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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건우 Sep 27. 2024

페르시아어 수업

페르시아어 수업


2차 세계전쟁 당시 유태인 박해를 다룬 수 많은 영화 가운데 하나. 유대인은 자신들이 2차 세계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다. 특히 세계 최대 영화 시장인 미국 헐리우드를 장악한 유대자본은 나찌의 만행을 고발하고, 유대인이 당하는 고난을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한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든 '쉰들러 리스트'가 대표적이고, 쿠엔틴 타란티노가 만든 '바스터드 : 거친 녀석들'은 유대 자본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 감독의 역사관에 기반한 나찌 징벌 영화라는 점에서 조금 다르다. 헐리우드 영화 가운데 2차 세계전쟁에서 유럽을 배경으로 다룬 영화의 대부분은 직간접으로 유대인 학살과 관련 있다. 

2차 세계전쟁에서 유대인이 나찌에게 학살 당한 역사적 사실은 분명하다. 인류는 어떤 형태로든 '제노사이드'를 반대하고, 전쟁 범죄를 용서하지 말아야 한다는 명제에 동의한다. 2차 세계전쟁의 주범인 독일은 히틀러가 자살하고, 전쟁에서 패배한 이후, 유럽의 승전국(연합국)에게 나찌 독일의 전쟁 범죄에 대해 독일 총리가 여러 번 공식 사과했다.

반면, 2차 세계전쟁의 최대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유대인은 전쟁이 끝나고 곧바로 팔레스타인 지역에 '이스라엘'을 건국하고, 곧바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유럽의 유대인 공산주의자를 중심으로 '시오니스트'들이 '유대인 국가'를 건립하는 핵심 세력이 되었고, 이들이 극단적 쇼비니즘으로 처음부터 그 지역에 살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학살하며 지역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을 학살하는 상황은 계속되고 있고, 이스라엘은 어떤 명분이나 이유로도 팔레스타인 학살을 정당화 할 수 없다.

또한, 2차 세계전쟁에서 유대인이 가장 큰 피해자라고 알려졌으나 그건 유럽의 승전국과 미국이 만든 '신화'에 불과하다. 가장 큰 피해 국가는 '쏘련'이라는 사실을 연합국은 강조하려 하지 않는다. 2차 세계전쟁에서 단일 국가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나라는 '쏘련'으로, 독일과 쏘련 전쟁 당시 쏘련은 군인과 민간인의 사망자가 무려 3천만 명이었다. 이는 2차 세계전쟁 전체 사망자 약 5천만 명의 60%에 이르는 엄청난 비중이다. 2차 세계전쟁의 승패는 1945년이 아니라 독일-쏘련 전쟁에서 쏘련이 승리한 1943년까지 집중되었고, 이후 전쟁 양상은 소모전과 독일의 퇴각일 뿐이다.

따라서 2차 세계전쟁에서 독일에게 가장 큰 피해자이면서 가장 큰 공을 세운 건 유럽과 미국이 아니라 - 그들의 공적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 쏘련이라고 하는 게 맞다. 이때 미국은 쏘련과 유럽 국가에게 군수물자를 거의 무제한으로 공급한 공이 있다. 쏘련이 군인과 민간인을 합해 무려 3천만 명이나 사망한 사실을 들면, 유대인은 일방적으로 '학살 당했다'는 주장을 할 수 있다. 아우슈비츠를 말하고, 가스 독살을 말한다. 쏘련의 민간인은 수 십만 명이 굶어 죽었으며, 폴란드인도 무려 5백만 명이 독일군에게 학살당했다.


이 영화는 조금 독특하게 러시아와 독일 합작 영화로,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유대인이 심하게 폭행을 당하거나, 학살되는 장면은 아주 잠깐, 짧게 나오고, 유대인들과 독일군 내부의 문제를 균형 있게 다룬다. 페르시아어를 배우는 코흐 대위와 주인공 유대인 사이의 인간적 교류가 나오고, 독일군 장교와 병사 사이의 갈등이 보이며, 독일군의 만행과 유대인의 고통이 비슷한 비율로 드러난다.

영화에서 주인공 유대인은 처형장으로 끌려가 죽기 직전, 자신은 페르시아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우연이지만, 독일군 부대의 장교가 마침 페르시아어를 배우고 싶어 페르시아 사람이나, 페르시아어를 잘 하는 사람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독일병사가 유대인을 끌고 장교에게 간다. 독일군 대위 코흐는 병참 장교로, 부대 식량을 책임지고 있는데, 그는 군인이 되기 전에 사회에서 주방장으로 일한 경력이 있어 음식을 잘 만들어 사령관 이하 장교들에게 음식이 맛있다는 칭찬을 들으며 신뢰를 얻은 인물이다.

주인공 유대인은 페르시아어를 전혀 모르지만 코흐 대위에게 페르시아어라고 단어를 가르친다. 그가 말하는 단어는 완전히 새로운 언어로, 그가 직접 만든 단어들이고, 이 단어는 대부분 수용소에 갇힌 유대인들의 이름을 조합해 만들었다. 코흐 대위는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른 채 자기가 배우는 언어가 페르시아어라고 믿는다.

주인공은 무려 2,800개 이상의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코흐 대위에게 가르치는데, 이렇게 새롭게 만든 문자, 언어로 두 사람이 대화까지 한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은, 주인공의 기억력이 과연 2,800개의 단어를 만들고 외울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생존이 걸린 상황에서 인간은 상상을 뛰어 넘는 능력을 발휘한다는 사례가 많은데, 그만큼 집중해서 놀라운 결과를 만들 수 있다고 본다.

영화가 말하고 싶은 건 마지막 장면인데, 주인공이 외운 2,800개의 신조어는 모두 그만큼의 유대인 이름을 조합해 만든 것으로, 주인공이 나중에 코흐의 배려로 도망쳐 연합군에게 조사를 받을 때, 수용소에 있었던 사람들의 이름을 줄줄 외우는 배경이 된다. 즉, 페르시아어 수업은 유대인 희생자의 이름을 나열하기 위한 빌드업이었으며, 독일군은 퇴각하면서 모든 서류를 불태우고 증거를 없앤다. 생존자의 입에서 희생자의 이름이 나열되도록 하는 건, 피해의 슬픔을 극대화 한다.


주로 유럽과 미국에서 생산되는 2차 세계전쟁 배경으로 유대인이 수난을 당하는 영화는 언제부터인가 유대인의 '프로파간다'로 여기게 되었다. 유대인-물론, 여기서 유대인은 전부가 아니라,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하는 시오니스트와 시오니즘을 지지하는 유대인들을 뜻한다-은 자신이 독일 나찌의 최대 희생자라는 주장을 끊임 없이 발언하는 한편, 국가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사람을 1945년 이후 현재까지 끊임 없이 학살하고 있는 이중적 태도를 보인다.

이스라엘은 미국을 등에 업고, 중동 국가들과 전쟁을 불사하며, 물리적으로 상대가 되지 않는 팔레스타인 사람을 학살하고, 땅을 뺐으며,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사는 지역을 '게토'처럼 만들고 있다. 이제는 유대인이 말하는 '피해자' 주장은 역사적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동정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유대인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면서, 돌아서서는 팔레스타인 사람을 학살하는 이중성을 드러내는 걸 보면서, 유대인(이스라엘)의 폭력성과 잔혹성, 야만성에 대해 용서할 수 없는 분노가 생긴다.

내가 이렇게 분노하는 까닭은, 2차 세계전쟁의 전범국이자 패전국인 일본이 전쟁 범죄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이 미국이 던진 핵폭탄의 피해자라는 주장을 하면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것과 유대인이 피해자라고 주장하면서 한편으로 더 약한 민족인 팔레스타인을 학살하는 장면이 오버랩 되기 때문이다. 일본은 전쟁 범죄를 인정하지도 않고, 잘못을 인정하지도 않으며, 여전히 '패전'이라고 말하지 않고, '종전'이라고 말한다. 일본 정부는 일본 국민에게 전쟁 범죄의 주범이라고 말하지 않고, 핵폭탄 투하로 죽은 일본인을 '희생자', '피해자'로 묘사하며 일본이 마치 전쟁의 피해자인 듯 꾸며대고 있다. 게다가 일본은 재무장 할 수 있도록 헌법을 수정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으며, 기회가 되면 언제든 이웃 나라 - 특히 한국 -를 침략하려는 야욕을 숨기지 않는다.

일본과 유대인(이스라엘)은 전쟁 이후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면서 한편으로는 더 약한 나라를 침략, 학살하는 행동을 하는 악랄함을 보인다.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 힘의 균형은 오로지 물리적 폭력(군사력)으로 결정되겠지만, 힘의 균형은 시간이 지나 언제든 바뀔 수 있다.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에서 벗어나 70년만에 일본과 대등한 군사력을 갖췄으며, 언제든 일본과 전쟁을 할 수 있다는 국민적 함의가 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멸절하려는 악의를 드러내고 있으며, 팔레스타인은 무려 70년 동안 인구와 국토가 절멸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역사가 오래 지속되면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누구도 모른다. 


한국에서는 일부 극우 개신교도들이 집회하면서 미국기와 이스라엘기를 태극기와 함께 들고 있는 걸 볼 수 있는데, 유대인이 예수를 죽인 사실을 모르는 무지와 '친미' 사상이 곧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이어지는 1차원적 사고방식 때문이다. 즉, 미국은 한국의 은인이다-미국은 위대하다-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원한다-이스라엘은 좋은 나라로 연결되는 아메바 같은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고방식은 '친일'도 똑같은데, 일본이 조선을 개화시켰다-일본 덕분에 한국이 발전했다-일본은 위대한 나라-일본을 본받아야 한다-조선은 일본에 고마워해야 한다로 연결되는 지극히 무식하고 멍청한 사고방식이다. 그래서 극우 개신교도 집회에는 미국과 일본, 이스라엘 국기가 동시에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역사를 모르는 개인이나 민족은 반드시 똑같은 방식으로 고통받게 되어 있다. 우리가 일본의 만행을 기억하지 않는다면, 일본은 다시 한국을 침략해 식민지로 만들 것이고,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을 학살하는건, 그들이 학살당한 경험이 과도한 공포를 일으켜 가해자인 독일 나찌와 똑같은 괴물로 변했기 때문이다. '용서한다, 그러나 잊지 않는다'는 유대인의 말은 옳지만, 바로 그 유대인의 집합체인 이스라엘은 악귀로 흑화했으며, 전쟁에서 진 일본 군부는 여전히 다시 전쟁을 일으키려는 야욕과 흑심을 품고 있다.

유대인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면서 학살자가 되는 것과 일본인이 전쟁 범죄자이면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건 마치 샴 쌍동이처럼 닮은 꼴이다. '일부' 유대인과 일본인의 심리에는 잔혹한 폭력 숭배의 욕망과 갈망이 내재되어 있으며, 이런 민족적 집단 심리는 공포와 두려움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이상 심리의 작용이다.

유대인은 언젠가 유대민족이 이 세계에서 절멸할 수 있다는 공포에 사로 잡혀 있고, 일본인 역시 일본의 지리적 조건이 늘 지진, 화산 폭발과 같은 가혹한 자연 재해에서 벗어날 수 없는 공포에 시달린다. 떠돌이 생활(유대인)과 발 아래가 흔들리는 불안정한 삶(일본인)은 트라우마를 만들고, 그 트라우마는 폭력적으로 반응하며, 타인을 공격한다. 

유럽에서 유대인이 지난 수천 년 동안 멸시당하고 쫓겨다닌건 그들이 소수민족이라는 불리함도 있었지만, 그들이 다른 민족을 향해 보인 극도의 배타성, 자기중심적 이기성이 더 큰 원인이었다. 일본은 늘 대륙으로 진출하려는 욕망을 드러냈고, 그 원인은 일본의 지리적 불안정에 원인이 있다. 이들은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다지만, 그 선택이 결국 다른 민족을 공격하고, 해치는 결과로 나타났으니 당연히 행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유대인이 핍박 받는 영화를 보면서도 동정이 가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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