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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나 Mar 23. 2022

누구에게나 힘이 있음을

이 세상과 삶을 사랑해

 최근에 다시 상담을 받기 시작했어. 큰 문제가 있다기 보다는 그냥 마음을 비워낼 때가 된 것 같아서 말이야. 여하튼 내 이야기를 3주 정도 듣더니 상담사가 묻더구나. "토리씨는 어린시절의 일들을 참 힘들게 겪어낸 거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토리씨의 인생을 더 좋은 방향으로 끌고가려 애쓸 수 있었던 그 힘은 어디서 온 걸까요?"


질문을 받았을 당시에는 나에게 사랑을 주었던 여러 사람들 덕분인 것 같다고 답변을 했어. 그런데 며칠간 그 질문이 내 마음속을 떠나지 않더구나. 혼자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계속 찾다 아주 중요한 걸 깨달았단다. 그리고 1주일 뒤 상담사와 만나 이렇게 이야기 했어.


"선생님, 곰곰히 생각해봤는데 그냥 제 안에 있었던 것 같아요.

이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고 이 삶을 너무 사랑하는 마음이요.

이 세상도, 이 삶도 너무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마음이 어디서부터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제 마음속에 원래부터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떻게든 이 삶을 잘 살아내고 싶은 것 같아요."    




엄마만 특별하게 그런 마음과 힘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단다. 누구에게나 힘들어 죽겠는 와중에도 인생을 끌고 갈 힘이 있고, 이 삶을 잘 살아내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생각해. 나의 상담사처럼 짚어주고 물어봐 주는 사람이 여태 없어서 생각해보지 않은 것일 뿐.


삶을 살아내는 사소한 모든 행위들...


아침에 눈을 뜨면 잠들기 전까지 해야할 일을 꾸역꾸역 해내고, 아프면 약을 찾아 먹고, 씻고, 손톱이 너무 길면 깎고, 은행에 가거나 마트에 가는 수고로움을 감내하는 그런 모든 일상의 행위들을 비가오나 눈이오나, 내 마음이 즐거우나 슬프나 무언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야.


너무나 즐겁고 행복한 날엔 하루를 살아내는 게 별 거 아닐 수 있지만, 마음이 슬픈 날에도 하루를 살아낼 수 있는 그 힘. 


어떤 사람은 사는 게 너무 힘들어 죽지못해 산다고 표현하지만 죽는 선택지도 있는데 굳이 살기를 선택하는 그 이유도 바로 그 힘 아닐까?


모순적이지만, 절망의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도 어찌보면... 너무 삶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해서 세상에게 버림받은 듯한 그 감정을, 삶을 더 이상 나아지게 할 수 없다는 절망감을 절절하게 느꼈던 것 아닐까.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어떻게 하면 그 불행을 벗어날 수 있는 지에 대한 해답지 보다는 내가 이 세상과 삶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래서 내가 얼마나 잘 살아내고 싶어하는지에 대한 자각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누군가 힘들어하고 있다면 옆에서 이렇게 말해주렴.


"그렇게 힘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꿋꿋이 살아오셨네요. 그 와중에 이러이러한 것들도 해내셨네요. 당신도 이 세상을, 이 삶을 잘 살아내고 싶어하시는 것 같아요."  


J 너도 말이야, 여러 가지 일이 있었겠지만 오늘 하루를 또 살아냈네.

더 나은 삶으로 향하기 위해서 너가 애 쓴다는 것을 엄마는 다 알고 있어.

꼭 그게 열심히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어도,

너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많은 괴로움과 갈등들을 이겨내며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너무 장하다.






아까 상담이야기 말인데, 내가 저렇게 대답을 하고 나자 상담사가 되물었어.

"그걸 알고 나니 어떤 생각이 드세요?"


아, 나는 정말 축복받은 사람이구나. 참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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