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첫 번째 만다라 그리기

7화: 첫 번째 만다라 그리기

by 시더로즈







*다음날 오전 7시, 김포공항*


“짐이 너무 많은 것 같은데?”


린이 강설의 큰 백팩을 보며 웃었다.


“처음 해외여행이라서… 뭘 가져가야 할지 몰라서요.”


강설이 부끄럽게 말했다. 실제로는 해외여행이 아니라 생사를 건 모험이었지만, 긴장을 풀기 위해 평범한 여행인 척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언제 오세요?”


“저기 오신다.”


할머니가 의외로 가벼운 차림으로 나타났다. 작은 배낭 하나만 메고 있었다.


“할머니, 짐이 그게 다예요?”


“오래 살다 보면 정말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구분하게 된단다.”


할머니가 미소지었다.


“그리고 백두산에는… 특별한 짐이 더 필요하지.”


할머니가 배낭에서 작은 나무 상자를 꺼냈다. 상자에서는 미세한 푸른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게 뭐예요?”


“덴진이 남긴 나침반이야. 성역을 찾을 때 필요해.”


“1000년 된 나침반이요?”


린이 놀랐다.


“어떻게 아직까지…”


“프로스트 만다라로 만든 물건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아.”


할머니가 설명했다.


“이 나침반은 각 성역에 숨겨진 기억의 조각들을 감지할 수 있어.”


-----


*오후 2시, 중국 연길공항*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추위가 몰려왔다. 서울보다 훨씬 춥고 건조했다.


“여기서 차로 2시간 더 가야 해.”


할머니가 말했다.


“백두산 천지까지는 아직 멀어.”


공항에서 나와 택시를 잡는데, 할머니가 운전기사와 유창한 중국어로 대화했다.


“할머니, 중국어도 하세요?”


“설화회 일 하면서 배웠지. 세계 각국 성역을 다녀야 하니까.”


택시가 출발하자, 창밖으로 광활한 설원이 펼쳐졌다. 끝없이 이어지는 하얀 대지가 장관이었다.


“와…”


강설이 감탄했다.


“이런 풍경은 처음 봐요.”


“백두산 성역은 가장 아름답고 동시에 가장 위험한 곳이야.”


할머니가 말했다.


“1000년 전 덴진이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고.”


차가 산길로 접어들면서 경치가 더욱 웅장해졌다. 눈 덮인 침엽수들이 양옆으로 늘어서 있었고, 멀리서는 백두산의 웅장한 모습이 보였다.


“저기가 천지인가요?”


강설이 산 정상을 가리켰다.


“아니야. 천지는 더 깊숙한 곳에 있어.”


린이 지도를 보며 말했다.


“일반 관광객들이 가는 곳 말고, 더 안쪽의 숨겨진 지역이야.”




*오후 4시, 백두산 관광지구 입구*


“여기서부터는 걸어가야 해.”


할머니가 나침반을 꺼냈다. 나침반의 바늘이 일반적인 북쪽이 아니라 산 깊숙한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저쪽 방향이야.”


세 사람이 관광 코스를 벗어나 산길로 들어갔다. 발목까지 빠지는 눈을 헤치며 걷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상해.”


린이 중얼거렸다.


“너무 조용한데? 새소리도 안 들려.”


맞았다. 평소라면 들렸을 자연의 소리들이 전혀 들리지 않았다. 마치 산 전체가 깊은 잠에 빠진 것 같았다.


“성역 근처에 오면 이래.”


할머니가 설명했다.


“고대의 힘이 주변 환경에 영향을 미치거든.”


1시간을 더 걸어가니, 앞에 기묘한 광경이 펼쳐졌다.


거대한 얼음 동굴이 산 중턱에 뚫려 있었다. 동굴 입구는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것 같지 않았다. 너무 완벽한 원형이었다.


“저게 입구예요?”


“그래. 백두산 성역의 입구야.”


할머니의 목소리에 경외심이 묻어났다.


“70년 만에 다시 보는군.”


동굴 입구에 다가가자, 나침반의 빛이 더욱 밝아졌다. 그리고 강설도 느낄 수 있었다. 동굴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가 자신을 부르고 있다는 것을.


“덴진의 기억이 여기 있어요.”


강설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들어가 볼까요?”


“잠깐.”


린이 앞을 막았다.


“누군가 먼저 와 있어.”


동굴 입구 주변 눈에 발자국이 여러 개 찍혀 있었다. 그것도 아주 최근의 것들이었다.


“혼돈교단?”


“아마도.”


할머니가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무극이 우리보다 먼저 와 있을 가능성이 높아.”


“그럼 어떻게 하죠?”


“들어가야지.”


강설이 단호하게 말했다.


“피할 수도 없고, 피해서도 안 되잖아요.”


린과 할머니가 서로를 바라봤다.


“설아 말이 맞아.”


린이 말했다.


“여기서 물러서면 계속 쫓겨 다닐 수밖에 없어.”




*동굴 내부*


동굴 안은 예상과 달리 어둡지 않았다. 벽면 곳곳에 자연적으로 빛나는 얼음 결정들이 박혀 있어서 환상적인 조명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아름다워…”


강설이 감탄했다.


하지만 아름다움 뒤에 숨은 위험을 놓치지 않았다. 공기가 너무 차가웠고, 발걸음마다 바닥의 얼음이 소리 없이 깨져나갔다.


“조심해. 바닥이 불안정해.”


할머니가 앞장서서 걸었다.


동굴이 점점 깊어질수록 나침반의 반응이 강해졌다. 그리고 강설도 점점 더 강한 감응을 느꼈다.


‘덴진… 정말 여기 있구나.’


10분쯤 걸어가니 동굴이 넓은 공간으로 이어졌다. 천장이 높고 웅장한 지하 광장 같은 곳이었다.


그리고 그 중앙에…


“와…”


거대한 얼음 만다라가 바닥에 새겨져 있었다. 지름이 10미터는 족히 되어 보였고, 그 복잡하고 아름다운 문양은 지금까지 본 어떤 만다라보다도 정교했다.


“덴진의 마지막 작품이야.”


할머니가 경외감에 젖어 말했다.


“1000년 전 그가 마지막 봉인을 만들 때 새긴 원형 만다라.”


강설이 만다라에 다가가려는 순간, 동굴 저편에서 박수 소리가 들렸다.


“감동적인 재회로군.”


익숙한 목소리였다. 검은 후드를 쓴 인물이 그림자 속에서 나타났다.


“하지만 아쉽게도 여기서 끝이야.”


“혼돈교단!”


린이 즉시 전투 태세를 취했다.


“왜 방해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지?”


“방해? 아니야.”


후드 인물이 웃었다.


“오히려 돕고 있었지. 무극님의 명령대로.”


“무슨 뜻이야?”


“프로스트 만다라의 계승자가 강해져야 우리도 더 큰 힘을 얻을 수 있거든.”


후드 인물이 손짓하자, 동굴 곳곳에서 더 많은 혼돈교단 멤버들이 나타났다.


“하지만 너무 강해지기 전에 적당히 견제는 해야지.”


전투가 시작될 것 같은 순간, 강설이 앞으로 나섰다.


“잠깐요.”


“설아!”


린이 말렸지만, 강설은 만다라를 향해 걸어갔다.


“제가 여기 온 목적은 싸우는 게 아니에요.”


강설이 거대한 만다라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덴진의 기억을 찾는 거예요.”


그녀가 두 손을 만다라 위에 올리는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만다라 전체가 밝게 빛나기 시작한 것이다.


“뭐야?”


혼돈교단 멤버들이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만다라의 빛이 점점 강해지더니, 갑자기 강설을 감쌌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의 의식이 또 다른 세계로 빠져들었다.


-----


*1000년 전, 백두산 정상*


“드디어 왔구나.”


덴진이 강설을 맞이했다. 이번에는 티베트가 아니라 백두산의 웅장한 풍경이 배경이었다.


“여기가 백두산 성역이에요?”


“그래. 내가 동양의 기운을 모아 만든 첫 번째 성역이지.”


덴진이 주변을 가리켰다.


“이곳에서 나는 동양 철학의 핵심을 깨달았어. 음양의 조화, 오행의 순환, 그리고…”


덴진이 강설 앞에 작은 만다라를 그렸다.


“첫 번째 진짜 만다라를 완성했지.”


“첫 번째요?”


“지금까지 네가 쓴 것들은 만다라의 흉내에 불과해.”


덴진이 설명했다.


“진짜 만다라는 단순히 현실을 바꾸는 게 아니라, 현실을 이해하는 거야.”


“이해한다는 게?”


“세상의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어. 네 마음과 외부 현실, 과거와 현재, 생명과 죽음… 모든 게 하나야.”


덴진이 더 복잡한 만다라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것을 깨달을 때, 너는 첫 번째 진정한 만다라를 그릴 수 있게 돼.”


“어떻게 하면 되는데요?”


“마음을 완전히 비워. 그리고 세상과 하나가 되는 거야.”


덴진의 만다라가 완성되자, 주변의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강설이 실제로 볼 수 있었다. 눈송이와 바람, 나무와 돌, 심지어 자신의 숨결까지도 모든 것이 빛의 선으로 이어져 있었다.


“와… 이게 진짜구나.”


“이제 네 차례야.”


덴진이 말했다.


“첫 번째 진정한 만다라를 그려봐.”


-----


*현재, 백두산 동굴*


강설이 눈을 떴을 때, 그녀 주변의 모든 것이 달라 보였다.


린, 할머니, 심지어 혼돈교단 멤버들까지도 빛의 실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모든 존재가 하나의 거대한 패턴의 일부였다.


“이제… 알겠어요.”


강설이 일어서서 두 손을 들어올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평소처럼 공중에 그리지 않았다. 대신 그녀 자신이 만다라의 중심이 되었다.


“프로스트 만다라: 만물의 조화!”


강설을 중심으로 거대한 만다라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동굴 전체를 감쌀 정도로 큰 만다라였다.


“불가능해!”


혼돈교단 멤버들이 놀라며 소리쳤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만다라가 그들을 공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신 모든 존재를 포용했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어요.”


강설이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도, 당신들도, 모두 같은 세상의 일부예요.”


만다라의 빛이 혼돈교단 멤버들에게도 닿았다. 그러자 그들의 검은 기운이 점점 정화되기 시작했다.


“이런… 이럴 수는…”


후드 인물이 당황했다.


“우리의 혼돈을… 받아들이고 있어?”


“혼돈도 질서의 일부예요.”


강설이 미소지었다.


“모든 것에는 존재 이유가 있어요.”


만다라가 완성되자, 동굴 전체가 평화로운 빛으로 가득 찼다. 혼돈교단 멤버들도 더 이상 적대적이지 않았다.


“이게… 진정한 프로스트 만다라구나.”


할머니가 감탄했다.


“포용하는 힘…”


린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싸우지 않고도 이길 수 있는 힘이야.”


하지만 그 순간, 동굴 밖에서 거대한 폭발음이 들렸다.


“크하하하!”


익숙하지만 훨씬 강력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극이 직접 나타난 것이었다.


“재미있는 장난감을 만들어냈군.”


동굴 입구에 무극이 서 있었다. 검은 눈보라를 몰고 온 그의 모습은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진짜 시험은 지금부터야.”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