다.




약을 먹고 잠다음날 일어나 쇼핑몰에 갔다


한참간 신호가 없는 도로 에서 잠시 멍 해졌다. 몇년만일지 모를 잠잠한 마음을 느꼈다. 정지신호 앞에 서있는 차들을 보고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었다. 마음이 잠잠하다고 해서 감정들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모든 감정들이 입을 닫은채 서서 나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뒷차의 경적소리에 엑셀을 밟았다. 같은 상황에서 느꼈어야 했을 놀람과 당황, 허둥댐은 없었다.


달리는 길 또다시 생각했다. '저 멀뚱히 서서 나를 지켜보는 감정들의 시선은 불편하지만 이 고요한 상태는 참 평화롭구나.' 그 생각은 이내 엉뚱하게 흘러갔다. '나만 없어지면 남편도, 우리 딸도 이렇게 평온하겠다. 의사가 약을 되게 쉽게 주던데 약을 모아볼까? 우울증약을 많이 먹어도 죽을 수 있는건가?'


어떤 슬픔도 좌절도 실리지 않은 건조한 자살사고였다.


쇼핑몰에 도착했다. 아이 분유와 물은 잘 챙겨놓고 젖병을 안 챙긴 것이 생각났다. 희안하게 화는 나지 않았다. 육아용품을 파는 스토어에 들어가 젖병 코너를 한 15분 동안 서성였다. 한 코너에 서서 고민하기에 긴 시간이다.


그럼에도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고 포기했다. 다시 20분을 운전해 집으로 돌아왔다. 젖병을 챙겨 다시 20분이 걸려 쇼핑몰로 향했다. 이토록 나답지 않은 멍청한 행동에 헛웃음이 날 뻔 했지만 머리속 웃음은 얼굴로 나올 방법이 없는듯했다.


나에겐 선민의식과 자의식과잉이 버무려진 믿음이 있다. 머리와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잘 알아차리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 능력이 어떻게 쓰이게 될지는 아직도 잘 모르지만 내 사명은 그 능력에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건 능력이 아니라 꽤 오랜시간 상담을 하고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길어지며 생긴 나쁜 습관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런 믿음때문에 나는 내가 항우울제를 먹었을때 머리와 마음에서 일어난 일을 매우 잘 느꼈다고 생각한. *약에 대한 반응은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저의 경험에 국한한 표현임을 알려드려요*


우울증약을 먹어도 우울하고 불안한 감정은 거기에 그대로 있었다. 그저 넘치는 세로토닌에 입막음 당하고 있었을 뿐.


 반면 생각은 한없이 가볍고 단순해졌다. 감정이 실리지 않기 때문이다. 빨간불이 보이면 서는거고, 초록불에 뒷차가 경적을 울리면 출발하는 거다. 아기 젖병을 안 가져왔으면 왕복 40분 길이라도 다시 가져오면 되는 거고, 정없는 평화로움을 영원히 누리기 위해선 죽으면 되는 거고.


감정이 더 이상 머리속을 헤집어 놓지 않으면 좋기만 할 줄 알았는데 나는 왜 그렇지 못한것일까 생각을 했다. 도달한 곳에는 "네 감정이 곧 너야. 불안도 우울도 다 너야." 라는 답이 있었다. 호르몬은 그런 나의 부정적인 감정을 과장시킬 뿐, 없는 없는 우울과 불안을 만들어낸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널을 뛰는 호르몬조차 '나'였다. 그리고 나는 놀랍게도 나를 정말 사랑하고 있었다. 몇년간 잠못들게 하고, 울고 악쓰게 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는 죄책감을 느끼게 하던 그 우울과 불안조차 사랑하고 있었다.


약을 던 중 나는 심한 두통과 구토에 시달렸고 맞는 약을 찾는데는 시간이 걸릴 수 있다며 다른 약을 시도해보라는 조언에도 나는 더이상 먹지 않겠다고 했다. 어짜피 항우울제의 작용기전은 같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나다움의 근원인 우울과 불안을 닥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대신 내 마음의 돋보기가 그곳을 들여다 보기 보다는 다른 곳을 향하게 하기로 했다.


나는 러닝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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