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
해가 중천에 떴을 때 찾아오는 정원이 있습니다.
그 정원의 중앙에는 갈림길이 있습니다. 어디로든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디로도 갈 수 없는 그런 길. 수많은 발자국들이 모여 있어서 어느 것이 처음 길인지, 어느 것이 맞는 길인지 알 수 없게 만드는 그곳.
사람들은 그곳을 '미로의 언덕'이라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 미로 속에서 살고 있는 정령이 있었습니다. 이름은 헤미.
헤미는 길을 잃은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어느 쪽이 맞는 길일까', '내가 잘못 왔나', '돌아가야 할까, 앞으로 나아가야 할까' - 그 모든 흔들림과 의심의 목소리들. 헤미는 그것들을 듣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헤미를 도와달라고 청했습니다.
"어느 길이 정답인지 알려줘. 어디로 가야 할지 말해줘."
하지만 헤미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혼란은 잘못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오후, 한 여인이 미로의 언덕에 도착했습니다.
서류 가방을 들고, 스마트폰을 움켜쥔 채. 그녀의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패여 있었습니다.
"여기가... 정말 이곳이 맞나?"
여인은 중얼거렸습니다. 지난 3년을 직장에 바쳤는데, 갑자기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사랑하던 일이 힘들어 보였고, 남겨둔 꿈들이 자꾸만 떠올랐습니다. 지금 이 길이 맞는 길인지, 아니면 완전히 잘못 돌아선 건지.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았습니다.
헤미는 조용히 그녀 곁에 나타났습니다.
"길을 잃으셨나요?"
여인은 놀라며 헤미를 바라봤습니다.
"모든 것이 섞여 있어. 내가 누군지도, 무엇을 원하는지도. 마치 내 안에 여러 사람이 살고 있는 것 같아."
헤미는 미소 지으며 여인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럼 함께 걸어볼까요? 하지만 약속은 못 드립니다.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두 사람은 미로 속을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여인이 불안해했습니다. "이 방향이 맞나요? 아니, 저 방향이 맞나요?"
하지만 헤미는 계속 걸어갔습니다. 막다른 길도 있었고, 원래 왔던 자리로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길을 헤매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매번 길을 돌아설 때마다, 여인의 눈에 뭔가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한 모퉁이에서는 자신이 어렸을 때 좋아하던 그림 같은 구름을 봤고, 다른 길에서는 누군가의 웃음소리를 들었고, 또 다른 갈림길에서는 자신이 정말 원했던 것들의 조각들을 발견했습니다.
"이건... 무엇인가요?"
여인이 물었습니다.
헤미가 천천히 말했습니다.
"혼란이에요. 혼란은 나쁜 게 아니라, 당신 안에 많은 것들이 함께 살고 있다는 뜻이에요. 그 모든 것을 한 번에 볼 수 없어서, 헷갈리고 흔들리는 거예요."
미로의 한가운데 이르렀을 때, 여인은 주저앉았습니다.
"그럼 언제까지 이 상태인가요? 언제까지 이렇게 혼란스러울 건가요?"
헤미는 여인 옆에 앉았습니다.
"혼란은 끝나지 않아요. 대신 변해요. 처음에는 두려운 혼란이지만, 자꾸만 마주하다 보면 그것은 선택이 되고, 나중엔 자유가 돼요."
여인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자유요?"
"네. 지금 당신이 혼란스러운 건, 당신 안에 여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에요. 직장도 좋고, 꿈도 포기할 수 없고, 안정도 원하고, 모험도 원하는... 그 모든 것이 당신 안에 함께 있다는 뜻이에요."
헤미가 손가락으로 지면을 가리켰습니다.
그곳에 작은 새싹들이 돋아나고 있었습니다. 한 식물이 여러 줄기를 가지고 자라나는 모습이었습니다.
"식물도 처음엔 혼란스럽게 여러 방향으로 자라요. 어느 방향이 맞는지 모르니까. 하지만 그 모든 방향이 그 식물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요."
해가 지막 빛을 남기고 저물어갈 때, 여인은 미로에서 나왔습니다.
실제로 어디로 나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처음 들어온 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나왔거든요.
하지만 여인의 가방은 더 가벼워 보였고, 그녀의 얼굴에는 한 줄기의 빛이 남아있었습니다.
"아, 헤미. 고마워요. 그런데... 혼란이 사라지지 않으면?"
여인이 돌아보며 물었습니다.
헤미는 미로의 입구에서 미소 지으며 말했습니다.
"사라지는 게 아니라, 익어가는 거예요. 당신은 혼란 속에서 자신을 더 깊이 알아가고 있어요. 그것이 가장 중요한 길이에요."
당신도 혹시 모든 것이 혼란스러워서, 어느 것도 정확히 선택할 수 없어서 밤을 새운 적이 있나요?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확실하지 않아서, 이 불안감이 나쁜 신호는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나요?
헤미는 말합니다.
혼란은 당신이 약해서, 결정력이 없어서 오는 게 아니라고. 당신 안에 정말 많은 것들이 있기 때문에 오는 것이라고.
당신은 여러 방향으로 자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헷갈리고, 그래서 흔들립니다. 하지만 그것은 나약함이 아니라 가능성입니다.
오늘 밤, 당신 안에 존재하는 모든 선택지들을 받아들여보세요.
한 방향이 아닌 여러 가능성 속에서, 이렇게 속삭여보세요.
"나는 완벽하게 정해진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아. 내 안의 모든 것이 함께 자라가고 있어."
혼란은 끝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혼란 속에서 당신은 점점 더 자기 자신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혼란은 나쁜 신호가 아니에요.
당신 안에 많은 것들이 함께 살고 있다는 뜻이에요.
여러 방향으로 흔들리는 것은
약함이 아니라 가능성이에요.
미로 속을 헤매는 것 같아도,
당신은 자신을 더 깊이 알아가고 있어요.
언젠가 그 혼란이 선택이 되고,
더 나중엔 자유가 될 거예요.
현재의 혼란 속에서도,
당신은 이미 자라나고 있어요.
— 미로의 정령, 헤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