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라이어
적극 추천하지 않지만, 헬렌 미렌이 나와서 본 영화. 이언 맥켈런도 나오는데, 두 사람 나이를 합하면 140살이 넘는다. 영화는 전반부와 후반부가 갈리면서 호불호가 크다. 과거의 비밀이 드러나는 후반은 좋지만, 앞부분에서 아무런 장치를 하지 않아 뒤에 나오는 장면이 뜬금없게 보일 수 있다.
스토리는 흥미로운데, 풀어가는 방식에서 조금 실망스럽다. 로이(이언 맥켈런)는 70대 노인이지만, 여전히 혈기왕성한 사회 활동을 한다. 그는 사업가로 행세하지만, 그가 함께 하는 동료들과 나누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협잡과 사기다. 투자를 미끼로 투자금을 받은 다음 잠적하는 방식으로 로이는 꽤 많은 돈을 모아 넉넉한 삶을 살고 있다. 70대라면 이제 모든 사회 생활에서 은퇴하고, 평안한 삶을 살아도 좋을 듯 한데, 여전히 사람들을 상대로 사기를 하면서 살아가는 로이를 보면서 관객은 그가 범죄자, 나쁜 인간이라는 걸 확인한다.
로이는 (그 나이에) 인터넷에서 데이트 상대를 찾는다. 물론 그가 찾는 데이트 상대는 단순히 '데이트'만 하는 상대는 아니다. 독신 여성이면서 재산도 어느 정도 있는 사람을 찾는데, 로이는 자기가 찍은 사람에게서 돈을 갈취할 자신이 있다고 믿는다. 그만큼 오랜동안 사기를 쳤고, 자신이 있다는 뜻이다.
로이가 데이트 상대로 만난 사람은 베티(헬렌 미렌)으로, 베티는 1년 전, 남편이 사망했고, 지금은 혼자 산다. 70대 여성이지만, 데이트 할 남자 친구를 찾지만, 성 생활은 하지 않는, 순수한 의미의 '친구'를 찾는다. 두 사람은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호감을 갖고, 이야기가 잘 통하는 걸 느낀다.
로이는 무릎이 아파 계단을 올라야 하는 자신의 집에 가는 걸 힘들어 하고, 그걸 본 베티는 로이에게 자기 집으로 들어와 살라고 권한다. 로이는 자기가 절실히 바라는 바였지만 내색하지 않고 베티의 집으로 들어간다. 베티의 손자는 반대하지만, 베티가 묵살하고 로이를 집으로 들인다.
영화는 로이의 시선으로 진행하므로, 관객은 자연스럽게 로이가 바라보는 세계를 바라본다. 따라서 로이의 행동을 관객은 알고 있지만, 영화 속 다른 인물들은 로이의 진짜 모습을 알 지 못한다. 특히 베티는 로이를 점잖은 신사이면서 사업가로 알고 있는데, 관객이 볼 때 베티의 상태가 안타깝다.
의심 많은 관객이라면, 처음부터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는 로이를 보면서, 로이와 베티의 관계를 의심하는 사람도 나온다. 베티는 무려 '옥스퍼드 대학'의 교수로 퇴직한 사람인데, 그가 보여주는 태도는 상당히 순진하고, 마냥 선량하기만 하다. 베티의 인간성이 진짜 그렇게 선하고 좋은 사람이라서 로이에게는 큰 행운이고, 관객은 더 안타깝다.
로이는 베티의 집에 살면서 본격 작전을 펼친다. 그의 동료를 불러 '회계사'로 소개하고, 로이가 가진 자산을 투자해 정기적으로 큰돈을 배당 받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베티가 가진 자산을 투자해 배당금을 받으라고 권한다. 이때, 로이는 자기가 가진 모든 자산을 공개하고, 베티와 공동 계좌를 만들어 두 사람의 명의로 함께 관리하기로 합의한다.
로이는 베티가 가진 자산을 갈취하려고 자기 자산 모두를 베팅하는데, 이때가 되면 관객도 눈치를 챌 걸로 본다. 두 사람은 각각 은행 계좌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패드를 가지고 있고, 두 사람이 동시에 비밀번호를 눌러야만 계좌 이체를 할 수 있다. 따라서 논리적으로 한 사람이 자산을 빼돌릴 수는 없다.
반전은 로이의 거짓말로 시작한다. 로이의 친구인 '회계사'를 가운데 두고 두 사람이 공동 계좌에 각자 투자금을 이체하고, 로이는 아들을 만나러 간다고 베티의 집을 떠난다. 집에 돌아온 로이는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패드를 찾지만, 그의 가방에는 패드가 없었다. 로이는 본능적으로 자기가 당했다는 걸 느끼고, 다시 베티의 집으로 간다.
이제 관객도 상황을 이해하고, 진짜 사기는 로이가 아니라 베티가 한 걸 알게 된다. 순진하게만 보이던 베티가 진짜 사기꾼 로이를 상대로 로이의 재산 모두를 갈취하는 사기를 치고, 도망쳤을 걸로 보는데, 의외로 그 집에는 베티가 로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베티는 로이가 거짓말을 할 때마다 로이의 자산 일부를 자기 계좌로 이체한다. 즉, 거짓말을 하면 현금 자산이 줄어드는 상황이다. 로이는 몇 번 거짓말을 하다 포기한다. 자산이 계속 줄어들어 한푼도 남지 않게 되는 상황이 가장 두렵기 때문이다.
베티는 로이가 진실을 알 수 있도록 힌트를 준다. 비밀번호인 '릴리'는 베티의 본명이었고, 1943년, 베를린에서 로이와 베티는 잘 아는 사이였다. 베티 아니 릴리는 사업가의 딸로, 부유한 집안에서 살고 있었다. 딸이 모두 네 명이었고, 릴리는 막내였다. 그는 영어를 배우고 있었고, 과외를 해주던 남학생이 로이였다. 로이는 릴리를 강간하고 다른 로이의 자매를 성희롱하다 쫓겨나는데, 쫓겨난 걸 두고 앙심을 품고 경찰에 릴리의 아버지를 고발한다. 그는 우연히 릴리의 아버지와 사업 동료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엿듣게 되는데, 전시 상태였던 그 시대에서 돈을 더 벌려고 불법을 공모하던 내용이라 릴리의 아버지는 반역죄로 체포된다.
결국 릴리의 집안은 쑥대밭이 된다. 아버지는 체포되고, 어머니는 자살하며, 베를린에 쏟아지는 연합군의 폭격으로 릴리의 세 언니 모두 사망한다. 릴리는 한 순간 고아가 되어 험난한 세상에 홀로 서게 된다. 릴리는 미국으로 이민와 살면서 스스로 훌륭한 삶을 만든다. 물론 영화에 나오지 않지만, 남편이 큰 역할을 한 걸로 보인다. 그렇지 않더라도 릴리 자신이 '옥스퍼드 대학' 교수로 정년을 했다는 사실이 그가 성공한 삶을 살았음을 보여준다.
릴리는 어느 정도 안정된 삶을 살면서, 자신과 집안을 망친 로이를 추적한다. 로이는 이미 완벽하게 신분을 세탁하고 - 젅쟁 당시 로이가 신분을 세탁하는 과정이 나온다 - 그 역시 미국으로 건너와 사기꾼의 삶을 살고 있었다. 로이가 처음부터 사기꾼이었던 건 아니겠지만, 그가 늙어서도 사기를 치고 다니는 건, 이 영화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로이가 어렸을 때 시각으로 릴리의 집안을 바라보면, 가난한 로이의 집과는 달리 릴리의 집은 고대광실, 진짜 부자, 부르주아의 삶을 볼 수 있고, 로이는 열등감과 질투심을 가질 수 있다. 계급적 적대감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로이는 모멸감과 질투심으로 릴리의 집안을 망쳤고, 그는 자신의 과거를 깊게 묻어 두었다.
로이의 태도가 정당성을 가지려면 그의 삶이 릴리의 부모처럼 성공한 삶이었어야 했다. 하지만 로이의 삶은 더 나아지지 못했고, 그건 사회의 구조적 모순도 있겠지만, 로이 자신의 능력 부족, 삶을 대하는 태도, 성실성 등 많은 요소들이 그의 한계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한다.
로이와 릴리 두 사람은 서로에게 거짓말을 한다. 로이는 상대를 속여 돈을 갈취할 목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릴리는 자신의 가족과 삶을 망가뜨린 로이에게 복수하려는 목적으로 거짓말을 한다. 여기서 '굿 라이어'는 당연히 릴리다. 즉, 때로 거짓말은 필요하며, 악을 응징하려는 거짓말은 '좋은 거짓말'로 해석한다.
심리학에서 평범한 사람도 하루에 약 스무 번 정도의 거짓말을 한다고 알려졌다. 누구나 이 통계를 믿지 않고, 말도 안 된다고 하겠지만, 과학의 엄밀함으로 발견한 개인의 거짓말은 단지 악의가 아니라, 상황에 맞게 적절한 거짓말을 함으로써, 일상이 원만하게 이어지도록 하는 효과가 있다. 누구에게도 해가 되지 않는 거짓말도 있다는 뜻이다.
이 영화는 시나리오가 평면적이어서 아쉽다. 뒤쪽의 서사를 완성하려면, 앞쪽에서 사건을 암시하는 장면들이 복선으로 깔려야 하는데, 그런 장치가 부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