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퍼블릭아트 발행 후기
이번 호 작가 조사를 하면서 알게 된 아이슬란드의 ‘성(姓) 짓는 법’은 꽤 흥미롭다. 남자인 경우 아버지(또는 어머니)의 이름에 손(son)을, 여자의 이름에는 딸이라는 의미의 도티르(dottir)를 붙이는 것이다. 그러니까 캬르
탄손(Kjartansson)은 ‘캬르탄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아버지 성만을 따르는 관습이 영 탐탁지 않고 결혼 후 남편의 성을 따라야 하는 서양의 방식은 더 못마땅하지만 부모 성을 함께 쓰자는 것이 만족스러운 해결책은 아니었다. ‘지금 여기 있는 나’에 집중 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인 굴레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이 노르만족의 성은 어떤가. 나의 이름과 함께 내가 아버지의(혹은 어머니의) 딸이라는 사실 하나만을 밝히지 않는가. 너무도 명쾌하게 나를 설명하는 이 이름, 내가 나이면서 동시에 내 부모님의 딸이라는 것에는 조금의 억지도 없다. 나는 이 작명법으로 나의 이름을 다시 한 번 지어본다. 새로 얻은 그 이름은 길고 어색해 아마 아무에게도 불리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도 이 이름을 혼자 몇 번 이나 되새겨보면서 지금 여기 있는 나는 어디서 왔는가를 다시 한 번 자문해본다.
사진은 이번 달 가장 기억에 남는 장영혜중공업 전에서 포착한 것인데, ‘그래’라는 말로 나에게 동의를 해주는 듯하다. 맥락과는 상관없이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게 사람인가보다. 어쨌든 ‘그래’라는 말은 종종 대단히 큰 위안을 준다. 가끔 버릇처럼 ‘아니’라거나 ‘근데’같이 부정적인 말로 얘기를 꺼내게 될 때가 있는데 고쳐보려고 의식하며 지내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