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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건우 Sep 14. 2024

베테랑2

베테랑 2


류승완 감독 작품. 서도철(황정민) 형사 팀이 나오는 걸로는 '베테랑'의 후속 작품으로 볼 수 있지만, 별개의 작품으로 봐도 좋을 정도로 전편과 큰 관련이 없다. 믿고 보는 류승완 감독의 작품이고, 바로 직전의 작품인 '밀수'는 세 번을 볼 정도로 좋았으며, '베테랑'은 류승완 감독의 작품 가운데 가장 크게 흥행한, 1천 만 관객을 모은 작품이라는 점에서 후속작인 이 영화에 기대가 컸다.


액션

류승완 영화에서 액션은 영화의 정체성을 드러낼 정도로 중요하다. 감독 자신이 배우로 출연할 때도 액션 연기를 직접 할 정도로 액션을 좋아하고 또 잘 한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짝패'에서는 류승완 감독이 배우로도 액션 연기를 펼치는데, 이때 액션은 사실적이고 화려하며, 지독하다.

'피도 눈물도 없이'에서 보인 액션이 처절하고 잔혹하며 악에 받힌 발악하는 액션이었다면, '베테랑'에서 보인 액션은 화려하고 통쾌하다. 액션으로 보면, '아저씨'에서 원빈이 보여준 액션이 지금도 회자되는데, 류승완 감독의 액션은 데뷔작인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시작으로 '피도 눈물도 없이'와 '짝패'에서 한국형 느와르 액션의 전범을 보여주었다.

류승완 영화에서 액션은 매번 새로운 형식, 새로운 디자인으로 관객의 예상을 비껴간다. 헐리우드 액션은 거대 자본이 들어간 화려하고 계산된 액션이라면, 류승완의 액션은 날것에 가까운, 피투성이 액션이다. '베테랑2'에서 보여지는 액션은 '베테랑1'에서의 액션과 또 다르다. 남산 내리막길 계단에서 꽉 들어찬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뛰어다니는 액션은 (제작사의 PPL을 고려한 게 눈에 보이지만) '존 윅 4'에서 나오는 계단 액션과 비교할 때, 류승완 액션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는 장면이다. '존 윅 4'에서 계단 액션을 패션 브랜드로 치자면, '에르메스'나 '샤넬'이라면, '베테랑2'에서 계단 액션은 '평화시장' 액션이다. 즉, 액션의 디자인에서는 '존 윅 4'가 고급해 보이지만, 우리의 실제 현실에 더 밀착한 느낌은 '베테랑2'의 계단 액션이다.

'베테랑2'에서 계단 액션은 그 자체로도 매우 위험하고, 고통스럽게 보이는데, 액션의 완성도를 높이려는 의도와 함께 이야기의 전개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해치'의 정체를 두고 벌어지는 이후의 수사 과정에서, 이 계단 액션 장면은 결정적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해치'로 의심되는 범죄 용의자 '강훈'과 벌이는 옥상 액션은 쏟아지는 비와 바닥에 고인 빗물이 액션 소품으로 쓰인 독특한 액션 장면이다.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우영민(박중훈)과 장성민(안성기)가 폭우 속에서 싸우는 장면이 액션의 명장면으로 지금도 여전히 회자되듯, '베테랑2'는 훌륭한 액션 장면을 오마주하면서 보다 더 화려하고 개성 있는 액션을 보인다.

서도철이 터널에서 범인과 일대 일로 싸우는 장면 역시 다른 영화에서 가져온 미장센을 변형한 장면이다. 의자에 묶인 탐욕스러운 인간, 바닥에 깔린 날카로운 유리조각, 차 안에서 온몸이 묶인 채 파이프에 꽂히기 직전의 '억울한' 여성 등 다양한 요소를 배치하고, 두 주인공은 목숨을 건 결투를 벌인다. 비는 내리지 않지만, 폐광 터널에서 싸우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장면이 떠오르고, 여기에 자동차 액션까지 결합하면서 보여줄 수 있는 액션의 종합선물 세트를 완성한다.


'베테랑' 1편과 다르다

'강력범죄수사대'의 팀원 전체가 똑같다는 점에서 '베테랑2'의 이름을 물려받을 수 있지만, 전개 방식이나 서사는 완전히 다른 영화다. 1편을 본 관객은 어쩌면 조금 실망할 수도 있지 않을까. 1편에서 신진그룹 재벌3세 조태오와 맞붙어 조태오의 악행을 응징하는 장면에서 관객은 통쾌함을 느꼈다. 한국에서 재벌은 부러움과 시기의 대상이면서 한편으로 온갖 특혜를 받으며 특권 계급으로 살아가는 집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고, 한국 사회의 현실에서 실제 그런 장면이 자주 나타난다.

영화에서라도 그런 재벌의 악행을 때려잡는 정의로운 형사의 모습을 보면서 관객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하지만 '베테랑2'에서는 이런 절대악, 거대악이 등장하지 않는다. 영리한 류승완 감독이 이걸 몰랐을까. 오히려 거대악이 아닌 상대를 선택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범죄도시' 시리즈에서 전형적 매너리즘을 발견한다. 물론 '범죄도시'는 '마석도(마동석)' 캐릭터를 중심으로 펼치는 프랜차이즈 액션이라는 걸 감안해야 하지만, '범죄도시'는 모든 시리즈가 같은 패턴을 반복한다. '베테랑2'는 전작과 수사팀만 같은 뿐, 완전히 다른 영화처럼 보이는데, 이 선택을 두고 관객의 호불호가 갈리는 지점이다.

류승완 감독은 '거대악' 대신 '일상의 악'을 선택했다. '거대악' 즉 한국 사회에서 뚜렷하게 드러나는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이 벌이는 범죄를 때려 잡는 경찰의 모습을 보면서, 서민의 입장에서는 통쾌함을 느낀다. 하지만 이런 대결 구도는 평면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너무 흑백이고, 단선적이며, 입체감이 적다는 뜻이다. '베테랑'이 성공한 요소 가운데 하나는, 선과 악의 명확한 구분과 함께 매력적 악당인 조태오(유아인)의 존재감 때문이다.

류승완 감독이 전작처럼 쉽고 간결한 대결 구도를 선택하지 않고, 다소 어수선하면서 복잡하고, 불투명한 구도와 인물을 배치하면서까지 '일상의 악'을 선택했을까 생각하면, 이 영화에서 다루는 주제들이 지금 한국 사회에서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이 영화의 주제는 '어떤 폭력이든 폭력은 나쁘다'인데, 영화에서 공권력 즉 국가폭력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극악한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들이 가벼운 처벌만 받고 다시 사회로 나와 더 큰 범죄를 저지르고 있어도 공권력은 무기력하다. 영화는 이 지점을 비판한다. 왜 한국 사회에서 공권력(국가폭력)은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굽신거리고, 악독한 범죄자를 강하게 처벌하지 못하는가에 대한 불만을 정면으로 드러낸다.

두번째, 사적 폭력에 대한 강력한 지지에 대한 비판이다. 한국 사회에서 국가폭력이 올바른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근대 국가에서 금지하고 있는 사적 폭력(복수)이 등장하고, 대중은 악독한 범죄를 저지른 자를 응징하는 악당을 마치 '홍길동'처럼 생각하며 지지한다. 우리는 '의적'을 또 다른 모습의 '영웅'으로 생각한다. '로빈후드'와 '홍길동', '임꺽정'이 그렇게 영웅으로 서사화 하듯, 근대 시민사회에서 합법적 과정-이 과정이 국가폭력이 개입하는 과정이다-을 통해 처벌 받는 범죄자들이 정당한 대가를 치르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시민들은 불만이 쌓이고, 이 불만을 알아챈 누군가 범죄자를 처벌하면서 시민의 불만을 해소하는 대리자가 된다.

류승완 감독은 '서도철' 반장을 통해 '사적 폭력'을 용납하거나, 희망하는 듯 그리고 있는 한편, 그런 욕망이 현실로 나타났을 때의 끔찍함을 대비하면서, 사적 폭력의 위험을 말하고 있다.

세번째, 악독한 범죄자들이 가벼운 처벌을 받고 나와 활개치고 다니는 것도 끔찍하지만, 그런 범죄자를 응징해야 한다면서 유튜브를 통해 범죄자를 스토킹하고, 응징하겠다며 영상을 보는 사람들에게 끊임 없이 '구독' '좋아요' '후원'을 외치는 사이버 렉카들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다. 영화는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으며,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이 얼마나 영화같은가를 류승완 감독은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 한다.

사이버 렉카 짓을 하는 자들의 면면은 그들이 쫓아다니는 범죄자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악랄한 행위라는 걸 고발한다. 사이버 렉카들은 오로지 돈을 벌려는 욕망으로 가득한 자들이고, 어떤 거짓말이나 조작도 마다하지 않는, 그들 자신이 범죄자들이다. 


그래도 아쉽다

'베테랑2'에서 류승완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이 무언지 알겠으나, 관객 입장에서는 여전히 아쉽다. 특히 전편에서 '강수대' 팀원은 모두 골고루 개성 있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팀의 조화와 단합된 모습을 잘 보였는데, '베테랑2'에서는 팀원들의 개성이 보이지 않았다. 앞부분에 잠깐 나오는 에피소드는 이들 '강수대' 팀이 여전히 함께 일하고 있으며, 사건을 해결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그럼에도 '베테랑2'에서는 서도철 형사만 보이고, 다른 팀원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 서도철 팀장의 사생활이 등장하면서, 서도철의 서사가 매우 핍진하게 쌓인다. '범죄도시'에서 '마석도' 형사는 강력한 힘을 가진 영웅 캐릭터로 등장하지만, 개인 서사는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즉, '마석도'는 개인처럼 존재하지만 그가 '생활인'으로는 존재할 수 없는 영웅 신화 속 인물처럼 나오는 것과 반대로, '서도철'은 아내와 자주 전화하고, 집에서도 대화하며, 아들과 갈등을 겪는다. 특히 아들이 학교 폭력의 피해자로 드러나면서, 서도철은 자기 직업인 형사로서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낀다.

서도철의 개인 서사가 한 줄기를 차지하면서, 영화는 서도철이 '해치'를 잡는 과정과 아들의 학교 폭력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딜레마에 놓이도록 했는데, 이건 영화의 리얼리티를 살리는 장점이면서 한편 영화의 시선이 분산되고, 주제가 산만하게 벌어지는 단점이다. 

또한 서도철이 만나는 진짜 '해치'의 등장과 대결은 꼭 스포일러는 아니지만, 이미 외국 영화에서도 여러 번 나왔던 내용이라 이것도 클리셰로 볼 수 있다. 관객은 류승완식 통쾌한 액션을 보고 싶은 마음과 함께, 그 통쾌한 액션의 대상이 사회의 거악이라면 더 좋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만 그럴까?)

류승완 감독의 의도는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하지만, 그럼에도 아쉬움은 남는다. 순수한 액션은 '피도 눈물도 없이', '짝패'처럼 완벽하게 액션 위주의 영화에서 충분히 감상할 수 있었고, '베를린', '군함도', '모가디슈', '밀수' 등의 작품에서 액션이 화룡점정이면서 '이야기'의 즐거움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던 것처럼, '베테랑'은 액션이 핵심이되 이야기가 그 액션을 든든하게 받쳐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 이야기는 현실에서 시민의 삶을 해치고, 억압하고, 비웃고, 조롱하면서 법을 우습게 아는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을 통쾌하게 응징하는 이야기이길 바라는 마음인데, 나만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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