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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잔살롱 Aug 17. 2017

보이지 않아도 더욱 강렬한

<2017 금호영아티스트>전 at 금호미술관 / 2017년 4월 기고

어떤 종류의 기억은 특별한 노력 없이도 시냅스에 견고히 자리 잡는다. 이 기억은 스틸컷으로 남을 강렬한 자극이기도 하지만 자신도 모르는 새에 배인 새김질이기도 하다. 일상적이고 절차적인 기억은 이렇게 의지와 상관없이 몸 어딘가에 남아있는 흔적이라고 부르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금호미술관에서 열리는 네 작가의 전시, 손경화, 이동근, 최병석, 황수연의 작품을 애써 기억하려고 노력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보내는 에너지는 흔적을 남기기 충분했는데 작가의 행위와 생각, 그 꼬리를 더듬다가 자연스레 배긴 것이었다. 작품을 보면 과정의 디테일이 떠오르기 때문일 것이다. 어떻게 움직였을지, 왜 그랬을지, 어디부터 시작이었는지를 자연스레 생각하며 이야기는 이어진다.

이동근은 커다란 캔버스 천을 비행기로 접고, 또다시 접었다. 손바닥만 한 종이를 다루듯 휘두를 수는 없을 테니 도전하는 마음으로 덤볐을 것이다. 천을 펼쳐 꺾고 눌러댔을 그의 동선을 떠올려 보면 접힌 천의 선명한 선만큼이나 상상은 명확해진다. 그는 자신이 쓴 소설의 주인공을 따라 종이비행기를 접는 행동을 강박적으로 반복했다. 비행기를 접고, 색을 입히고, 다시 펴는 행위를 반복하면서 소설 속 그의 감정을 함께 떠올렸을 것이다. 한편, 그가 이번 전시에서 집중한 대상은 그린란드인데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그 나라에 매력을 느끼고 조사하여 독특한 상상을 표현했다. <Memory of Ice>는 그린란드의 빙하를 말하는 작업이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쭈글쭈글해진 색색의 ‘껍데기’들이 그 주인공. 크기 45×15×20cm의 사각형 얼음이 녹는 동안 그가 스프레이를 뿌려 코팅한 것이다. 얼음이 녹는 동안 행위는 이어지고 얼음은 차차 사각 모양을 잃는다. 그리고 남은 것은 찌그러진 색깔 껍데기다. 과연 이것을 보고 그 누가 그린란드의 빙하를 떠올릴 수 있을까. 이 작품과 빙하는 완벽히 무관해 보인다. 오히려 스프레이는 온난화의 유력한 용의자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얼음에 뿌려대는 그의 동작을 상기해보면 얘기는 조금 달라진다. 작품은 ‘빙하를 생각하며 스프레이를 뿌려대는 그’에게로 이끈다. 결국 그 작품이 가리키는 것은 빙하가 아니라 그것을 떠올리게 하는 행위의 메타포다.

최병석은‘발명품’을 내놓았다. 전시장 공간 곳곳에 숨어있는 연결 고리는 궁금증을 촉발한다. 관람객과 작품을 공유하고, 참여를 유도하는 그 ‘기계’는 비밀코드처럼 치밀하다. 빨간색 버튼을 누르면 일사불란하게 작동하고, 그 원리를 이해하도록 작가는 친절하게 아이디어 스케치를 비치해 두었다. 아이디어 스케치와 작동원리, 이것이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꼼꼼히 살펴보고 버튼도 눌러본다. 그의 생각 속을 유영하듯 이리저리 둘러본다. 작가가 내놓은 ‘사용법’ 대로 이 미로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뜯어보면, 그가 제시한 모스 부호와 비밀스러운 단서들, 버튼을 눌렀을 때 작동하는 움직임은 대체 어떻게 이어지는지 알고 싶다는 열망을 자극한다. 그 궁금증은

그가 작업을 시작한 서사의 시작점으로 관람자를 옮겨놓는다. 이 분주한 장치들을 만들면서 북적거렸을 생각의 꼬리를 자연스레 찾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곳에서 만난 네 명의 젊은 작가들이 주는 에너지는 보이지 않는 것을 떠올리게 하는 힘이 있었다. 생각을 펼쳐서 관람객과 함께하려는 그들의 방식은 ‘눈에 보기’ 좋은 작품보다 더 큰 울림을 주었기 때문이다. 손경화의 비밀스러운 공간과 주문 같은 소리는 그것을 ‘채집’하고 다니는 그의 행로를 떠오르게 하고, 황수연의 수행적인 작업

은 종이를 다루는 그의 손길과 알루미늄을 두드리는 행위를 상상케 했다. 더 오래 공간에 붙잡아, 머물고 생각하고 탐구하게 하는 그들의 전략은 제법 성공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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