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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승혁 Jul 07. 2021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정치 #국회 #여의도 #사라진_질문

그제였나. 빗물이 왁자하게 쏟아지다 별안간 멈췄다. 여름이었다.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앞에 두고 노트북을 두드렸다. 알아내야 할 것이 많아서 전화를 들었다. 모 관계자는 질색했고 모 관계자는 받지 않았다. 텅 빈 찬합이 덜컹대는 소리가 들렸다. 알루미늄 필통이었다. 안에는 스테이플러만 들어있었다. 펜 한 자루 없어도 기자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오묘했다. 다시 전화를 들었지만 답은 없었다. 무거웠다. 비리와 비위와 비밀과 비탄이 비처럼 내리는 곳이 여의도였다. 단톡방에서는 쿨한 척 웃긴 짤방으로 정치를 가벼이 농했지만 도피성일 뿐이었다. 도망갈 수 없었다. 암막 뒤에서는 극렬한 이익 투쟁이 벌어졌고 나는 치밀하게 뒤져야했다. 무거웠다. 스스로가 정치라는 중후장대한 언어를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의문스러웠다. 등짐이 버거워 주저앉은 낙타가 될 기분.

정치라는 단어를 처음 알았을 때는 그 뜻이 '신념'이나 '이념'인 줄 알았다. 국회에 들어와보니 그 뜻이 '먹고사니즘' 정도로 들렸고 이제는 그냥 '순이익' '겉포장' 정도로 들린다. 감자칩을 샀는데 뜯어보니 과자는 한 조각도 없고 그냥 질소만 들어있었다. 감자칩 공장에서는 봉지의 디자인과 재질을 평가하고 안에 든 질소가 친환경이냐 아니냐 따지며 열을 올린다. 우리 공장이 옆 공장보다 질소가 풍부하다고 자랑도 한다. 그러나 정작 감자가 왜 없냐는 질문에는 쉬쉬하고 있다. 감자칩을 샀으니까 감자칩을 달라고 요구하면 '저 공장에서도 안 주는데 왜 나만 욕하느냐' 모두가 모두를 탓하며 사실상 아무도 감자칩을 안 만들었다. 그런데 뒤에서는 자기네들끼리 감자칩을 와작와작 씹어먹는 소리가 난다. 그걸 찾아내야하는데 안 보인다. 누가 빼돌렸는지, 어디서 빠져나왔는지, 어지럽다. 이렇게 질문 속에서 헤매다보니 '감자칩에 감자칩이 없는 건 정상'이라는 해괴한 논리에 수긍하고 싶어진다. 그게 편하니까.


오늘도 감자칩을 찾는데 모두 포장지 이야기만 한다. 스스로가 무능한 듯 하여 점점 말수가 준다.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감자칩이 있느냐고 직설적으로 묻는 좌파조차 실종된 상황이다.


6월23일 밤 9시 홍대 커피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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