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리우드의 영웅 서사
샌 안드레아스와 램페이지
헐리우드의 영웅 서사
헐리우드 영화의 전형적 클리셰를 다 보여주는 두 영화인데, 오락 영화 성격이 강하면서도 관객에서 전하려는 메시지도 있다. 브래드 페이튼 감독은 그가 연출한 여섯 편 정도의 영화 가운데 '넷플릭스' 드라마 두 편을 빼면 모두 블록버스터 영화다. 1978년 생으로 아직 젊은 감독인데, 헐리우드에서 블록버스터 영화를 주로 연출할 정도라면 대형 영화사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거다.
그의 여러 작품 가운데 최근에 본 두 편의 영화를 바탕으로, 헐리우드 영화의 특징과 클리셰, 성공하는 상업 영화의 장단점에 관해 알아보면 재미있을 듯 하다.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는 대자본이 투입되므로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흥행의 압박이 있다. 하지만 많은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는 해외 시장에서 흥행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많은 관객이 좋아하는 헐리우드 영화가 있고, 이 영화 가운데 블록버스터 영화가 대부분이다. 한국에서 크게 성공한 영화를 보면, '어벤저스 : 엔드 게임', '겨울왕국 2', '아바타', '어벤저스 : 인피니티 워', '아바타 : 물의 길', '어벤저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인터스텔라', '아이언맨 3',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 탑건 : 매버릭', '스파이더맨 : 파 프롬 홈', 트랜스포머 3', 미션 임파서블 : 고스트 프로토콜', 스파이더맨 : 노웨이 홈', '트랜스포머 : 패자의 역습', '트랜스포머', 스파이더맨 : 홈커밍', '어벤저스' 같은 영화는 최소 7백만 명에서 1천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은 헐리우드의 대표적 블록버스터 상업영화들이다.
이 영화들의 특징은 제작비가 1억 달러를 가볍게 넘고, '아바타'는 4억 달러의 제작비로 약 28억 달러의 흥행 수익을 거뒀으니 제작비 대비 무려 7배의 수익이다. 따라서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는 철저하게 상업 논리를 따라 제작되며, 예술성보다는 상업성에 더 무게를 둘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헐리우드 영화 특히 블록버스터 영화의 클리셰는 주인공의 서사, 주인공을 포함한 가족 서사, 주인공의 모험과 해피엔딩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헐리우드 영화의 클리셰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시작하는 전형적 영웅 서사를 기반으로 한다. 그리스, 로마의 영웅 서사는 세계 거의 모든 민족의 신화에서도 비슷한 내용으로 변형되어 나타나는데, 서양의 역사를 뿌리로 하는 유럽과 북아메리카 이주민(주로 백인)의 서사는 그 바탕이 그리스, 로마 신화라서, 이야기(서사)의 기본 구조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가져왔다.
세계 대부분의 민족 신화에서 '영웅'은 고향에서 쫓겨나거나 탈출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고, 영웅은 고향을 떠나 고난을 겪는다. 기독교의 '예수'는 그래서 전형적인 '영웅'이고, 그가 고향에서 쫓겨나 황야를 떠돌다 사람들에게 '신'으로 추앙받다 로마군에 잡혀 십자가에서 죽는 이야기는 민족의 영웅 서사와 일치한다.
헐리우드 영화는 이 서양의 영웅 신화를 바탕으로 블록버스터 영화로 제작한다. 미국 영화에 유독 '히어로' 장르가 많은 이유는, 미국의 탄생과 성장 과정의 역사에서 비롯했음을 알 수 있다. 조금 쉽게 풀어보면, 우리가 쓰는 '한글'은 창제 원리가 완벽하게 밝혀진 세계 유일의 문자다. 세계의 수 백, 수 천 개의 문자 가운데 창제 원리가 확실한 문자는 '한글'이 유일하다. 같은 이유로, '미국'의 건국은 근대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건국' 과정이 문서로, 많은 자료로 남은 나라다.
미국은 영국에서 출발한 이민자의 나라이면서 또한 영국을 상대로 '독립 전쟁'을 벌여 새로운 나라를 세운다. 이 과정이 모두 문서로 기록되어 있으며, 건국 이념 또한 완벽하게 기록되어 있어 하나의 국가가 어떻게 탄생하는가를 알 수 있는 역사적 사료로써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또한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라고 할 만큼, 세계 수 많은 나라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올 수 있도록 개방했고, 그 결과 미국은 세계 인종의 용광로가 되었으며,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근대의 신념을 생성했다. 이 '아메리칸 드림'은 '미국의 영웅 신화'와 직접 관련이 있는 개념이며, '드림스 컴 트루(Dreams Come True)'는 미국에서 성공한 거의 모든 이민자들과 힘든 삶을 사는 사람들이 가진 '미국식 희망'의 관용어다.
'미국은 기회의 땅'이라는 생각은 미국 사회의 제도와 미국의 물리적, 지리적 조건을 함께 의미한다. 가난한 이민자들이 미국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엄청난 성공을 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에,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들을 롤모델 삼아 희망을 갖고 살아간다. 이때 성공한 사람들을 '히어로'라고 부르는 건 관용적 표현이지만, 유독 미국에서는 '히어로'라는 단어 또는 개념을 폭 넓게 쓰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미국인에게 '히어로'는 세속적 출세나 성공한 사람 뿐아니라, 소방관, 경찰, 군인 심지어 환경미화원처럼 대중을 위해 수고하는 사람들도 '히어로'라고 부른다.
헐리우드 영화 가운데 주로 '히어로' 영화의 원작인 미국 만화(DC코믹스, 마블코믹스)에서 영웅으로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수퍼맨'을 제외하고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거나 '신'과 관련한 인물들이었다. 그들이 어느 순간, 어떤 계기로 특수한 능력을 갖게 되거나(스파이더맨), 최첨단 현대 과학 기술의 도움을 받아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영웅'이 된다.(배트맨)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에 '재난'을 소재 또는 주제로 다룬 영화가 많은 배경에는, 특별한 상황에서는 반드시 특별한 사람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즉,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은 역사에서 이미 확인된 사실이다. 그건 특정한 개인의 능력보다는, 개인의 능력이 극적으로 드러날 수 있는 환경이 재난 상황, 전쟁 상황처럼 특별한 상황에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샌 안드레아스'와 '램페이지'는 모두 '재난 영화'에 해당한다. 두 영화에서 주인공은 '드웨인 존슨'인데, 이는 감독이 의도적으로 특정 배우를 생각한 캐스팅이다. '샌 안드레아스'에서 주인공 레이몬드(드웨인 존슨)는 특수 구조대 대장이다. 레이몬드가 하는 일은 위험한 상황에 놓인 사람을 구하는 직업이니, 이미 '영웅'의 자격을 갖춘 사람이고, 어떤 재난에서든 살아남을 확률이 높은 인물이다.
'램페이지'에서 데이비스(드웨인 존슨)는 영장류 학자로 나오지만, 그의 이전 직업은 밀렵꾼을 잡는 특수부대에서 복무한 군인이었다. 주인공은 이미 재난 상황에서 충분히 활약할 수 있는 육체적, 정신적 강인함을 가진 사람으로 설정했다.
'샌 안드레아스'는 캘리포니아주를 세로로 길게 가로지르는 거대한 단층을 말한다. 영화에서는 모두 세 번의 큰 지진이 발생하는데, 지진 강도로 보면 '후버댐'이 무너지는 규모 7.1 지진, 로스엔젤레스가 궤멸되는 규모 9.1 지진, 샌프란시스코가 완전히 파괴되는 규모 9.6 지진이 나온다.
재난 영화를 보는 즐거움은 주인공(들)이 재난 속에서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며 마침내 살아 남는 결론이 아니다. 재난 그 자체, 재난이 발생하면서 멀쩡하던 도시와 빌딩이 박살나고, 도로와 철도가 끊기고, 댐이 무너지고, 쓰나미가 몰려와 도시가 잠기는 그 상황 자체를 보는 게 즐거움이다.
영화에서 거대한 재난이 발생할수록, 관객은 안심한다. 관객은 실제 영화 속 재난을 당하지 않았기에, 평온한 자신의 상태를 확인하면서 심리적 위안을 얻는다. 물론, 일본이나 다른 나라에서 거대한 지진이 실제 발생해 수 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고, 건물이 파괴되는 현실도 있지만, 적어도 살아남은 사람은 자신이 운이 좋다고 믿는다.
재난 영화에서 파괴되는 건 주로 인간이 그동안 이룩한 거대한 '문명'의 결과물이다. 수 천만 명이 사는 메가 시티, 초고층 빌딩들, 최첨단 과학 기술의 집약체인 대도시의 건물과 시설들이 자연 앞에서 한 순간 파괴되어 쓰레기로 변하는 장면을 보며 '파괴미'와 '숭고미', '장엄미'라는 미학적 쾌감을 느낀다.
극단의 재난 상황에서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가치는 무엇일까. 헐리우드 영화는 '가족'이라고 말한다. 레이몬드 역시 재난 현장으로 출동하는 헬기에서 지진 발생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이혼했지만 여전히 사이 좋은 '전' 아내를 구하러 간다. 가족을 지킨다는 설정은 근대 미국이 가장 핵심으로 지키는 이데올로기다. 즉, 가족 중심의 이데올로기를 사회의 지배 이념으로 설정하고, 미국 자본주의 체제의 잔혹함을 은폐하려는 지배 계급의 의도는 분명하다.
영화에서 가족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강력한 근거로, 영화 마지막 장면에 지진으로 파괴된 캘리포니아주 재난을 당한 시민을 위해 미국 전역에서 자원봉사자가 속속 도착하고, 시민단체들이 캠프를 만들어 각종 물품, 의료, 일상 지원을 펼치는 장면이 나온다. 미국은 단 한 명의 시민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캐치프레이즈는 1960-70년대 베트남 전쟁 당시에 이미 '미국은 단 한 명의 미군도 포기하지 않는다'의 연장이다. '자랑스러운 미국인'이라는 자부심은 미국 정부가 만든 이런 구체적 행동을 통해 이미지화 하며, '미국인'은 정부의 태도를 통해 다른 나라에 대해 자부심과 우월감을 갖는다. 물론 베트남 전쟁에서 패한 이후 미국과 미국인의 자존심, 자부심은 진흙탕에 굴렀다. 그럼에도 헐리우드 영화는 '히어로' 영화를 통해 그 이데올로기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 걸 보여준다.
'샌 안드레아스'에서는 '가족'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전면에 내세워, 미국의 위기를 극복한다는 메시지를 드러냈다면, '램페이지'에서는 자본의 탐욕, 과학 기술의 오염 문제, 유사 가족 등 중요한 주제를 담고 있다. '샌 안드레아스'에서 발생하는 재난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지구 환경의 물리적 활동이라는 점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한계가 분명한 반면, '램페이지'는 인간-자본주의 체제, 자본가의 탐욕-의 욕망이 만든 재난이라는 점에서, 인류의 미래를 경고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램페이지'의 한국판 영화가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다. 두 영화는 인간의 의도적 행위의 결과로 전혀 예상하지 못한 '괴수'가 탄생한다는 점에서 같은 주제를 다룬다. 다만 '괴물'에서는 인간이 버린 독극물의 영향으로 유전자 변이가 발생한 '괴물'이 탄생하지만, '램페이지'에서는 거대 자본이 확실한 목적을 갖고 우주정거장에서 유전자 재결합 실험을 통한 개체 변이 동물 실험을 하는 과정에서 실험을 완벽하게 통제하지 못하고, 사고로 이어진다.
우주정거장에서 유전자 조작 실험을 하다 실패하면 지구에서 영향을 받을 확률이 매우 낮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전한 건 맞다. 또한 진공 상태에서 실험하면 지구와 달리 실험 과정에서 오염의 문제도 적고, 외부 환경의 영향을 적게 받아 실험 조건이 좋기 때문에, 우주정거장에서 각종 실험을 자주 한다.
'램페이지'에서 문제가 되는 상황은, 과학자, 연구원들이 실험에는 성공했으나 그렇게 만든 '괴수'를 통제할 수 없었다. 과학자와 연구원들은 유전자 조작으로 만든 완전히 새로운 생물체에게 살해당하고, 유일하게 탈출한 연구원이 회사 대표의 강요로 샘플 세 개를 가지고 지구로 귀환하다 우주선이 폭발하면서 샘플이 지구의 여러 곳에서 파괴되어 대기로 흘러나간다.
영화에서는 세 개의 샘플에 직접 영향을 받는 대상이 동물로, 고릴라 지미, 늑대 랄프, 악어 리지가 있는데, 이 생화학 가스 유출은 한편으로 미국의 다국적 대기업 '유니언 카바이드'의 인도 보팔 공장에서 발생한 인류 역사상 최악의 가스 참사를 떠올린다. 1984년 인도 보팔에서 발생한 이 독가스(아이소사이안화 메틸)에 중독된 인도 사람들 약 2만여 명이 사망하고 55만여 명이 부상을 당하는 끔찍한 사건이었다.
영화에서 대자본은 유전자 조작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생물을 만들 수 있게 되면서, 이 기술을 공익보다는 기업의 이익을 위해 활용하려는 의도를 드러낸다. 즉, '자본'의 본질은 결코 '공공의 이익'에 있지 않고, 자본가(와 주주)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한다는 자본의 논리를 볼 수 있다.
결국 자본의 탐욕이 만든 괴수들은 자본이 세운 도시를 파괴한다. 이 아이러니는 마르크스가 말한 바, 자본주의를 끝내는 건 자본주의 내부에서 나타난다는 말과 정확히 일치한다. 여기서는 자본이 만든 생화학 기술, 유전자 조작으로 변형된 괴수는 '자본'의 착취로 허덕이는 노동계급의 폭력과 혁명의 상징이기도 하다.
유전자 조작 실험을 하는 동기는 연구원 케이트가 난치병을 앓는 동생을 치료하려는 목적에서 시작했다. 처음부터 악의적이고 사악한 목적으로 과학 기술을 연구하는 과학자는 없을 걸로 생각한다. '핵폭탄'을 발명할 때도 과학자들의 의도와 달리 정치가들은 대량 살상 무기로 활용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에서 결국 핵폭탄의 스위치를 누르는 건 '장군'이다.
데이비스는 지금 영장류 학자로 일하지만, 그 전에는 밀렵꾼을 잡는 특수부대 군인이었다. 그는 동물원에서 영장류를 돌보는데, 그와 감정이 잘 통하는 고릴라 '조지'와 수화로 농담을 주고 받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다.
데이비스와 '조지'는 종이 다르지만, 이들은 '유사 가족'을 이룬다. 데이비스가 밀렵꾼을 잡으러 다닐 때, 밀렵꾼 손에 죽을 뻔한 '조지'를 구했다. 아기 고릴라였던 '조지'는 인간에게 엄마가 살해당하는 걸 봤고, 그 트라우마가 늘 잠재한 상태다. '조지'는 생화학 가스를 마시고 유전자 변형이 일어나면서 급격하게 체구가 커지는데, 몹시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데이비스와 함께 다른 두 괴수를 저지하러 나선다.
'조지'는 영장류로, 인간과 소통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늑대와 악어와는 결이 다르다는 해석은 전형적인 '갈라치기' 지배 전략이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백인들이 흑인을 노예로 부릴 때, 같은 흑인들이지만, 집안에서 일하는 노예와 농장에서 일하는 노예를 구분하고, 차별하자 흑인 노예들이 백인을 '주적'으로 삼아 공격하는 사례가 거의 사라졌다는 보고가 있다.
영장류가 지능이 높고, 인간과 소통하는 능력이 있으며, '조지'의 경우 데이비스가 생명의 은인이라는 점까지 겹치면서, 같은 동물인 늑대, 악어와 함께 행동하지 않고 인간을 도와 늑대, 악어를 물리친다는 설정은 철저하게 '인간의 시각'이다. 인간의 입장에서 '조지'는 다른 동물과 다르게 다루며, 다른 동물과 분리한다.
데이비스와 조지는 '가족'을 이뤄 인류에게 닥친 위기를 함께 극복한다. 여기까지는 인류에게 긍정적으로 보이지만, '조지'의 존재는 인류에게 새로운 갈등으로 등장한다. '조지'를 제외한 두 괴수를 죽였지만, '조지'는 인류가 감당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의 체구가 수십 배 커지면서, 그 자체로 위험한 존재로 부각한다. 영화는 데이비스와 '조지'가 힘을 모아 인류에게 닥친 위기를 극복하는 장면까지만 보여주므로 이후의 이야기는 더 고민할 이유가 없지만, '조지' 이전의 서사가 이어졌듯, 앞으로의 서사 역시 큰 줄기로 보아야 한다.
'혹성 탈출'의 시리즈가 결국 영장류의 진화를 그리고, 마침내 인류와 매우 흡사한 종으로 진화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처럼, 인간의 과학 기술이 다른 영장류의 생물학적 진화를 촉발한다는 점에서 '조지'의 진화는 또 다른 의미에서 '혹성 탈출'의 '시저'를 보는 듯 하다.
재난 영화는 미학에서 '숭고미'를 발견하는 장르다. 거대한 괴수, 상상을 초월하는 자연 재해는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현상이어서 그 대상에 압도당한다. 우리가 높은 산 꼭대기에서 아래를 내려다 볼 때, 인류가 만들었지만 여전히 놀라운 피라미드나 만리장성 같은 거대한 건축물을 볼 때, 우리는 일상에서 느낄 수 없는 감정을 환기한다.
재난은 그 자체로 극복할 대상이나 과제이므로 인류는 재난과 맞서 싸우며, 고난을 극복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간다. 인간의 입장에서 재난은 분명 위험하고 파괴적인 결과를 만들지만, 재난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인류는 성장한다.
재난 영화가 흥행에서 성공하는 이유 역시, 우리 일상에서 볼 수 없는 재난을 '안전한' 영화관에서 마음 편하게 볼 수 있는 심리적 기재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실제의 삶에서 재난을 당하고 싶지 않지만, 재난이라는 '숭고미'를 간접 경험하고 싶은 욕망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